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진선규 "제가 씬 스틸러라고? 잘 모르겠다"

[노컷 인터뷰] 영화 '범죄도시' 위성락 역 배우 진선규 ②

영화 '범죄도시'에서 장첸이 이끄는 흑룡파의 2인자 위성락 역을 맡은 배우 진선규 (사진=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달 3일 개봉한 '범죄도시'(감독 강윤성)는 돈이라면 뭐든 하는 잔인한 조직 흑룡파 무리와 이를 소탕하기 위한 경찰들이 한 판 붙는다는 범죄오락물이다. 개봉 6주차인데도 일일 박스오피스 3위(7일 기준)를 차지할 만큼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범죄도시'는 다소 촌스러운 분위기의 포스터 때문에 'B급 영화' 정도로 평가받았으나,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 얼개와 배우들의 호연, 액션 등이 조화를 이뤄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기 시작해 600만이라는 고지를 최근 넘긴 바 있다.

'범죄도시' 측은 제 옷을 입은 듯 연기해 낼 배우들을 찾기 위해 애썼다. 오디션 참가자만 120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웬만해서는 제동이 걸리지 않는 잔인하고 무도한 흑룡파의 2인자 위성락 역에 캐스팅된 진선규도, 오디션을 통과한 행운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범죄도시'로 오는 25일 열리는 제38회 청룡영화상에 남우조연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진선규는 공연계에서는 이미 그 연기력을 인정받은 베테랑이다. 드라마와 영화 작업도 꾸준히 했다. '무신'에서 주인공 김준(김주혁 분)을 곁에서 보필하는 갑이 역으로 나왔고, '오만과 편견', '육룡이 나르샤', '여자를 울려' '닥터스'에 출연했다. 올해는 영화 출연이 잦았다. '불한당'에서 부패한 보안계장 역으로, '남한산성'에서는 충직한 장수 이두갑 역을 맡아 김상헌 역의 김윤석과 호흡을 맞췄다.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배우 진선규를 만났다. '범죄도시'로 연기력 호평은 물론 인지도 상승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는 아직도 큰 변화는 체감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고3 때 작은 극단의 작품을 보고 연기를 시작했다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노컷 인터뷰 ① '범죄도시' 진선규 "캐릭터 위해 머리 민 게 신의 한 수였다")

일문일답 이어서.

▶ 흑룡파는 배역에 더 몰입하기 위해 밥도 잘 안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인가.

네. (웃음) 왠지 모르게 (흑룡파는) 악으로 깡으로 여기까지 왔을 것 같았다. 끼니도 잘 안 먹다 한 번 폭식하고. 제 나름대로는 살을 많이 뺐다. 70㎏에서 65㎏까지. 진짜 액션씬 찍을 때는 쓰러질 뻔했다. 밥을 거의 안 먹어서. 양태(김성규 분)도 계상이도 맨날 모여서 물만 먹고 연습했다. (웃음) 그런 퀭하거나 독기 어린 느낌이 카메라에 담겨서 (덜 먹은) 효과를 봤다.

왼쪽부터 배우 김성규, 윤계상, 진선규. '범죄도시' 4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윤계상이 올린 사진이다. (사진=윤계상 인스타그램)
▶ '범죄도시'에서는 배역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많은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함께 연기한 배우들 이야기가 듣고 싶다.


일단 동석이 형(마동석)은 제가 만난 분 중에 그만큼 유연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다들 잘하시지만. (경찰서에서 대면하는 씬에서) 기싸움을 하는데 열렬하게 자극되도록 해 주니까 제 캐릭터가 살고, 제가 사니까 형사쪽도 살았다.

흑룡파에서 계상이는 너무나 좋고 뛰어난 감각을 펼쳤다. 성규는 사실 오디션에서 확정돼서 처음 만났을 때 완전 양태 같았다. (웃음) 가만히 있어도 포스가 있었다. 근데 일상에서는 너무 착하고. (웃음) 뭔가 서로 처음 만났는데도 '우리 일원이 됐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극중에서) 장첸이 만들고자 했던 팀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어, 쟤 괜찮은데? 하는 느낌이 드는.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배우지만 이 분위기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잘 얘기했고 잘 소화해냈다. 저는 위성락이 돌아와서 밥 먹다가 다투는 장면이 진짜 좋았다. 5개월 동안을 척 하면 아는 식구 같은 사이가 됐다. 성규는 진짜 어마어마하게 노련하고 섬세하고 정확했다.

