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움푹 팬 눈에서 눈물 뚝뚝…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그 이후 (계속) |
◇ 한국인 시선 회피하는 하미학살 생존자
평화기행단이 찾은 지난 4일 만남에서도, 쯔엉티투 씨는 취재진과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한국군이 가족을 죽이고 자신을 불구로 만든 날이 생생하다 못해, 여전히 그 피해가 자신과 자식의 몸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쯔엉티투 씨는 생후 3~4개월 된 막내딸과 함께 자택 안방에 있었다고 한다. '따이한(대한)'으로 불리던 군인들이 마을 한쪽으로 주민들을 불러냈지만 출산 직후의 여성이 아이 셋을 데리고 나가기는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별안간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 몇 명이 다짜고짜 총을 쏘기 시작했다. 큰딸(7)과 아들(4), 쯔엉티투 씨의 새언니 2명, 올케 1명, 조카 7명이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난사를 마친 군인들은 곧이어 불을 질렀다.
그의 품에 안겨 있었던 막내딸 역시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왔다고 한다. 쯔엉티투 씨는 "아이는 이때 큰 충격을 받고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다른 아이와는 달리 정신질환까지 갖고 살아야 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 가족 모두 학살 피해…움푹 팬 눈으로 울며 "한국군 원망"
이후 일주일쯤 뒤 한국군이 마을을 떠나면서 주민 135명의 시신은 참혹하게 훼손된 채 발견됐다. 일부는 불도저에 밀려 짓밟혀 있었고 화염이 휩쓴 자리는 잿더미로 변했다. 소수의 생존자와 주변 마을 주민들은 그제야 흩어진 살점과 뼛조각을 주워 모았다.
학살 당시 다른 도시에 있어 겨우 화를 면했던 럽 씨의 경우 다섯 살배기 여동생을 비롯해 6명의 가족을 잃었다. 어머니인 팜티호아 씨는 현장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양쪽 발목을 모두 잃고 지난 2013년 87세의 나이로 숨졌다고 한다.
가족을 덮친 불행은 럽 씨마저 집어삼켰다. 전쟁 후 황무지로 변해버린 고향 땅을 개간하다 불발탄에 두 눈을 잃게 된 것이다. 움푹 팬 한쪽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연신 쓸어내리던 럽씨는 "그동안 한국군을 정말 원망했고 화도 많이 내고 살았다"며 "이제는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엄청난 통증…부모형제 없어 식모살이"
마당에서 놀던 6명의 아이는 요란한 총성을 듣고 깊이 1m, 폭 4m의 작은 동굴에 숨었지만 곧바로 발각돼 온몸으로 총탄을 받아내야 했다. 당시 8세이던 응우옌티 탄(57) 씨는 배 밖으로 튀어나온 창자를 부여잡고 도망쳐 미군에 구조됐다. 그의 동생은 입이 다 날아간 채 숨졌고 함께 있던 아이들도 총·칼을 맞아 즉사했다. 어머니는 마을 어귀에 있던 시신 더미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현지 기상 악화로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베평화재단을 통해 "비가 오면 총상을 입었던 부위에 장이 꼬이는 것 같은 엄청난 통증"을 느낀다는 탄 씨의 증언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부모형제 없이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며 식모살이부터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회고했다. 특히 그는 "먼저 간 엄마를 오래 원망하며 살았다"고 한다.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는 "새로 학살목록을 만들고 있는 꽝남성의 경우만 해도 이미 2000년 발표된 것의 2배가 넘는다"며 "자료를 단서로 새로운 마을에 들어가면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학살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