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전북 정읍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외가의 소개로 조선 시대의 마지막 악공인 김붕기 선생을 알게 되면서, 1954년 2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악기 제작 일을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속 악공으로서 악기를 제작·수리하였고, 이러한 그의 전승 활동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91년 5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2013년 12월 명예보유자로 인정되기 전까지 그는 ‘악기장’의 전통 계승과 보급에 평생을 헌신하였다. 현재 아들 이동윤(현 악기장 전수교육조교)이 고 이영수 명예보유자를 잇고 있다.
‘악기장’은 전통악기를 만드는 공예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사라져가던 전통악기 제작기술 전승을 위해 문화재청(당시 문화재관리국)은 1971년 2월 24일 ‘악기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하였고, 1995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3호 ‘북메우기’와 통합하였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9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도 시흥시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