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8년 9월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남자 역도 60kg급 경기에 출전한 나임 슐레이마놀루(터키)가 금메달을 확정짓자 장내는 환호와 박수로 가득찼다.
이날 슐레이마놀루는 인상 152.5kg, 용상 190kg, 합계 342.5kg으로 금메달을 땄다. '용상에서 몸무게의 3배, 인상에서 몸무게의 2.5배를 들어올릴 수 없다'는 통설을 뒤집었다. 대기록을 세웠음에도 그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감사의 표시로 손을 한 번 까딱했을 뿐 무덤덤했다.
'역사(歷史)를 바꾼 역사(力士)' 슐레이마놀루가 세상과 작별했다. 외신은 19일(현지시간) "슐레이마놀루가 50세를 일기로 전날 터키 이스탄불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간부전으로 지난달 간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뇌출혈이 발생하는 등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슐레이마놀루는 '포켓 헤라클라스'(Pocket Hercules)로 불렸다. 키 147cm의 작은 몸집이지만 200kg에 가까운 바벨을 번쩍번쩍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역도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올림픽을 3연패(1988, 1992, 1996년)했고, 세계선수권대회를 7번 제패했다. 세계기록만 46번 갈아치웠다.
불가리아의 터키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슐레이마놀루는 16살 때인 83년 처음 세계기록을 세우는 등 될성부른 떡잎이었지만,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국가의 출전 보이콧으로 84년 LA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자기 몸무게의 3배를 들어올리는 괴력을 발휘하며 첫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잇달아 제패했다.
올림픽 3연패에 성공했음에도 슐레이마놀루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99년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다. 인상 세 차례 시도를 모두 실패하며 실격 처리됐지만 그의 도전은 박수받아 마땅했다.
슐레이마놀루는 조국 터키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불가리아의 소수민족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불가리아는 터키계 주민에게 개종과 개명을 강요했다. 샬라마노프(Shalamanov)로 개명당한 슐레이마놀루는 86년 대회 참가 차 방문한 호주 멜버른의 한 호텔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 하고 대표팀을 이탈했다.
터키 영사관을 통해 망명한 그는 터키 공항에 도착한 뒤 활주로에 입맞춤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슐레이마놀루는 사랑과 존중 두 단어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 천 명의 국민이 찾아와 세상을 떠난 영웅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