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전원책도 박정희라면 이를 갈았다"

[박정희세대 관찰 보고서 ③] 제2, 제3의 박정희세대에 관하여

다큐멘터리스트 김재환 감독은 시대의 관찰자로서 특별한 경험을 지녔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까지, 이른바 '박정희 세대' 곁에서 그들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다. 그 결과물은 최근 선보인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 담겼다. '틀딱'이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인 박정희 세대는 어느덧 같은 시대를 사는 자녀·손주 세대에게 혐오의 존재로 전락했다. 그간 작품으로 권력자들의 민낯을 들춰내 온 김 감독은, 이들 박정희 세대가 '약자의 언어'를 쓴다는 데 주목했다. 약자인 그들은 어떻게 혐오의 대상이 됐을까. 김 감독의 관찰과 기록에 박정희 세대를 바로보고 포용 혹은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있다는 판단 아래, 최근 그와 가진 심층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악마화 '틀딱'이 극복의 길일까"
② "보수혁신 '쇼'에 MB만한 제물 없다"
③ "청년 전원책도 박정희라면 이를 갈았다"
<끝>

지난 7월 13일 전원책 변호사가 앵커를 맡고 있는 '종합뉴스9'에서 클로징 멘트를 하고 있다. 당시 전 변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 발행이 취소된 것과 관련,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옹졸한 처사"라고 비난하며 "저 세상에서 요즘 몹시 마음이 괴로울 박정희 전 대통령님, 송구스럽다는 말씀 올립니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사진=TV조선 '종합뉴스9' 방송 화면 갈무리)
"촛불집회에 나왔던 그 많은 사람들은 40년 뒤에 어떻게 분화돼 있을까?"

이 물음을 곱씹던 김재환 감독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르는데, 자신만만할 사람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전원책 씨도 젊은 시절에 박정희라면 이를 갈던 사람이었다. 그분이 강연에서 '청년 시절 박정희라면 이를 갈았는데, 나중에 공부해 보니까 박정희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처럼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본원적 자본을 형성해 준 민족의 영웅이었다'며 박정희 만세를 불렀다. 이 점에서 만약 청년 전원책이 촛불 정국을 접했다면 당연히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전원책 씨는 촛불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청년 전원책이 이 시대를 살았다면 분명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 어디 즈음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전원책 씨가 젊은 시절을 회고한 것을 보면 그분이 있어야 할 자리는 당연히 그곳이다."

결국 "젊은 시절 세종대왕 동상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를 들며, 수십 년 뒤 자신이 여전히 변화를 갈망하는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이 김 감독의 지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두렵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1970년대 청년기를 보낸 전원책 씨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청년 전원책이 '박정희라면 이를 갈았다'고 하지만, 그가 전두환 시대에 어떠한 저항을 했는지 언급한 부분은 없다. 박정희를 공부했더니 지금의 전원책이라는 존재가 됐다는 것은 '박정희 만세'를 부른 후에 기득권 뒤로 숨어 버리는 것 밖에는 안 된다. '공부해 봤더니 이렇더라'라는 말, 얼마나 비겁한가."

김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확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이어갔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로 다가온다. 태극기를 들었던 박정희 세대를 조롱하거나 폄하하는, 승리자로서 패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박정희 세대의 이야기를 조금 더 경청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는 "그렇지 않으면 그분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극우화' 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잖나"라며 "모든 사람이 '할배는 모두 극우'라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말하면 그들은 그러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이 먹으면 자연스레 극우가 된다는 것은 몹시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 촛불 앞 박정희세대…"하루하루 처절하게 무너져내렸다"

김재환 감독(사진=김 감독 제공)
지난 겨울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불타오른 촛불은 박근혜 세대에게 어떠한 의미였을까.

당시 촬영을 위해 박정희 세대 곁에 머물던 김 감독은 "촛불집회 초창기에는 이분들도 자신들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런데 점점 그 두려움의 강도가 커져갔다"고 전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 앉아 꿈틀대는 변화를 느끼고 있을 때, 저는 한 세대가 무너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 붕괴의 속도와 위기감, 두려움이 점점 커졌던 까닭에 몹시 고통스러워하시더라. 사람이라면 연민을 안 느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정신적으로 처절하게 무너져내리셨다. 스스로에게 '냉정해져야 한다'는 다짐을 계속 했는데도 쉽지 않더라."


