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획② 연해주의 독립운동 역사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다수가 연해주에서 활동했다. 이들 역시 강제이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러시아 우스리스크 고려인박물관에 전시된 태극기이다.
[앵커]

고려인 강제이주 80년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아픔 가운데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도 담겨있습니다. 고려인들의 아픔을 되돌아보는 일은 잊혀진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최경배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연해주에 우리민족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기부텁니다.

처음엔 착취와 기근을 피한 이주였지만,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이주가 많았습니다.


특히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한 이곳은 일제시대 한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1920년에는 일본군이 조선인을 대량학살하는 사건이 신한촌에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조영철 선교사 / 미국감리교회 유레시아연회 디렉터
"일제시대에 한국 독립을 위해서 이분들이(고려인들이)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당하고, 신한촌에서는 3백명이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은 늘 한국의 독립을 위해 살았습니다."

1909년 2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명의 열사들이 조국 독립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잘랐던 장소도 연해주 지역으로, 연해주 크라스키노에는 단지동맹 기념비와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의 죄 15조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있습니다.

또, 우스리스크에는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와, 독립군을 훈련시켜 함경북도에서 일본군과 싸운 독립운동가 최재영 선생의 생가가 보존돼 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러시아 선교사로 파송된 목회자도 있었습니다.

광희문교회와 수표표교회 담임을 지낸 김영학 목사는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22년 러시아 선교사로 자원해 독립군지원과 선교 사역을 펼치다 순교했습니다.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 또한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됐습니다.

그러나 조국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이들을 품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최양섭 목사 / 김영학 순교자 학회장, 대죽감리교회 담임
"친일파 사람들이 정권의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정권에서 독립운동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일도 하지 않았지만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죠. 그래서 고려인들이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다시금 조명되고 있습니다. CBS뉴스 최경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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