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올해는 제발…" AI 확산, 떨고있는 농가들

경기도 선제 방역… 농가 "지원은 없고, 알아서 해라?" 불만

23일 오후 찾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면의 한 산란계 농장 앞. 닭 30만 마리를 사육하는 이곳 농장 정문에 '외부인 출임금지', '철통방역-소독철저' 등 문구의 안내판이 부착돼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올해는 제발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칼바람 속 영하의 날씨와 함께 AI(조류인플루엔자)의 공포가 엄습해오기 시작한 22일.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서 산란계 30만 마리를 키우고 있는 농장 대표 서춘식(45)씨의 바람은 오직 하나였다. '올해만 무사히….'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농장 주변에 이르자, 서씨는 "나가라"는 고함과 취재진의 접근을 막아섰다.

긴 시간 설득 끝에 서씨 자신이 농장 밖으로 직접 나와서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병'(AI)에 걸려 생떼같았던 닭 24만 마리를 앞마당에 직접 묻어야 했던 서씨.

서씨는 "(지난해) 정말 참담했다. 내 새끼처럼 보살폈는데 이걸 묻어야하니 너무 안타까웠다"며 "(올해 또 발생한다면) 할말이 없을 것 같다. 허무할 수밖에…. 그러니 올해는 제발 아무일 없이 넘어가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입을 뗐다.


농장 앞 '방역 상 출입금지', '철통방역', '소독철저' 등의 문구가 새겨진 경고‧안내판에서 서씨의 바람과 각오를 반영한 듯 비장함이 느껴졌다. 아울러 대인소독기, 차량소독기 등도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서씨는 지난해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해 '고온 차량 방역기'를 구입했다.

이미 대인소독기와 차량소독기를 설치했지만, 고온에 취약하다는 AI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특단의 장비까지 동원한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면 소재의 한 산란계 농장 앞에서 직원들이 차량 소독기 내 고온 방역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이 농장은 지난해 AI 피해로 닭 24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사진=신병근 기자)
◇ 시작된 AI의 공습…지난해 악몽 되살아날까 '노심초사'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AI 양성반응이 일어난 전국 건수는 383건, 이에 따라 가금류 농가에서 살처분된 닭, 오리 등은 모두 3천787만여 마리에 달한다.

이중 경기도의 피해가 가장 컸다.

같은 기간 경기지역에서 발생한 AI 감염건수는 124건, 살처분된 가금류만 1천589만여 마리에 이르는 등 농가들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했다.

올해 들어 지난 19일 전북 고창군의 육용오리 농가에서 첫 H5N6형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이 나온 이후 이날까지 전남 순천만에서 고병원성 AI 확진 사례 1건이 보고됐다.

이후 경기 화성시 화옹호에서도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돼 고병원성 여부가 조사중이다.

지난해 발생한 AI 피해를 입은 경기지역 한 산란계 농장에서 방역 요원들이 닭들을 살처분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 농가 "한 푼 지원없이 알아서 해라?"… 방역당국 "어느 정도 희생 있어야"

경기도는 AI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 대응에 나서며 방역 수위를 '역대급'으로 높였다.

경기도는 도내 31개 시‧군 중 축산농가가 많은 이천, 평택, 안성, 여주, 포천 등 14개 시‧군에 AI통제초소‧거점소독시설을 설치한데 이어 ▲내년 5월까지 농장 내 분뇨 반출 금지 ▲사료 등 운반차량 1일 1농장 방문 제한 ▲축사온도 2~3℃ 높이기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안의 경우 아무런 예산 지원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게 농가들의 입장이다.

서씨는 "(계란 환적) 장소라든지 이런 것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말로만 하고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우리 돈으로 직접 해야 하니 힘든 것"이라며 "(농가 각자의) 돈으로 해야 한다는 건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냐"며 하소연했다.

아울러 농가들은 당국 차원의 사전 방역활동법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실현 가능한 대책을 요구했다.

경기도 양주의 한 산란계 농장 대표 김진복(48)씨는 "자체적으로 분뇨를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농장 밖으로 쌓아둘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씨는 "(농장 내) 배분장이 있어도 잠시만 쌓아 둘 수 있는 규모로, 몇 달 씩 쌓아두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결국 야적을 하면 농장 주변 논밭에다가 쌓고 비닐을 씌워도 새들이 와서 다 뜯어먹게 된다. 한겨울에 논밭에 쌓아두면 자연발효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축사 온도를 2~3℃ 높이라는 것은) 결국 농장 내 환기를 덜 시켜 온도를 높이는 방법인데, 환기가 잘 되지 않으면 닭의 산란율이 떨어지고 달걀 품질도 저하된다"며 "환기가 안 되면 암모니아 가스가 차게 돼 다른 질병의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지난해 최악의 AI피해가 발생한 만큼 올해는 철저한 대비로 피해를 예방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역시 경기도와 맥을 같이 했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방역활동은)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터지고 나서 하면 늦는다"며 "초기에 막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방역주체라는 농가의 희생이 조금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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