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수사하는데…" 변창훈 사망과 검사의 숙명

(사진=자료사진)
검사는 아니지만 법조 출입을 하는 기자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가끔 생각해 본다. 검사들은 인신 구속과 같은 막강한 신체 형벌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 검사처럼 강력한 권한을 가진 집단은 거의 없다.

보통 사람들은 검사 앞에 서면 오그라들 수 밖에 없다. 평범한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검사가 가진 수사권과 기소권은 세속의 그 어떤 직업이 가진 권한보다 강력하고 위협적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안다. 그래서 검사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검찰이 2008년에 만든 '대한민국 검사의 선서'라는 것이 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잇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선서의 핵심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라는 것이다. 사적으로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정의와 인권을 바로세우고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를 형용하기 위한 설명에 불과한 것들이다.


검찰 로고(사진 참조)도 그러한 정신을 온존히 담고 있다. 대나무의 올곧음에서 모티브를 차용했고 직선을 병렬 배치해 검찰의 중립성을 담았다. 또 상단의 곡선으로는 천정거울의 받침 부분을 상징케 함으로써 '균형'을 강조했고 가운데 직선은 '칼'을 형상화한 것이다.

검찰은 흔히 '칼'로 상징된다. 그 칼은 때로는 무디고 때로는 엉뚱하게 사용돼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검사가 쥔 그 칼날은 원래 매섭고 예리한 것이다. 검사는 그 칼로 상대를 제압하지만 때로는 너무 예리해 검사 스스로를 베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날의 칼'이라고도 한다.

국정원 적폐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변창훈 검사의 사망으로 검사들의 충격이 크다. 동료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애도를 표하는 건 당연한 도리이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이야말로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로인한 원망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검사의 길로 나서는 순간부터 법복을 벗는 순간까지 시종 '공익의 대표자'이다. 공익의 대표자는 절제와 품위를 잃어선 안된다. 충격적 사건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무감정'의 검사가 되란 말은 아니다. 공감 능력이 없다면 절대로 좋은 '공익의 대표자'가 될 수 없다. 다만 검사는 냉정해야 하며 감정을 과잉 노출하는 건 삼가해야 한다. 그것이 검사의 숙명이다.

엊그제 조문 간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너희들이 죽였다"고 한 현직 지청장이 고함을 질렀다. 아무리 동료 검사의 죽음이 원통해도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많은 국민들을 당황케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검사 개인으로서 선배 동료의 죽음 앞에서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백 번을 양보해도 사적인 자리로 한정돼야 한다. 언론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공개된 장소에서 조직의 수장인 검찰총장에게 그런 말을 던지는 건 공무원의 중대한 품위 손상 행위이다. 또 '인신공격성' 폭언이다. 그 폭언이 산 사람에게 가져올 파장을 짐작한다면 함부로 던질 수 없다.

검찰 내 여러 여론이 있겠지만 지금 유가족 다음으로 변 검사의 죽음을 슬퍼하고 황망해 하는 사람들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검사들이라고 봐야 한다. '양날의 칼'로 동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그들의 심정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사 검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몇달째 국정원 적폐수사와 '전쟁'을 하고 있다. 주변에선 이틀밤, 사흘밤을 새우면서 '돌연사'할 지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목숨 걸고 수사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쯤되면 그들도 잘 알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정권에 빌붙어 성공한 검사가 되겠다는 욕심은 진작에 집어던졌다고 봐야한다. 정권에 휩쓸리는 것도 아니고 나오면 나오는대로 수사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리고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진다는 각오를 했을 것이다.

검사의 사명은 죽으나사나 '공익의 대표자'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슬퍼할 수 있지만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면 그 검사는 법복을 벗어야 한다. 일생 대면한 적이 없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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