그는 "자기 시대를 떠나보내는 세대의 슬픔과 연민, 처연함이 카메라에 짙게 담기는 것을 경계했다"며 "한 사람의 개인적인 슬픔이 아니라, 박정희 세대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이야기 구조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당초 기획은 커다란 두 줄기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나는 박정희·육영수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을 따라가면서 만들어지는 겨울을 통해 박정희·육영수·박근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머지 축은 박근혜의 정신분석이었다. 이 둘이 서로를 거울 삼아 마주보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탄핵으로 박근혜 부분이 옛날 이야기로 되면서 박정희 세대가 탄핵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는 "물론 권력자들의 경우 냉정하게 바라봐야 하지만, 한 세대를 두고 이야기할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접한 박정희 세대는 굉장히 순박한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친박집회 등에서 보여진) 그 세대의 이미지는 대단히 과격하고 말도 안 통하고 욕설을 내뱉고, '돈 받고 나온다'는 것 등이다. 제 경우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때 박정희의 사망을 겪었다. 이분들은 제가 겪지 못한 시대를 살았으니, 그 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이 지닌 정서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다만 박정희 세대를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그분들 스스로 자기 세대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우리는 흔히 박정희 세대를 연민이나 전쟁·기아와 관련한 공포·트라우마 같은 1차적인 정서로 표현한다. 그런데 그들은 절대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지 않는다. '박정희와 함께 산업화를 이룬 자부심' '박정희와 함께 공산화를 막은 자부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스스로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김 감독은 "그것이 진실에서 상당히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는 있더라도 '그런 판타지조차 없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부연했다.

◇ "거대한 기념관·동상 만드는 일이 '박정희 정신'인가"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사진=단유필름 제공)
"박정희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확신을 지우는 것은 결국 그들의 극우화를 두텁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김 감독의 지론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권력자, 힘 있는 존재에 대한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은 항상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믿음의 연장선상에서 그 반대편에 있는 힘 없는 사람들, 약자의 언어를 쓰는 박정희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우 세력이 점점 두터워지는 데 대한 두려움·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현재 김 감독은, 늦은 나이에 한글을 깨우쳐 새 세상을 만난 경북 칠곡 한 마을 할머니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을 1년 넘게 찍고 있다. 김 감독은 "'미스 프레지던트'와 촬영기간이 겹치기도 했는데, 어느날 칠곡 할머니 한 분이 '태극기집회에 가봤냐'고 물으셨다"고 운을 뗐다.

"TV에서 보니까 자기 또래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재밌어 보여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정치적 맥락 없이 '또래의 열정적인 에너지가 좋아보이더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는 노인들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공간이 없잖나."

그는 "칠곡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어르신들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가 2002년 월드컵 때 TV로 편하게 볼 수도 있는데 굳이 시청 앞에 갔던 경험처럼, 노인 세대에게도 무엇이 됐든 열정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 감독은 스스로를 '박정희주의자'로 자처하는 정치인 등 보수 기득권 세력을 향해 따끔한 충고를 날렸다.

"남유진 경북 구미시장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도 꿈꾸는 경북도지사가 되고 싶다면, 박정희를 기리는 거대한 기념관을 짓고 동상을 세우는 데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면 안 된다. 박정희 정신의 핵심이 정말 '애민'(愛民), 그러니까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애민을 실천하는 데 그 돈을 써야 할 것 아닌가."

그는 "이를 테면 박정희 시대에 가장 고생했던 가난한 어르신들 복지를 위해 3분의 2를 쓰고, 나머지는 그분들 손주 세대의 창업 등 새로운 도전을 지원하는 데 쓰는 것"이라며 "이렇게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남유진 시장이 경북도지사에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어차피 자기를 찍어줄 사람들만을 노려서는, 가두리 양식장 안에 그물 던지는 시늉만으로는 경북도지사가 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남 시장은 거대한 상징물을 지어 대구·경북 지역의 박정희 향수에 기대는 모습에서 방향을 확 틀어야 한다. 박정희 정신이 정말 애민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 정신을 실천하시라. 그것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닌가."

김 감독은 "쇼(show)는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때 성공할 수 있다"며 "남 시장에게 쇼의 방법과 전략, 방향을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에 거대한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 돈을 박정희 세대를 위해 쓰라고 기부하시라"며 "거대한 동상은 '위대한 업적을 지닌 이분(박정희)께 왜 고개 숙이지 않느냐'는 강요로 밖에 안 보인다는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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