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혜, 이하늬, 류준열, 박해준, 조한철, 이수경 등 영화 주요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이 '최민식과 연기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입을 모을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최민식에 대한 기대와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최민식은 후배들의 들뜬 소감에도 멋쩍어했다. 오히려 '매력적인 아우들'과 작업하게 돼 기뻤고, 영화라는 작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반복해 밝혔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도 최민식은 오랜 시간을 들여 정지우 감독과 배우들 이야기를 했다. '칭찬요정'이란 별명을 붙여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노컷 인터뷰 ① 장르가 '최민식'이라는 '침묵', 본인은 어떻게 연기했을까)
◇ "정지우 감독, 더 영글었다"
최민식은 영화 '침묵'의 장르가 최민식이라고 한 정지우 감독의 말을 기자가 옮기자마자 "아이~ 오버에요. 괜히 나한테 짐 지워주는 것 같아"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내 "고맙다. 믿음을 저한테 그런 식으로 표현하니… 촬영할 때는 '좀 잘 하세요. 장난만 치지 말고' 이랬는데"라고 덧붙였다.
"더 영글었어요. 더 영글어졌어요. 그러니까 '해피엔드' 때의 정지우의 모습은… 그 영화사가 청년필름이었다. 진짜 청년이었다. 그냥 아주 똑똑한 친구가 아주 날선 논리로 빈틈없이 영화 찍는 모습이었다. 근데 지금도 그렇다. 정말 더 노련해졌다. 능수능란해졌다. 그게 나쁜 쪽으로 능글맞다는 게 아니다. 이제 배우들, 스태프들을 아우르는 그 테크닉이 있다. 열어놓는 거다, 귀를. 귀를 열고 다 듣는 거다. 옛날에 안 들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열린 태도가)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다.
치열함이랄까.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능구렁이가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듣고 배려하고 결국 스태프, 배우들에게 확신을 갖게끔 돌려준다. 이게(영화가) 돈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보니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별 일이 다 생기는데 자기 고집은 그대로 살아있다. 반드시 해야 될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작가로서의 고집, 이런 것들이 전혀 녹슬지 않았다. 든든해요, 진짜."
최민식은 "정 감독이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그 작품들도) 이렇다 할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래 회자됐다. 그런 자기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동료를 오랜만에 만나니 참 반갑고 고맙더라. 만약 이 친구가 이상하게 변했다면 씁쓸했을 텐데"라고 밝혔다.
이어, "(18년 만에 만나는 게) 참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며 "18년 뒤는 어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다음엔) 우리가 좀 젊었을 때, 정신이 있을 때 다음에 근사한 걸로 한 번 붙자는 얘기를 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 최민식이 말하는 배우들 "프로페셔널하다, 이쁘고 참 고마워"
최민식은 지난달 2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 당시에도 입이 마르도록 배우들 칭찬을 했다. 상대역으로 연인 연기를 한 이하늬에 대해서는 "연기에 반했다"고 했다. 류준열을 두고 저 나이 때 나는 그만큼 연기하지 못했다고 한 인터뷰도 유명하다.
