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여진씨가 2011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섭외됐다가 국가정보원의 개입으로 출연이 무산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8일 검찰과 MBC 등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김재철 전 MBC 사장이 2011년 6월 국정원의 요구를 받아들여 김여진씨의 출연 취소를 지시한 정황을 파악하고 김 전 사장의 구속영장에 이를 범죄사실 중 하나로 적시했다.
당시 김씨의 석연치 않은 출연 무산 소식이 알려지면서 MBC 안팎에서 '외압 의혹'이 일었는데 실제로 하차 배후에 '원세훈 국정원'이 있었다는 단서가 검찰에 확보된 것이다.
MBC는 2011년 6월 27일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김씨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격주 월요일 고정 코너인 정치·사회·문화 분야 '보수 대 진보토론' 코너의 새로운 패널로 참여한다고 예고했다.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패널은 전원책 변호사였다.
그러나 3주 뒤인 7월 15일 제작진은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MBC가 새로 개정한 방송심의규정에 의해 김씨의 출연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공지하며 김씨의 출연 무산 소식을 알렸다. 김씨는 같은 달 18일부터 출연하기로 예고된 상태였다.
실제로 MBC는 김씨 출연 무산 조치에 앞서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에 대해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한 인물이 시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로 출연할 수 없다'는 취지로 심의규정을 개정했다.
김씨는 당시 '반값 등록금' 이슈와 한진중공업 파업 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사회참여형 연예인이라는 평을 얻었는데, 이런 이들의 고정 출연을 막을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만든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김씨의 출연 무산과 심의규정 개정 소식이 알려지자 MBC 노조가 반발 성명을 냈고 MBC 안팎으로 거센 비판이 일었다. 소설가 공지영과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 각계 인사 13명은 이런 MBC 조치에 항의하며 MBC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MBC는 '확정되지 않은 김씨의 출연을 발표했다'는 사유로 라디오본부장, 홍보국장 등 당시 담당 보직간부 4명에게 근신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의 수사의뢰 자료를 토대로 국정원 관계자 및 MBC 전 경영진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김씨의 출연 무산에 국정원의 개입이 있었던 정황을 포착했다.
김씨의 고정패널 출연예고 보도를 접한 국정원이 MBC 경영진에 "김여진의 시선집중 출연은 안 된다"라는 의견을 전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런 의견 등을 백종문 당시 편성제작본부장(현 MBC 부사장) 등 간부를 만나 전했고, 이는 김재철 당시 사장으로까지 전달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한다.
검찰은 김씨의 방송출연 취소 조치 등이 방송활동에 대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관련 내용을 김 전 사장의 구속영장 범죄사실에 추가했다.
앞서 검찰은 7일 국정원법 위반(직권남용), 업무방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김 전 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9일 밤늦게나 10일 새벽 김 전 사장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한편 김 전 사장은 6일 검찰에 출석해 취재진과 만나 "제 목숨을 걸고, 단연코 MBC는 장악할 수도, 장악될 수도 없는 회사"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 김씨 출연을 무산시킨 사례가 당시 국정원의 MBC '장악력' 및 김 전 사장과 국정원의 긴밀한 협조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