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획① 아물지 않은 상처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 17만명은 1937년 10월 소련 공산당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사진은 고려인들이 모여살던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의 옛 주택. 이곳은 현재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앵커]

올해는 연해주에 거주하던 우리민족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지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고려인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한국 교회의 역할을 생각해보는 기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고려인의 역사를 돌아봤습니다. 최경배 기잡니다.

[기자]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땅 연해주. 이곳에는 우리민족의 아픔이 스며있습니다.

연해주에 우리민족이 살게 된 것은 1864년부텁니다.

가난을 피해 농경지를 찾아 나선 조선인들이 황무지였던 땅을 개척해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 이뤄지자 우국지사들이 연해주로 건너갔습니다.


[인터뷰]
최양섭 목사 / 김영학 순교자 학회장, 대죽감리교회 담임
“자유롭게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또, 탄압을 피해서 연해주 지역으로 많은 조선 사람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이곳으로 옵니다.”

그러나 당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이던 스탈린은 연해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을 불안 요소로 봤습니다.

접경지역에서 일본군과 내통할 것이란 의심으로 연해주 지역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것입니다.

1937년 10월, 소련 공산당은 우리민족 17만명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맨몸으로 강제로 태워 황량한 땅에 떨궜습니다.

열차를 타고 한달동안 추위와 굶주림 속에 이동하는 과정에서 무려 1만6천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고려인들의 아픔은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야 우리사회에 알려졌습니다.

고려인이 강제이주 당한지 80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고려인을 상대로 정치적 탄압은 물론 거주 이전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던 소련은 체제가 붕괴되기 전인 1989년에야 강제이주를 불법적인 범죄행위로 인정했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1993년 ‘러시아 고련인의 권리회복법’이 채택되면서 고려인들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아픈 역사는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우노낫 / 모스크바 감리교회
"강제이주가 아니었다면 가족이 한 곳에 살 수 있었을텐데, 강제이주 때문에 가족들이 러시아의 양쪽 끝에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허 발레리 / 71세
"이제 조금 있으면 이렇게 기억하지 못하고 다 지나갔다고 잊어버리면 젊은 사람들은 한국어도 모르고...(잊혀지겠죠)"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 외세에 의해 진행된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해보입니다. CBS뉴스 최경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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