(배우들이) 사실 다 좋았다. (웃음) 지환(박지환)이랑 성태(허성태)는 무서운데 너무 귀여웠다. (웃음) 지환이는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성태도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와, 중저음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막상 말해 보면 너무 귀여웠지만. 휘발유(윤병희 분)-경유(이도군 분)도 감독님이 정말 캐스팅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좀 알려진 배우였다면 그런 느낌이 안 났을 거다. 공안으로 저를 속이는 장면이 있는데 관객들이 그걸 보고 나서 '아, 같은 사람이었지! 하고 분위기가 환기되더라. 너무나도 잘했고 귀엽다. 도군이는 저희 오디션 볼 때 리딩해줬던 상대였다. 연변 말을 너무 잘했다. 감독님도 그걸 보시고 캐스팅을 하신 거고. 다들 (배역에) 잘 맞게 있었다.

▶ '범죄도시'가 잘 된 후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

예전엔 아무도 못 알아봤는데 요즘은 몇몇 분들이 알아보긴 한다. (웃음) 근데 머리가 긴 상태라 눈썰미가 많이 좋은 분 아니고서는 잘 못 알아보시더라. 지금까지 인터뷰를 안했었는데도 기사화가 많이 되는 걸 보고 놀랐다. 내가 씬 스틸러라고? (웃음) 사실 잘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봐도 모두가 다 좋았기 때문에, 제가 특출 났단 생각은 안 했다. 기사들이 나오는 걸 보고 '아, 영화가 진짜로 잘되고 있구나', '내가 그 안에서 그렇게 보였구나' 하고 느끼게 됐다. (웃음) 가족들도 '오빠, 포털 메인에 걸렸어!' 이랬고 (웃음) 계상이도 '형, 이제 잘 된 거야. 메인에 떴어!' 이랬다. (웃음) 그러다 보니 자꾸 (포털을) 보게 되더라.

다른 영화들이 나오니 이제 비켜주게 될 거고, 저는 촬영도 있어서 인터뷰나 무대인사를 못해서 '아, 이렇게 또 반짝하고 지나가는 건가' 두려움도 들었다. (웃음) 그랬더니 다들 아니라고 했다. 지금 어느 정도 올라와 있으니 지금부터 조금씩 인터뷰도 하면 그렇게 쉽게 지나가진 않을 거라고 해 줬다.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배우가 된 거라고. (이번 캐릭터가) 너무 강하니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선택을 잘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저한테는 너무 기적 같이 일어난 일이어서 좀 더 겸손하려고 한다.

진선규는 '범죄도시'와 같은 날 개봉한 '남한산성'에서 초관 이두갑 역을 맡았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올해는 '범죄도시' 외에도 '불한당', '특별시민', '남한산성' 등 영화 출연이 많아졌다.

큰 역할을 한 건 아니라서… '사냥'에서 처음으로 첫 상업영화에 이름 있는 배역을 맡았다. (웃음) 회차는 적었지만 그때 영화에 대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 이후 영화를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 스태프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드라마는 제가 이미지를 갖고 나가지 않으면 스쳐지나거나, 순발력 있게 할 부분이 많았고 전 좀 약했다. 연극을 계속해서 그런지. 근데 영화는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하는 점이 비슷했다.

'사냥' 하고 난 뒤부터 동료들이 '선규 형 연기 잘하는구나' 이러면서 좋아하고 인정해주면서 '특별시민' 오디션을 소개해줬고, 거기서 만났던 친구들이 또 소개해주고 그랬다. 단 1회차라도 무조건 하겠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소개 받아서 오디션을 보게 된 거다. 2~3회차였던 분량이 5회차로 늘기도 하고 괜찮다는 평도 많이 듣게 됐다.

▶ 연극·뮤지컬 출연작이 20여 편에 이를 정도로 그동안 무대 연기를 주로 해 왔다. 앞으로도 무대에 계속 오를 생각인가.

