드라마는 현재의 기억을 갖고 있는 채로 돌아간 마진주-최반도(손호준 분) 두 사람이 어떤 미래를 선택하는지를 찬찬히 보여줬다. 2017년 현재의 마진주는 독박육아에 지친 엄마이자 아내일 뿐이었다. 그러나 1999년에서는 예쁘고 똑똑하며 학내 최고 인기 선배 정남길(장기용)이 흠모하는 대학생이라는 '개인'의 모습과 10년 뒤 죽음을 맞게 될 엄마를 걱정하는 '딸'로서의 역할이 더 부각됐다.
'고백부부'에서 시청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던 장면이 마진주-고은숙(김미경 분) 모녀에게서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최반도 역시 장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업보처럼 품고 있었고, 과거로 돌아가서야 18년 만에 "나도 너처럼 장모님이 보고 싶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고은숙은 다양한 사람들과 얽혀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갔다.
그래서일까. 장나라는 대학교에 갓 들어온 상큼하고 도도한 스무 살부터 삶의 고단함에 찌든 엄마이자 수시로 자존감을 깎이는 아내로만 존재하는 38세 마진주 역할을 완벽 소화하고도, 모녀로 호흡을 맞춘 배우 김미경의 '대단함'을 강조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자신의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면 그 또한 자신을 정말 '마진주'로 대해 주었던 다른 배우들의 덕이었을 것이라는 장나라.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그는 내내 자신을 앞세우기보다는 타인의 빛나는 부분을 잘 포착하고 고마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고백부부'는 반도와 진주가 다시 2017년으로 돌아와 아들 서진이(박아린 분)와 함께하는 것으로 끝났다. 결말을 어떻게 봤나.
(현재로) 가지 않으면 큰일 날 일이었다. 가지 않는다는 신선한 선택지도 있긴 했는데 저희가 얘기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가족의 따뜻함과 부부간의 없어졌던 사랑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반드시, 하늘이 두 쪽 나도 돌아가야 했다. (웃음)
▶ 행복한 결혼 장면과 이혼도장을 찍고 나오는 장면이 대비되며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미 질리고 지친 부부관계를 초반부터 표현하느라 어렵진 않았나.
(진주-반도가) 애틋하고 좋았고 행복한 게 (초반에) 더 있다면 조금 더 연기하기가 쉬웠을 텐데 너무 다 바투 진행된 건 맞다. 갑자기 훅훅 넘어가는 게 스피드감이 좋기는 했는데 연기하기는 좀 어렵더라. "이혼해!"라고 하는 장면이 (촬영) 첫 날 새벽에 찍은 거고, 서진이 안고 힘들어하는 등 현재 장면은 다 첫 주에 찍었다.
소통의 문제가 제일 컸던 것 같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노력했겠지만, 결론적으로 소통이 없으면 이만큼 노력하는 것을 정서가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거든요. '표현 안 해도 알 것'이라는 건 되게 위험한 발상 같다. (진주-반도는) 서로 대화해야 했을 때 하지 못했고, 더 큰 표현을 해야 했을 때 하지 못했다. 그게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 마진주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캐릭터도 좋았지만 전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먼저 봤다. 명확하고 단순하고 따뜻해서 되게 좋았고. 마진주 캐릭터만 놓고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좋겠다 싶었다. 공감이 큰 얘기로 감동을 줬을 때에는 뭔가 더 느껴지거나 울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가족애나 따뜻함을 전하려고 했다. ('고백부부') 부제로 가졌던 게 '엄마도 여자다'였는데 그 부제를 표현하기에 마진주라는 캐릭터가 정말 좋지 않나. 그래서 빨리 (결정)하게 된 것 같다.
▶ 작품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먼저 봤다고 했다. 손호준도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세밀하게 나타나 있는 대본을 언급한 적이 있다. 대본 때문에 작품을 하게 된 건가.
('고백부부' 들어가게 된 데에는) 처음에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기술을 많이 써서 그럴듯해 보이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정말 담백하고 따뜻하고 예쁜 대본 때문에 놀랐다. 두 번째는 김미경 선생님께서 나오신다는 거였다. 고민을 이틀도 안 했다. 작가님께 너무너무 만족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글을 써 주셔서 너무 고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거든요. (시청자들이) 더 많이 보려면 이런 걸 넣어야겠지 하는 것에 (제작진이나 배우들은) 습관적·강박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도, 작가님이 처음 생각하신 대로 가신 것 같아 너무 고맙고 만족스러웠다.
