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는 이병헌·김윤석·박해일 등이 나오는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 시즌1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킹스맨: 골든 서클'(감독 매튜 본) 등 쟁쟁한 영화 가운데서 비교적 '약체'로 꼽혀 스크린과 상영회수에서 밀렸다.
하지만 직접 본 관객들의 '재미있다'는 후기는 극장가 판도를 확 바꾸었다. '범죄도시'는 개봉 6주차임에도 꾸준히 관객이 들어 661만 3885명(11일 기준)을 돌파했고,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3위가 됐다.
'범죄도시'에는 대중에게 낯설 만한 '새로운 얼굴들'이 특히 많이 나왔다. 상업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할은 처음 맡았던 김성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극중에서 금세 도시의 무법자로 떠오른 신흥범죄조직 흑룡파의 멤버 양태 역을 맡았다.
해맑은 얼굴로 주로 손도끼를 써 사람을 공격하는 양태 역을 완벽 소화한 김성규를 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범죄도시'가 역대 청불 영화 3위라는 기록을 썼다. 예상했나.
당연히 못했다. 다른 형들도 다 이렇게까지 예상은 못할 거 같다. 저는 이 영화로 상업영화를 처음 제대로 해 보는 거라. 흥행이 저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흥행이 꼭 되어야 돼'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쳤던 거 같다. '손익분기점이라는 걸 넘었으면 좋겠다' 정도였다. 알려지지 않은 저 같은 배우를 캐스팅한 제작사와 감독님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굉장히 세다고 생각했고, 영화가 좀 더 리얼해야지 보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고 봤다.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때 마음을 좀 놓았고 그 후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300만이 넘어가면서 '정말 이게 이렇게까지 되는구나'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얼떨떨한 것 같다. 유명 배우나 좋은 감독, 좋은 영화로서의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관객분들의 입소문이 되게 중요하구나 싶었다. ('범죄도시'가) 비교적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했고,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많은 걸 보고 관객분들이 애정과 안타까움을 갖고 홍보를 해 주셨다. 영화가 이런 식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구나! 신기하고 감사하죠.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저는 N차 관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무대인사 다닐 때도 여러 번 보신 분들이 계셨다. 저도 관객으로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가 있긴 하다. 다른 식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 적은 있지만, 극장에 다시 와서 (같은 영화를) 보는 게 쉽진 않았을 거라고 본다. 여성 관객분들도 많았는데 한 번은 친구랑, 다른 한 번은 남자친구랑 이런 식으로 보신다고 하더라. 제 지인 중에도 한 번씩 더 보는 경우가 있었다.
▶ 인터뷰를 보니 지금까지 영화를 3번 정도 봤다고 했다. 그동안 더 봤는지 궁금하다.
한 번 더 볼까 고민을 했었는데 요새 바빴다. 저희가 거의 초반에 상영관 600개로 시작했는데 지금도 500개 넘더라. 얼떨떨하죠.
▶ 다 같이 '범죄도시' 티셔츠를 입고 한 무대인사가 인상적이었다. 지난달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때에도 무대인사를 했는데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지.
무대인사는 3주차를 마지막으로 끝냈다. (제 장면이) 이미지가 강하고 눈뜨고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분도 있기 때문에 (저를 보셔도) 누구지?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몇 번씩 보는 분들은 호응을 많이 해 주셨다. 처음에 무대인사 갔을 때 걱정 많이 했다. 저를 잘 모르실 텐데 앞에서 얘기하는 게 괜찮을까 싶어서. 그래서 짧게 얘기하려고 멘트도 길게 준비 안 했다. 막상 현장에서 질문 나오는 거나 반응을 보니까 저도 자칫 오버할 뻔했다. '더 가면 안 된다' 하면서 스스로 적당히 적당히 (웃음) 했다. 요 근래는 간혹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다. 긴가민가 하신다. 어떤 분은 술 드시고 가시다가 절 보고 영태 아냐? 그러셨다. 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웃음)
▶ 일 없니?", "전화 아이(아니) 받을 거니?" 등 극중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저도 그걸 느꼈다. 영화 하나가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소비되는 게 입소문 때문인 것 같은데 신기하더라. 그러면서 저희 조연 연기자들, 다양한 배우들에게까지 관심이 가고 반응이 오는 게, 관객으로서 봐도 이런 영화가 되게 오랜만인 것 같다. 저희(배우)끼리 얘기 나눴을 때도 '이렇게 다 살려줄 수 있다니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했었다. 관객들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어떤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선입견 없이 보시는 것 같다. 영화에 잘 맞는 캐스팅을 한 것 같다. (웃음) 저도 그런 이유로 캐스팅된 것 같다. 알려지지 않은 배우여서. (웃음)
