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발(發) 사정 칼바람을 정통으로 맞고있는 자유한국당이 검찰 견제를 주장하면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에는 찬성하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에 칼자루를 하나 더 쥐어주는 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당내 의원들이 속속들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자 한국당에서는 검찰 수사의 편파성을 문제 삼으며, 야권에서 기관장을 맡는 조건으로 공수처를 찬성해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는 자칫 청와대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내부 이견도 단속하고 있다.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에서 진행된 공수처 논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에서는 야권 추천 인사 등 중재안을 제안했지만 한국당은 (공수처에) 당론 반대기 때문에 각론도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정기국회 내 공수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법사위는 만장일치 체제로 진행돼 사실상 한국당 협조 없이는 국회 통과가 힘든 게 현실이다.
이날 소위원회를 마친 후 법사위 한국당 간사인 김진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오늘이 벌써 4번째 법안 소위였는데 (이런) 반복적인 협의는 실익이 없다"며 "더 이상의 공수처 논의에 응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는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고, 법사위는 종전에도 만장일치 방식으로 표결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의에 실익이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공수처 논의에 진전이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청와대가 당정청 회의를 열어 "검찰 개혁은 촛불 혁명의 요구이고, 공수처는 검찰 개혁을 위한 기관"이라는 논리로 공수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한국당에서도 입장 선회의 기류가 읽혔다. 한국당 장제원 수석 대변인은 "검찰에 대한 강력한 견제 기관이 설립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이같은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제동을 걸면서 이는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났다. 베트남을 방문 중인 홍 대표는 이날 오후 늦게 자신의 SNS(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공수처 문제는 국가 사정기관 전체 체계에 관한 문제이지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충견도 모자라 맹견까지 풀려고 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며 검찰을 정권에 충실한 충견에, 공수처를 맹견에 비유했다. 결국 공수처도 문재인 정권의 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홍 대표는 장 의원에게 "공수처 문제는 아예 언급도 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검찰발 사정 태풍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한국당 입장에서는 검찰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지만 그 방안으로 거론되는 공수처에는 찬성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으로부터 1억여원을 수수한 의혹으로 친박계 구심점인 최경환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지난 20일 단행됐고, 이우현 의원과 원유철 의원 등도 검찰 수사 선상에 잇따라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에 대한 불만이 폭주해, 한국당에서는 연일 검찰의 정치보복·편파 수사를 중단하라는 논평이 나오고 있다.
한 당내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설령 야당이 공수처장을 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그동안 문재인 정권이 해온 것을 보면 야권 추천 인사로 처장을 앉힌다고 해도 그들 마음대로 (공수처를) 휘두를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야권 추천 인사로 공수처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문재인 정권에 좋은 일이다. 찬성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검찰의 사정 태풍에 직면한 상황을 두고서는 "(검찰 수사가) 잘못됐지만 검찰 개혁의 방법이 없다. 공수처를 허용해주면 속는 것이다. 완전히 정부여당의 올가미에 걸리는 것"이라며 "여론이 (문재인 정권에) 돌아서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