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잠정 중단 후 열흘… MBC는 '재정비 중'

내부에선 '재건 움직임' 박차, '부당노동행위' 관련 압수수색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총파업을 잠정 중단한 지 10일째가 됐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김장겸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걸고 총파업을 벌였던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가 지난 15일 오전 9시부터 파업을 잠정 중단했다. 김장겸 사장 해임 후 3일 만, 파업 돌입 후 73일 만에 업무에 복귀한 것이다.

하지만 보도·시사 부문과 기술 부문은 여전히 제작거부 중이고 대전지부 역시 이진숙 사장 퇴진 때까지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파업 중단 후 열흘, '재정비'에 한창인 MBC 상황을 돌아봤다.

◇ 예능부터 교양 프로그램까지 차례로 '정상화' 진행 중

몇 주째 스페셜 방송만 나가던 '예능'이 가장 먼저 시청자들에게 돌아왔다. 파업 중단 첫 날인 15일 '라디오스타'를 시작으로 17일 '나 혼자 산다', 18일 '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 19일 '복면가왕'이 차례로 정상방송됐다. '무한도전'은 오는 25일부터 정상방송되고, '쇼! 음악중심' 역시 같은 날 생방송 체제로 전환한다.

DJ도 멘트도 없이 음악만 나가는 'BGM 방송'이 이어졌던 MBC라디오도 20일부터 전 프로그램이 제자리를 찾았다. 표준FM, FM4U 모두 PD·작가·아나운서들까지 돌아왔고, 라디오 스튜디오 안에는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라는 현수막도 붙었다.

약 두 달 반 만에 돌아온 FM4U의 DJ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복귀'를 기념했다. 이재은 아나운서는 "이 멘트 저도 너무 하고 싶었어요.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라고, 배철수는 "방송사의 사정으로 그동안 계속되던 음악방송을 중단하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재개한다"며 "다시 만나서 참 좋다"고 말했다.

경영과 영상미술 부문도 빠르게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다. 국장들이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 들이 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부당한 인사명령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게 MBC본부의 설명이다.

9월 4일 총파업 돌입에 앞서 7월 21일부터 '부당한 아이템 검열'에 항의하며 제작거부에 나섰던 'PD수첩'은 'MBC스페셜'과 함께 내달 중순 정상방송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단, 아이템 검열과 취재 방해로 구성원들에게 '퇴진' 요구를 받았던 김장겸 체제 인사 조창호 시사제작국장과 업무 협의는 거부하고 있다.

MBC라디오는 지난 20일부터 다시 정상방송됐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DJ 배철수의 뒤로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 응원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MBC 제공)
그간 비제작부서로 전보됐던 아나운서들은 파업 중단 후, 아나운서국으로 원대 복귀했다. MBC라디오 '시선집중'을 비롯해 '출발! 비디오 여행', '생방송 오늘 저녁' 등 일부 프로그램 제작에도 합류했다.

2012년, 2017년 파업에 모두 참여했던 변창립 아나운서가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이 물러난 '시선집중' 진행자 자리에 앉고, 한때 MBC에서 금기어였던 '세월호'를 복귀 첫 날 아이템으로 삼은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재개된 '시선집중'의 첫 출연자는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다.

반면, 보도·시사 부문은 '정상화'를 위해 여전히 제작거부 중이다. MBC본부 보도 부문 노조원들은 매일 오후 방송센터 7층 보도국 앞에 모여 보도국장, 센터장, 보직부장 등 '김장겸 체제 뉴스'에 가담했던 이들을 향해 항의 피케팅을 한다. 간부들의 업무지시나 인사발령도 거부 중이다.

기술 부문도 '여전히' 제작거부 중이다. MBC본부에 따르면, 기술 부문의 '제작거부 유지'로 현재 MBC 뉴스는 메인뉴스 '뉴스데스크'를 제외하고는 녹화뉴스를 강행하고 있다. 또한 'PD수첩', '100분 토론' 기술 지원과 골프 대회 중계도 거부하기로 했다.

이렇다 보니 MBC 보도는 파업 전후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보도국 간부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와중에도 가장 신속하고 정확해야 할 재난방송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규모 5.4의 포항 지진이 발생했던 지난 15일에도 MBC는 지진 속보 자막이나 뉴스특보 없이 만화영화를 그대로 방송했다.


MBC본부는 "MBC 사규 재난방송매뉴얼에 따르면 규모 3.0 이상의 내륙지진 발생 시 보도담당국장은 TV편성담당국장, 라디오담당국장과 협의해 재난방송을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날 MBC 보도국장과 뉴스편집부장은 사규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문화방송 재건'을 위한 내부 움직임 '활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보도 부문 노조원들이 '보직자 즉각 사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시위 중이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제공)
이번 파업에서 노조원들이 가장 많이 외친 말 중 하나는 '문화방송 재건'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기본이 무너지고 황폐해졌던 MBC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슬로건이었다.