(웃음) 양태 역을 (하게 되리라고) 알고 간 건 아니었다. 다만 조선족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을 만들려고 했다. 주어진 대사도 그렇지만 미친놈 같은 모습을 많이 발산했던 것 같다.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니 에너지 자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시나리오 봤을 땐 양태라는 역할이 딱 짚이는 역은 아니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것 같은, 여러 가지를 그려볼 수 있는 역할이었다. 눈썹도 밀고 나름대로 제가 만들어놓은 느낌을 보고 선택해 주신 것 같다. 저는 평소 모습은 양태라는 다르기 때문에. (웃음) 양태 같은 사람이면 큰일 나죠. (웃음)
▶ 장첸(윤계상 분)이 이끄는 흑룡파의 다른 멤버인 위성락 역을 맡은 진선규는 외적 이미지를 만들 때 고생했다고 밝혔다.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또, 양태란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사실 저는 많이 어려웠어요. 감독님이나 선규 형, 계상이 형이(외적인) 제 상태를 보고 잘할 수 있다고 양태랑 잘 어울릴 거라고 믿어주었는데, 양태라는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할까 왜 (흑룡파와) 같이 다닐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양태 캐릭터의 서사가) 영화에서 중요한 게 아니고 드러나지 않더라도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저 혼자 전사(과거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다. 안 해도 되는 고민일 수 있는데 계속 안고 살아왔다.
감독님이 메소드 연기를 한다고 하셨는데 (웃음) 현장에서도 명확한 느낌이 아니라 고민했던 거다. 그러다 보니 풀어져서 농담하고 이런 모습보다는 어디 짱박혀서 고민하고 있고 (웃음) 그 모습을 감독님이 보시기에는 '저 친구 저렇게 메소드 연기하는구나' 한 게 아닐까 싶다. (웃음) 그런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럽지만 너무 영광이면서 감사하다.
장첸에게 양태는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장첸은 머리가 좋으니까 양태의 단순함을 잘 이용했을 것 같다. 위성락(진선규 분)이 잡히고 양태가 칼 맞고 나서 장첸이 돈 빨리 모아 떠나려고 하면서 돈 주는 장면이 있다. 처음엔 대사가 직접적이었는데 나중에 '일 없니?' 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장첸이라는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양태의 성격이 많이 드러난 장면이라고 본다. 그게 조금이라도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조금 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너무 전형적인 '악역' 캐릭터 뒤에 서 있기만 하면 안 되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 흑룡파 멤버들이 전부 세 보였지만, 장첸-위성락-양태로 이어지는 서열이 분명해 보였다.
양태는 이 무리에 함께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아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 아름다운데? (웃음) (기자 : '안정'을 느끼는 것 아닐까) 안정! 맞다. 여기서만 쓸모 있는 거다. 양태가 서열을 나눈다고 보진 않는다. 위성락이 돌아왔을 때 장첸이 도끼를 꺼내라고 하는 장면에서 두려움이 있던 건 맞았다. 그 촬영을 계산하고 한 건 아니고, 씬 자체가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잘 지내던 흑룡파 멤버들에게 선이 그어지는) 이런 순간에 대한 낯섦 때문에 당황한다고 봤다.
기본적으로 양태가 혼자 뭔가를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고 시키는 걸 잘하는 거라고 봤다. 그런 행동도 어렸을 때부터 장첸과 다니면서 생긴 게 아닐까. (범죄를 저지르는 데에 대한) 공포감은 없을 것 같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봤고, 스스로를 들개라고 생각하고, 강하면 당연히 살아남는 걸 체득한 인물이니.
▶ 영화에 잔인한 장면이 꽤 나오는데, 그때 클로즈업을 한다거나 선정적·폭력적 장면을 오래 끌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쓸데없이 잔인한 장면은 넣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저희는 좀 걱정했다. 진짜 리얼하게 가야 되지 않을까 해서. 촬영 때부터 15세 관람가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긴 들었고, 카메라 앵글도 신경 썼던 게 보였다. 15세로 가면 제 장면은 많이 잘리겠다는 생각은 했다. (웃음) 그런데 청불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편집 덕분에) 한 번씩 더 보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 VIP 시사회 때 처음 보고 저는 장면의 잔인함과 상관없이 (흑룡파가) 너무 극악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해 놓고 어떻게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하지? 그러면서. (웃음)
(노컷 인터뷰 ② '범죄도시' 김성규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