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흔들려도 지켜보기만" 지진 나면 장애인은?

경주 지진 1년 넘었지만 행안부 '여전히' 대응매뉴얼 없어

포항 지진피해 현장 (사진=자료사진)
#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원룸에서 거주하는 이모(56) 씨는 15일 지진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그의 몸 오른쪽 전체가 마비됐기 때문에 탈출은 생각조차 못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20초 넘게 집이 흔들리는 것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이 씨는 "몸이 성하다면 계단을 뛰어 내려가든지 했을 텐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공포가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처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지진 등 재난 상황에서 최소한의 대피 여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당국은 최소한의 재난관리 매뉴얼조차 만들지 않은 채 이들을 위험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경북 경주에서 사상 최대의 지진이 나고 1년여가 흘렀지만 장애인들의 처지는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장애인 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 경주 지진 당시에도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흔들리는 건물 속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은 물론 최소한의 '안내', 재난대응 공식 매뉴얼조차 없기 때문이다.

당장 재난관리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의 '지진 국민행동 요령 소책자'만 봐도,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행동요령은 한 줄도 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같은 재난 상황이라도 처하게 되는 조건이 매우 상이하지만 모든 정보는 재난 취약계층을 배제하고 있다.

행안부가 지난 3월 취약 계층 대상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한 게 전부다. 이마저도 지난해 9월 지진 당시 취약 계층의 안전 문제가 불거진 뒤에서야 이뤄진 '뒷북 대책'이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내년 초나 되면 지진 상황 시 행동 요령을 담은 책자를 배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포항 지진에선 도움이 되지 못한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들은 취약계층 안전문제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한국장애인연맹이 전국 장애인과 장애계 종사자 등 200명을 대상으로 장애인 안전과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27.3%는 '재난 시 장애인 대응체계 미흡'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표준화된 재난대응 체계의 부재'를 지적하는 응답자도 26.1%에 달했다.

한국장애인연맹의 원종필 사무총장은 "취약계층을 위한 재난 대응 매뉴얼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 요청해왔던 것"이라며 "행안부의 존재 이유가 모든 국민의 안전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임에도 배려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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