단순히 '망가지지 않았던 과거의 MBC'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공영방송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준비하는 '백서 작업'은 모든 부문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가장 지탄의 목소리가 높았던 '보도' 부문의 걸음은 더 바쁘다. 그간의 보도참사를 낱낱이 기록한 백서 작업은 이달 말이나 내달 초 마무리될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국정원 정치개입 △국정농단 △촛불집회-태극기집회 △백남기 농민 사건 △전체적인 선거보도 △뉴스사유화 등 다층적인 내용이 담긴다.

이른바 '재건팀'에서는 '뉴스혁신안' 만들기에 한창이다. 취재·영상기자, 영상편집자, 컴퓨터그래픽 등 모든 분야의 의견을 모았고, 이제 정리하는 단계다.

MBC본부 남상호 보도 민실위 간사는 "회사 안에도 방송강령, 제작가이드라인, 시사·보도 프로그램 제작 준칙을 현실에 맞게 다시 쓰는 작업을 하는 것이 실질적인 목표다. 약 9년 동안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만큼, 공영방송 저널리즘이 어때야 하는지를 다시 고민하고 의견을 모아 새로운 MBC 방송강령이나 각종 준칙에 반영하겠다는 게 장기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제작거부 종료 시점은 언제쯤이 될까. 남 간사는 "현 보직자들은 부당한 보도를 이끌었던 김장겸 전 사장과 사실상 동일체여서 지시받을 수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신임 사장이 온 이후'를 언급했다.

하지만 보도 시스템을 어느 정도 재정비하고 그간의 과오를 사과하는 방송을 한 뒤 복귀를 할지, 바로 복귀를 할지 등 구체적인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MBC 아나운서들이 MBC 재건 관련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신동진 아나운서 페이스북)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12명이 회사를 떠나고 11명이 마이크를 잡지 못하는 등 가장 큰 후폭풍을 맞은 아나운서 부문의 각오도 남다르다. 아나운서들은 비대위 조직 '앞날바로세움위원회'를 꾸려 바삐 움직이고 있다.

김상호, 유수민 아나운서가 각각 위원장, 부위원장을 맡은 가운데 '백서발간팀'(팀장 강재형), '뉴스교육팀'(팀장 황선숙), '방송발전팀'(팀장 김범도), '평창올림픽준비팀'(팀장 허일후), '운영위'(팀장 손정은) 로 나뉘어 활동 중이다.

김범도 MBC아나운서협회장은 "기존의 좋은 시스템도, 정신도 모든 게 무너진 상태다. 전후 복구를 한다는 각오로 임하는 중"이라며 "MBC 아나운서들은 이번을 통해 언론인으로서 새롭게 우리의 역할을 자각하게 됐다. 앞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심의실, 주조정실, 경인지사, 사회공헌실, TV심의부, 매체전략국, 라디오국, 뉴미디어 뉴스편집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아나운서들은 파업 중단 후,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왔고 새로운 사장과 국·부장이 올 때까지 이 대오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김 협회장은 "언론자유와 공정방송이라는 대의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아나운서들 다수가 부당전보돼서 오랫동안 못 봤다. 제작거부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시간을 내어 만났다"며 "그래서 끈끈한 조직력도 다시 한 번 갖게 됐고, 그 동력으로 매일 회의하고 미래 설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 MBC 압수수색, 휘호와 슬로건 교체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MBC에서 벌어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후속조치도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지난 22일 부당노동행위 의혹과 관련해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사장실, 임원실, 경영국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은 전·현직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것이며, 부당하게 행사된 인사권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MBC 직원 70여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해 온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 상황을 종합한 뒤, 김장겸 전 사장 등에 대한 소환 일정을 조율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9월 28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김장겸·김재철·안광한 전 MBC 사장, 백종문 부사장, 최기화 기획본부장, 박용국 미술부장 등 6명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포착, 이들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4년 이전한 상암 사옥 1층 로비에 걸려있던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휘호도 볼 수 없게 됐다. MBC본부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글귀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그려진 큰 현수막으로 액자를 덮었기 때문이다.

'음수사원 굴정지인'은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하라는 뜻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수장학회는 MBC 지분의 30%를 보유한 주주다.

MBC본부는 '진실을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을 건 데 대해 "오직 시청자만 보며 MBC 정상화에 매진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또한 김 전 사장 취임 후 프로그램 종료 때마다 붙었던 '품격 있는 젊은 방송' 태그는 지난 16일 이후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사라졌다.

한편,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는 오는 27일 오후 5시까지 김장겸 전 사장의 잔여임기를 채울 신임 사장을 공모하고 있다. 현재까지 최승호 MBC 해직PD, 이우호 전 논설위원실장, 임흥식 전 논설위원, 송기원 논설위원, 송일준 PD, 윤도한 기자 등이 출사표를 낸 상태다.

'음수사원 굴정지인'이라고 쓰인 휘호는 지난 21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큰 현수막으로 덮였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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