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고 '버릴 수 없는 소방장비'가 됐죠" 소방관의 눈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그동안 재활하느라 쓴 병원비를 다 합치면 집 한 채를 샀을 거예요. 저는 그날 뒤로 '버릴 수 없는 소방장비'가 됐어요."

모 지역소방본부 소속 구급대원 A 씨는 9년 전 현장에서 당한 부상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2008년 어느 토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1시간가량 일찍 출근해 대기하고 있던 A 씨에게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3층 주택에 심정지 환자 발생'

부리나케 출동해 응급조치를 마치고 100㎏에 육박하는 거구를 들것에 실어 나르던 때였다. 별안간 허리에서 '우두둑'하고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까닭인지 소변도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하체 신경이 손상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환자는 숨졌고, A 씨는 이날 '마미총 증후군'이라는 병을 얻었다. 그때부터 일상생활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마미총 증후군 부작용으로 방광에 장애가 생겼고, 퇴행성 추간판탈출증도 앓게 됐다.

A 씨는 "공상(公傷. 공무 중 부상) 신청을 했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마미총 증후군과 소방업무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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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비 때문에 다녀요" 소방공무원의 눈물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올해 9월까지 공상 신청을 한 소방공무원의 수는 모두 1558명이다. 이중 A 씨처럼 불승인 처분을 받은 소방공무원들은 130명(8.34%)으로 나타났다.

공사·공상 등 처우에서 소방공무원들의 불만이 높다는 통계도 나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시‧도 소방본부 소속 소방공무원 4만 3600여 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사상 처리 등 처우가 유사직렬(경찰, 교정)에 비해 부족한가' 묻는 질문에 전체 87.2%가 긍정(매우 그렇다·그렇다)했다.

'공사상 처리, 소송 등 법률적 지원이 유사직렬(경찰, 교정)에 비해 부족한지' 묻는 질문에는 88.4%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만큼 의료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소방무원 중 건강 이상 판정을 받은 비율은 2013년 52.5%, 2014년 56.4%, 2015년 62.5%로 갈수록 늘고 있다.

A 씨는 "해마다 의료비로 천만 원 정도를 쓰는 것 같다"며 "주변에서 '그렇게 몸이 불편한데 왜 안 그만두냐'고 물으면 '병원비 때문'이라고 답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9월 강릉 경포 석란정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고(故) 이영욱(59) 소방경과 고(故) 이호현(27) 소방교의 영결식. (사진=자료사진)
◇ 소방보건의 '0명', 소방전문치료센터 예산도 '0원'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소방공무원의 안전과 의료지원 문제를 두고 정부·지자체·소방청 모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소방청장 또는 시·도지사는 소방공무원 보건안전 및 복지 기본법(소방공무원복지법)에 따라 각 본부에 소방보건의를 두어야 하지만 이들을 전담할 소방보건의는 전국에 단 한 명도 없다.

대신 소방청은 전국 의료기관 69곳을 '소방전문치료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병원 단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68개 병원에서 소방공무원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라 이용률이 저조한 편이다.

소방공무원복지법에 따라 중앙·지역 소방전문치료센터의 운영비용 역시 국가 또는 시·도가 부담하게끔 돼 있으나 취재 결과 2017년 현재 전국 어느 지자체에서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가 내년부터 1억 9천만 원 상당의 예산을 편성하고, 보라매병원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치료비를 지원할 예정이지만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다.

정부가 소방공무원 전문병원 격인 '소방복합치유센터'조차도 2021년 이후에야 개원이 가능할 전망이어서 이같은 의료공백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전문치료센터가 지역 소방공무원의 의료 지원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지만 건강검진 용도로만 사용될 뿐 사실상 실효성이 없어 관련 예산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향후 소방복합치유센터 위치를 우리나라 중심부에 둬서 지역 소방공무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그들이 마음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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