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어시스트를 받아서 제가 백도어 득점을 했을 때 '아, (윤)호영이 형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10명이 뛰는 농구 코트 위에서 선수 한명이 진한 존재감을 분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252일만에 돌아온 원주 DB의 간판 스타 윤호영은 달랐다. 동료들은 윤호영이 코트에 투입되자마자 그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두경민은 지난 9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끝난 고양 오리온과의 경기를 마치고 윤호영의 패스를 받아 컷인 득점을 올렸을 때 윤호영의 복귀가 실감났다고 말했다.
그런 장면은 또 있었다. 두경민은 "수비할 때 아차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뒤를 돌아봤는데 (나를 도와주는) 동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등번호가 보였다. 호영이 형의 번호 13번이었다. '아,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DB는 연장 접전 끝에 오리온을 101-91로 눌렀다. 이상범 감독은 2쿼터가 승부처였다고 말했다. DB는 2쿼터 초반 오리온에게 연속 득점을 내줘 22-26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 윤호영이 투입됐다. 윤호영은 6분동안 2점 2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올렸다. 스코어는 뒤집혔다. 윤호영이 2쿼터 종료 1분21초를 남기고 벤치로 물러날 때 DB는 오리온에 45-39로 앞서있었다.
4점차 열세가 6점차 우세로 바뀌었다. 윤호영이 6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10점'의 득실점 마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상범 감독은 "2쿼터가 굉장한 고비였다. 윤호영이 들어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역시 좋은 선수라는 생각을 했다"며 "수비 범위가 넓은 윤호영이 요소요소마다 활약해 큰 도움이 됐다. 빈 자리를 파고 들어가 양쪽으로 패스를 뿌려줘 쉬운 찬스가 많이 나왔다. 그런 점에서 두경민이 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2군 성격의 리그인 D리그 경기에 19분동안 출전해 실전 감각을 조율한 윤호영은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선수들이 잘해줬고 또 이겨줘서 너무 고맙다. 복귀했는데 졌으면…"이라고 말하며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윤호영은 "복귀전을 준비하면서 설렜다. 다시 코트에 들어간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제 부상 부위는 걱정이 없다. 경기 체력을 늘리면 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이번 시즌은 정말 안 다치는 게 목표다. 출전시간은, 감독님이 원하실 때 언제든지 준비돼 있다. 팀에서 날 필요로 하는 순간을 감독님께서 잘 아시는 것 같다. 믿고 들어가서 내가 이 정도 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25점을 올린 두경민과 4쿼터에만 10점을 넣는 등 23점을 기록한 디온테 버튼 그리고 2쿼터 흐름을 바꾼 윤호영이 승리의 주역으로 주목받은 가운데 이상범 감독은 베테랑 김주성의 활약을 빼놓지 않았다.
김주성은 4쿼터 막판 추격 과정에서 결정적인 블록슛을 했고 연장전에서는 DB의 기세를 끌어올리는 3점슛을 터트렸다. 공수에서 베테랑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상범 감독은 "김주성이 막판 마무리를 기막히게 해줬다. 두경민이 잘했고 그 뒤에 김주성과 윤호영이라는 두 대들보가 있었다. 보면서도 '역시 김주성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름에 걸맞는 깔끔한 마무리였다"고 말했다.
김주성은 윤호영의 복귀전을 앞두고 선수들을 불러모아 반드시 이기자고 다짐했다. 11월9일은 김주성의 생일. 그는 후배가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는 앞으로 부상 선수가 줄줄이 돌아오는만큼 복귀전에서만큼은 꼭 이겨야 빠른 적응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주성은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 이상범 감독이 오리온전 승리를 "귀하고 값진 1승"이라고 말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