후배들 칭찬을 많이 한다는 말에 최민식은 "제가 즐겨서 비유하는 게 있다. 만약 박신혜, 이하늬, 박해준 등 각자 배우들의 집이 있고 제가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얘네들이 빗장을 딱 걸어잠그면 전 끝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되게 프로페셔널했다. 서로 마음을 열고 격려했다. 참 이런 게 당연한 건데 현실에서의 현장이 꼭 이렇지만은 않다. 어디선가 불협화음이 터지게 되더라"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모인 것이니까 (합을 맞추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순 있다. 그래도 각자 직업의식으로 똘똘 뭉쳐서 '우리가 여기 왜 모였는지' 그 인식을 뚜렷이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여긴 영화동호회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취미로 연기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직업 배우로서 있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돼야 나도 살고 너도 산다는 프로페셔널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가.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쁘고 참 고맙다. 이제는 (후배들에) 묻어가야지. '야, 나 좀 끼워주라' 하고. (웃음)"
◇ 19살 차이 이하늬와의 연인 연기는 어땠을까
최민식은 "재벌 총수와 미모의 가수가 진실된 사랑을 공유한다는 설정이다. (임태산은) 나이도 많고 전처의 소생이 있다. 아무리 그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여자로서 얼마나 맘이 상충되는 게 있었겠나. (이하늬는) 그걸 표현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유나의 성관계 동영상이 유포된 날, 미라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유나에게 문자를 보내 만나자고 한다. 그때 태산과 함께 있던 유나는 "내가 미라랑 잘 지내면 오빠는 그게 좋지?"라고 하고, 태산이 다녀오라고 하자 "왜 이렇게 오늘 서운하냐"고 말한다.
"유나 마음은 노력하겠다는 것이지 않나.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전처 딸이) 싫을 수 있는데 남자를 위한 큰 배려심으로 있는 거다. 남자가 '오늘 기념일이니까 같이 있자'고 하길 바라는데 (미라에게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 그러지 않나. (웃음) 그때 '왜 이렇게 오늘 서운하냐'고 하는 거다.
근데 그걸 쫙 하더라. 처음엔 이걸 할 수 있을까 갸우뚱했는데 한 방에 하더라. 아주 미안했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그렇게 (상대방이) 탁탁 해 주면 제가 정신 안 차릴 수가 없지 않나. 저만 잘하면 되지 않나. 우리가 (연기로) 표현할 때 경험했던 것은 적고 80%는 상상력에 의존한다. 가공의 시추에이션과 캐릭터를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그릇이 크다는 걸 느꼈다. 참 고맙다."
최민식은 '침묵'이 유나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기에 두 사람이 애틋한 감정이 '기초공사'되어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때 이하늬가 호연을 펼쳐서 시작을 흐름을 잘 이어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대뜸 "이하늬 나한테 술 사야 되는데"라고 농을 던져 좌중을 폭소케 했다.
멜로 연기는 얼마 만에 한 것인지 묻자 최민식은 "모르겠다"며 "흑흑"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굳이 멜로라고 하면 '파이란'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해피엔드'에서 저는 막판에 죽이기만 했으니까. 내 팔자가 이 모양 이 꼴이다"라고 해 다시 한 번 웃음을 자아냈다.
◇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민식은 "지금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 나이에 내 몸뚱아리로, 내 가슴으로 내 가치관과 나를 형성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아버지든, 누군가의 아들이든, 학창시절 이야기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지금 현재 이야기'에 출연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라고. 그러면서 "멜로는 저한테 오겠나, 그게?"라고 반문했다. 금세 주변이 웃음바다가 된 것은 물론이다.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내내 웃음이 가득했던 즐거운 인터뷰는 마지막까지 타인에 대한 '고마움'으로 끝을 맺었다.
"반성을 많이 한다. 제 스스로가 옹골찬 캐릭터가 못 돼서 온갖 세상 잡념 다 하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정신 칠렐레 팔렐레하는데 이런 친구들을 만나니 정신을 차리게 되더라. ('침묵') 대사에도 있듯이, '절대 세상 혼자 못 산다.' 공동작업은 더더욱 사람한테서 자극을 받고 사람을 통해 달라져야 한다. 부처님처럼 오만 가지 잡생각을 해봤자 느는 건 술밖에 없다.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침묵'이) 참 감사한 작업이었다. 그것이 참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석에서 만나는 거하고 작업현장에서 만나는 거하곤 느낌이 다르다. 저는 그렇다. (영화는) 상대한테 되게 오래 남는 인상을 심어주고, 우리가 공유하는 부분을 치열하게 표현해내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관계 반 이상은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속된 말로 띵가띵가하러 만난 게 아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이고 연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로서 만나서 공유하는 부분들이 저는 오래 가야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