▶ 따뜻함을 느낀 부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 부탁한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틀이 가족이고,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엄마에 대한 사랑을 되돌아보는 얘기였다. 연애하고 오래 같이 살아 온 남편이나 오랫동안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준 엄마 이런 존재는 사실 주변에 많지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애정을 표현하거나 고마움을 안 전하지 않나. 여기서 그런 것들을 많이 얘기해서 따뜻함을 많이 느끼게 하고, 저한테도 위로가 됐던 것 같다. 저희 집은 (애정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편이어서. (웃음) 저는 엄마 껌딱지고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 떨어질 필요가 있다. (웃음) (저는 엄마에게) 정말 찐득이처럼 붙어 있어서 표현을 좀 덜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제가 정말 엄마한테 붙어있거든요. 밖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엄마랑 보내니까. (엄마에 대한 소중함을) 드라마하기 전에 조금 일찍 깨달았다. 그게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사실 저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마인드로 20대를 보냈다. 엄마는 집에서 나를 돌보고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제 20대 말에 (엄마가) 갱년기 겪어서 죽고 싶을 만큼 외롭고 괴로워하는 걸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다. 엄마가 내색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저도 알려고 하지 않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저조차도 엄마를, 저희 엄마가 '이경옥' 씨인데 이경옥이라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엄마로 단정 짓고 엄마 역할을 주고 끝내버린 거다.
그걸 서른 넘으면서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까 너무 후회스럽고 한스럽더라. 세상에 내가, 아직도 너무 예쁘고 되게 현명하고 참을성도 많으시고 저렇게 멋진 여성을 그냥 엄마라는 틀에 가둬놓았다니. 심지어 난 남편도 아닌데 외롭게 방치하시다시피 한 거니까… 세월이 참, 내가 왜 그러고 살았나 했다. 서른 넘어서 알았고 그때부터 저는 계속 엄마랑 같이 있었다.
▶ 실제로도 애틋한 모녀 사이를 연기할 때 바탕으로 삼았었나.
(캐릭터를) 가다듬고 준비하는 시간에는 (그런) 감정들이 도움이 되지만 시작하고 나서 저는 다른 감정을 갖고 들어와서는 연기를 못한다. 엄마나 다른 걸 떠올리면 연기가 안 된다. 그 안에서 대본을 보고 마진주로서 마진주 엄마를 보고 연기해야지 감정이 딸린다고 해서 뭔가 다른 걸 상상하는 순간 깨진다. (캐릭터와 상황( 안에 딱 가둬야 돼서. 김미경 선생님, 호준이한테 매달려서 했다.
몰입이 안 되는 순간은 연기가 되게 안 좋아요. 초반에는 몰입이 잘 안 됐다. 첫 촬영부터 밤을 샜는데 현재의 38세(장면)를 쭉 찍었다. 너무 바투 감정씬을 찍고 나서 이미 맛이 가기 시작했거든요. (웃음) 제가 많이 방황했다. 그때 감독님이 "나를 믿어요"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괜히 믿어지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런 말을 하는 십중팔구는 믿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도.
예능감독님이라 편집도 많이 하시는데, (방송을 보니까) '이 사람이 나를 믿으라고 한 이유가 있구나' 했다. 그 다음부터는 되게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안착했다. (캐릭터가) 약간 동떠 있었거든요, 사실. 애기 생각하는 씬도 그렇고. 그걸 안착시키니까 되게 편안해졌다.
▶ 김미경의 출연이 작품 선택을 하게 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같이 연기해 보니 어땠나.
'동안미녀' 할 때 제 스승님(* 극중 장나라는 동생의 이력서로 패션회사에 취직하는 이소영 역을, 김미경은 소영의 솜씨를 일찍 알아보는 원칙주의자 백 부장 역을 맡았다)으로 나오셨고, 다시 한 번 꼭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의가 왔을 때) 두 번 생각을 안 했다.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고.
