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고대영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내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의 파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4일부터 71일째 파업 중인 새노조는 1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대영 사장 국감 발언을 반박하고 파업 현황을 설명했다.
◇ 고대영 사장의 국감 발언도 조목조목 반박
새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고대영 사장의 주요 발언과 답변을 반박했다.
고 사장은 이날 파업 규모를 묻는 질문에 "11월 8일 기준으로 20.9% 정도 참여 중"이라고, 방송 파행 상황에 대한 질문에 "일부 뉴스나 프로그램이 조금 차질 빚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들은 그대로 방송이 되고 있다"고 답했다.
고 사장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파업 규모는 1천여 명이 채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파업 참여 중인 새노조 노조원만 15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메인뉴스인 '뉴스9'는 평일, 주말 모두 20분 단축 방송하고 있고, 진행자 교체·편성 삭제 등 파행을 겪은 뉴스만 18건에 이른다.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강윤기 정책실장은 "일부 차질을 빚는다는 고 사장 발언은 사실과 매우 다르다. '명견만리', '도전골든벨', '생로병사의 비밀' 등 주요 프로그램이 결방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주목할 만한 것은 예능이다. 역대 파업 중 가장 고강도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주 기준으로 월요일 '안녕하세요', 화요일 '용띠클럽', 수요일 '살림남' 결방되고 일요일에는 '1박 2일' 스페셜방송 나가고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다음주부터 결방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불후의 명곡', '가요무대', '콘서트 7080', '개그콘서트', '뮤직뱅크' 등은 보직간부들이 연출하고 있는데 예능국 노조원들이 이에 항의하고 있다. 예능·교양·기획제작 PD들도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는 평창올림픽 개최 D-100을 맞아 동계올림픽 경기장 현장에서 '뉴스9'와 '스포츠뉴스'를 특집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스포츠국 노조원 대다수가 포함된 새노조가 파업 중이라 모두 무산됐다. 지난 5일 예정됐던 평창올림픽 D-100 특집 '열린음악회'도 일반 음악회로 편성됐다.
김영민 스포츠국 중앙위원은 "부사장 주재의 TF, 스포츠국장 주재 실무회의가 있는데 파업 직전 한 번 회의하고 중지된 상황이다.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을 기준으로 사장에 보고하는 방송계획은 10월에 올라갔고, 방송단 파견 결재가 1월에 올라갔는데 되지 않고 있어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8일부터 진행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발전 중계방송 역시 무산됐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내년 1월로 예정된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대표 최종선발전 중계방송를 비롯해 '한눈에 평창'(15부작), '다시 보는 동계올림픽 명승부'(5부작) 등 스포츠국이 기획한 올림픽 관련 프로그램이 줄줄이 불방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KBS가 사상 최초로 UHD TV 국제신호로 제작하기로 한 컬링과 패럴림픽 일부 종목 등도 차질이 예상된다는 것이 새노조 설명이다.
김 위원은 "사장은 국감 때 특집 프로그램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제대로 준비된 게 없다. 선수 인터뷰, 훈련 모습 등은 사전제작해야 하는데 영상자료 확보에도 실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1일차라는 마음… 노조원 늘어 파업 '강화'돼"
새노조에 따르면 KBS노조 파업 중단 뒤에도 업무복귀 인원이 현격히 늘어나지는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뉴스를 맡고 있는 취재기자 중 업무복귀 인원은 3명 정도다. 촬영기자 10명 중 7명은 KBS노조 소속이었다가 파업을 이어가기 위해 새노조에 가입했고 3명은 휴가를 내고 업무복귀를 거부 중이다.
대전충남지부 김문식 지부장은 "KBS노조 파업 중단 선언 후 대전충남지역에서는 KBS노조에서 지명파업 중이던 16명이 (집행부의) 결정에 분노하고 실망해 저희 새노조에 가입했다. 심각한 범죄 혐의자로 의혹 받고 있는 사장과의 거래나 협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요지였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파업 분열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KBS노조는 파업에 미온적이었다. 그 인원이 새노조로 합류해 오히려 제대로 된 파업을 하게 됐기에, 파업 보강, 파업 강화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성재호 본부장은 "새노조 파업 인원은 1500여 명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KBS노조의 이탈은) 아주 일부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71일차지만 1일차의 마음으로 파업을 맞고 있다.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법 개정안 통과'와 '고대영 사장 사퇴'를 연결지은 KBS노조의 결정에 대해서는 "자유한국당, 이인호 (KBS이사회) 이사장의 주장에 KBS노조가 궤를 같이 하면서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저희는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방송법 개정은 당연히 되어야 하지만 고 사장 퇴진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공포 후 3개월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고 "이사회 및 집행기관은 이 법 시행 후 3개월 이내에 이 법 규정에 의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법안 부칙에 따라 현 고대영 사장과 KBS이사회 이사들은 임기를 거의 다 채우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내달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빨라야 6월에 '새 판'을 짤 수 있는데 고대영 사장의 임기는 내년 11월 23일, 현 KBS이사회의 임기는 내년 8월 5일까지여서 사실상 '시간끌기'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새노조는 △사장 임면제청 시 재적이사의 2/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는 '특별다수제' △사업자-종사자 동수로 구성된 편성위원회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등을 '방송법 연계 퇴진론'의 한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