그럼요. 7월에도 했었다. 단, 저희 극단('공연배달서비스 간다') 공연 외에는 일단 영화에 집중하자는 생각이다. 연극을 처음 시작하고 극단을 만들어서 10년 동안 너무 재밌게 연기하면서 놀다 보니 어느새 다른 사람들이 저를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얘기해 주고 있었다. 그만큼 저도 대학로에서 발전해 오고 있었던 거다. 영화계에서는 저를 아무도 몰랐다. 이미지 단역 같은 작은 역을 했고. 둘을 병행하면서 '그래도 연극 쪽에서는 나를 인정해 준다'고 생각하는 게 이도저도 아닐 수 있겠다 싶어서 작년부터 영화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곳에서 꾸준히 해야 저 배우가 영화도 하는 사람이구나 인지된다는 걸 알았다. 신기하게 그때부터 영화 작업을 조금씩 하게 됐다.

▶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창단 멤버로 알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 또, 극단 자랑도 부탁한다.

2004년에 학교 졸업하면서 같이 놀던 친구들과 만들었다. 이제 10년이 넘었다. (극단 자랑은) 음… 어렵다! 많은 배우들이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대학로에서 소문난 극단이다. 돈을 벌겠다는 느낌보다는 정말로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재밌어서 하는 거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 저희는 극단을 유치원이라고 얘기한다. 어느 누구나 와서 즐겁게 뛰어놀다 보면 성장해 있고 좋은 작품을 하고 있는 느낌?

진선규의 연극·뮤지컬 출연작 (사진=플레이DB 캡처)
▶ 연기하면서 힘든 순간은 없었나.

힘든 순간이 다 있었겠죠. 하지만 제가 좋고 즐거웠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거든요. (웃음) 현실적(경제적)으로 힘든 건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충분히 버티면서 즐겁게 살았다. 어떤 배역을 맡았을 때의 고민은 당연히 힘들지만, 결과물이 나온 걸 보면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 결국 만들어냈다는 희열도 있고. 그래서 막 부대끼거나 힘든 건 없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웃음)

연극을 주로 하다 영화를 하니 제 친구들도 '이제 잘됐네!' 그런다. (웃음) 누구나 그럴 거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연극하는 분들은 다 갖고 계시니까. 그래도 저는 너무 즐겁게 걸어왔고, 살면서 받았던 걸 베풀면서 또 즐겁게 가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앞으로 20년, 30년 더 연기를 할 거고 (힘듦도) 과정의 일부니까 괜찮다. 좋아서 한다는 마음이 크다.

▶ 배우 진선규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지.

저는 고등학교 때 사실 체육교사가 되고 싶었다. 저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웃음) 근데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운동을 하게 두지 않으셨다. 그래서 체육교사가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교회에 갔다 친구를 따라 작은 극단을 구경하게 됐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들이 즐겁게 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3 때였는데 자율학습 안 하고 극단에만 가게 됐다. 이런 걸 계속 하려면 어딜 가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연극영화과라고 하더라. 즐겁게 놀고 배웠는데 너무 운 좋게 관련과를 가게 됐다.

그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사람들끼리 소소한 것에 행복해하며 좋아하고 웃고 떠드는 느낌을 가졌고, 그런 사람들끼리 모였기 때문에 극단도 '간다 유치원'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범죄도시'에서 처음으로 따뜻함과 즐거움을 같이 느끼니까 좋았다. 연기는 어차피 제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실수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지만, 누군가 북돋아주고 별 것 아닌 걸로 칭찬하고 인정해주는 순간 저는 너무나도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저는 자유로운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더 솟아나는 편이다. 그런 현장을 계속 만들고 싶기도 하고, 그런 곳에서 작업하고 싶다.

▶ '암수살인'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 또 다른 차기작이 있나.

지금 아직 결정된 건 없다. (미리 찍은 것 중에서는) 영화 '꾼'과 '돈'에 짧게 나온다. '암수살인'은 진짜 재밌을 거다. 약간 색다른 추격 스릴러다. 이미 잡혀있는 범인의 행적을 쫓아가서 재밌다. 시나리오부터 재밌었다. 지훈(주지훈) 씨나 윤석선배(김윤석)가 가진 캐릭터의 싸움이 분명 재밌을 거다. 제 캐릭터는 윤석선배와 더불어 자기 주관을 갖고 진중하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 역이다. 예전에는 잠깐 딴 짓하면 놓치는 그런 역할을 했다면 ('암수살인'은) '범죄도시'만큼 저를 따로 안 찾아봐도 될 정도로 나온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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