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의 심장부 도쿄돔에서 열린 터라 일본 대표팀은 압도적인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경기를 펼쳤다. 대만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적잖았지만 일본 응원단 규모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일본과 대만 팬들이 즐비한 가운데 관중석 한편에는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이날 오전 훈련까지 취소하며 컨디션 회복에 주력한 태극전사들이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박민우를 비롯해 김하성, 이정후, 김대현, 심재민, 류지혁 등 대부분의 대표팀 선수들은 휴식일도 반납하고 미리 결승전에 만날 상대를 탐색하러 경기장을 찾았다.
그 가운데 '맏형' 장필준은 가장 뒷자리에 않아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대회 기간 머무는 호텔의 메모지에 장필준이 적고 있던 것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장필준은 별거 아니라며 메모지를 숨겼지만 이후 조심스레 내용을 보여줬다. 그 안에는 일본과 대만 선수 타자들의 특징이 적혀있었다. 결승은 개막전에 이어 다시 한번 한일전으로 정해졌지만 장필준이 경기를 지켜보는 순간에는 아직 결승 진출 팀이 확실하게 가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메모지에는 양 팀 타자들에 관해 적어둔 내용이 가득했다.
장필준은 대표팀이 치른 두 경기에 모두 출전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16일 일본전에서는 4-3으로 근소하게 앞선 8회말 등판해 세 타자를 연이어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대만과 경기에서는 더욱 힘든 상황에 마운드에 올랐다.
1-0 리드를 잡은 8회 선발 임기영에 이어 박진형이 공을 넘겨받았다. 아웃 카운트 2개를 잘 잡았지만 볼넷과 2루타를 허용하면서 2사 2, 3루에 몰렸다. 장필준은 이 위기를 넘길 선수로 선동열 감독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장필준은 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천쯔하오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위기를 지워냈다. 그리고 9회 등판해 삼진 2개를 솎아내며 경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2경기에서 총 2⅓이닝을 소화하며 실점 없이 탈삼진 6개를 기록하는 위력투를 펼쳤다.
한국은 이제 일본과 대회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장필준은 이번에도 경기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투수로 등판할 전망이다. 우승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을 상상해볼 만 했지만 그는 "9회에 누가 나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기기만 하면 된다"며 "어떤 선수가 나가던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기쁘게 잡아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필준도 기대하는 세리머니는 있었다.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승리를 맛본 뒤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것이다. 그는 "일본과 1차전에서 굉장히 힘든 경기를 했다. 힘든 결과를 받게 해준 상대를 꺾고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게 된다면 뭉클할 것 같다. 그리고 평생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화를 마친 장필준 앞줄에 앉은 다른 선수 전체를 지목하며 "내 기사보다 우리 동생들 기사를 더 많이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장필준은 '맏형'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