선생님은 제가 되게 좋아하고 동경하는 정서를 갖고 있다. 표현을 되게 작게, 안 하다시피 하는데 목소리나 분위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잘 전달된다. 많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전달이 되게 좋은 배우이시다. 그래서 선생님이랑 있으면 너무너무 편하게 연기가 됐다. (극중에서) 소주 한 잔 하고 노래하는 장면, 헤어지는 장면 찍을 때는 둘이서 '안 우는 게 더 힘들다'고 했었다. 얼굴만 마주쳐도 (눈물이 나서)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선생님 자체가 그냥 되게 위로가 되는 거 같다. (선생님께) "제 삶에 들어와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너무 따뜻하신 분이다.
위화감 그 자체였다. (대학생 연기하는 건) 때려죽여도 (위화감 없게는) 안 된다. (웃음) 촬영할 때 후반 작업하시는 분들이 신경 많이 써 주시기도 했고, (같이 연기한) 친구들이 정말 저를 받아들여준 덕이다. 시청자 분들도 (대학생) 설정이라고 확실히 못 박고 보셨고. 보는 사람들, 하는 사람들 모두의 아량으로 가능했던 것 같다. (웃음)
▶ 대학생일 때와 엄마일 때 연기하면서 중점에 뒀던 게 있나.
서진이 엄마 역할을 할 때 제 원래 말투랑 제일 비슷하게 연기를 했다. 스무 살로 돌아갔을 때는 몸은 스무 살인데 정신은 38살인 걸 보여주는 극명한 표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현실감을 넘칠 방법을 찾다가 콘셉트를 잡았다. 제 나이 또래 주부들은 아직 제스처나 말투가 바뀌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50대 초중반 아주머니로 잡았다. 스무 살이어도 두 개(진짜 1999년과 현재의 기억을 갖고 돌아간 1999년) 말투가 다르다. 더 (나이가 있는) 어머니 같이 연기를 했다.
▶ 반도, 남길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진주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큰 관심사였다. 결국 반도와 다시 이어졌는데, 어떤 장면이 가장 설렜는지.
차 사고 구해주는 씬 등 뒤로 갈수록 반도가 되게 멋있는 씬이 많았다. 근데 것보다 연기하면서 가장 반도한테 어? 하고 두근했던 건 반도가 "진주야. 너 노래 잘하는 것 잊어먹었었어" 한 거였다. (반도는) 항상 진주를 아줌마나 애기엄마로 표현했다. "야", "마진주!", "아줌마" 등등. 되게 다정하게 부른 것도 아닌데 "진주야" 하는 말에 되게 두근했던 것 같다.
진짜 사실은 별 거 아닌 것에 마음이 이렇게 되니, (서로) 가졌던 슬픔과 무거움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덜 수 있는데도 표현을 박하게 해 왔구나 싶더라. 그 말이 되게 두근했다. 뭔가 엄마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닌, 그냥 되게 예쁘장하고 노래도 좀 하는 여성, '나'로 딱 보인 것 같아서. 온전히 나를 불러주는 건 그게 처음이었다. "진주야"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멍해지고 광대에 힘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제일 반도한테 떨리는 씬이었던 것 같다. (기자 : 그 장면 다시 한 번 봐야겠다) 꿈틀대는 광대를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웃음)
▶ 함께한 배우들 도움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연기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최고에요! 특히 한보름(윤보름 역) 씨 조혜정(천설 역)씨 같은 경우는 저를 사랑하는 캐릭터였다. 그 친구들이 제가 스무 살의 진주로 안착하는 데 제일 많이 도움을 줬다. (손)호준이 같은 경우는 정말 진주를 애처롭게도 불쌍하게도 만들었다가 반도의 부인으로 보기도 했다. (장)기용이는 사실 되게 힘들었을 거다.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 선배이자 어른 얼굴로 첫사랑을 보는 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가 11살 연상이랑 해도 그랬을 것 같다. 너무 힘든 연기를 되게 열심히 해 줬고, (진주를) 너무 사랑스럽게 봐 줘서 좋았다. 두 사람이 다른 모양의 사랑으로 예쁘게 봐 줘서 진주가 빛났던 것 같아 되게 많이 고마웠어요.
(노컷 인터뷰 ② 장나라가 털어놓은 연기 고민 "저에게까지 순서 와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