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방송사의 '공무원'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꾸준히 작품에 출연했고 적지 않은 수의 히트작을 남긴 박신혜는 '침묵' 이후로도 영화 작업에 더 발을 들일 생각이다. "도전해 볼 수 있는 과제가 아직 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박신혜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아직 정점은 오지 않았다"며 몸을 낮추고, 주체적인 인물에 끌린다는 주관을 확실히 밝히면서도, 같이 호흡해 보고 싶은 배우 이름을 대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던 박신혜를 만났다.
(노컷 인터뷰 ① '침묵' 박신혜, "연기하기 어려울 것"이란 말에도 도전한 이유)
◇ "아직 정점 오지 않았다… 과제가 무궁무진하다"
박신혜는 '천국의 계단'으로 데뷔한 이래 TV에 더 자주 얼굴을 비쳐왔다. '천국의 나무', '궁S', '미남이시네요', '넌 내게 반했어', '이웃집 꽃미남', '상속자들', '피노키오', '닥터스'까지 꾸준히 작품을 해 왔고, 히트작도 많이 보유한 편이다.
또한 박신혜는 새엄마에게 핍박받는 한정서 역으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2003년, SBS 연기대상 아역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총 22건의 상을 받았다. 인기상부터 최우수연기상까지 섭렵했다.
이제 대상만 남았단 말에 박신혜는 "(상은) 오래오래 천천히 받고 싶다. (상을 위해) 작품을 급하게 하는 것보다, 그 시기에 해야 하는 작품들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드라마에 비하면 편수가 적지만 박신혜는 영화 필모그래피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시라노;연애조작단', '7번방의 선물', '상의원', '형' 등 주연뿐 아니라 '뷰티 인사이드'에서 매일 모습이 달라지는 우진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드라마는 어느 정도 정점을 찍은 것 아니냐는 말에 박신혜는 "아직 정점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는 "끝이 없는 것 같다. 매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다 주워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중에 하나를 어떻게 선보일지 고민해야 한다"며 "도전해 볼 수 있는 과제가 아직 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영화에도) 조금씩 발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박신혜가 바라 본 여성캐릭터의 '변화'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만 10편이 훨씬 넘는 박신혜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배우의 길에서 '연기'는 늘 남아있는 숙제다. 어떤 게 고민거리인지 묻자 "차기작에 대한 걱정은 늘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어떤 작품이 들어올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배우와 호흡을 맞출지가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침묵' 이후 다음 작품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다른 배우들에 비해 들어오는 대본의 폭이 넓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신혜는 "다른 여배우분들도 워낙 많이 받으실 것"이라면서도 "제 눈길을 사로잡는, 욕심이 나는 작품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수많은 작품이 있어도 "이게 내 거다!" 싶은 작품이 꼭 있더라는 게 박신혜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의사, 변호사, 기자 등 전문직을 한 이유도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 왔기에 경험해 보지 못한, 궁금증이 생긴 것 위주로 보다 보니 그렇다고.
지금까지 숱한 대본을 받아봤을 박신혜. 15년 동안 작품 속 여성캐릭터가 변하는 흐름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박신혜는 "되게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주체적인 게 많아지기도 했고 마냥 친절한 주인공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냄새가 많이 나는 캐릭터들이 조금 더 생겨나는 것 같다"며 "마냥 친절한 여자주인공만이 아니라 조금 더 솔직한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때 박신혜는 최근 방송 중인 KBS2 '마녀의 법정'을 언급했다. '마녀의 법정'에는 여성 검사라는 핸디캡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과감한 수사와 철저한 법 적용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에이스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 15년 연기생활에서 박신혜가 배운 것
정지우 감독이 '침묵'의 최희정 변호사 역에 박신혜를 캐스팅한 이유로 '바른 이미지'를 꼽았을 만큼, 박신혜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대개 긍정적이다. 밝고 건강하고 활기차며 반듯하다.
박신혜는 "그렇게 만들어가고자 했던 건 아닌데 많이들 그렇게 봐 주신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저희 부모님은 식당 손님들이 제 성격 물어보면 '걔 성격 별로 안 좋아요. 되게 더러워요'라고 하신다"며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딱지가 얹도록 들은 게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야 된다'는 거였다. 어딜 가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그게 엄마의 바람이기도 하다. 요즘 박보검 배우가 '선한 영향력'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어, 나랑 같네?'라고 생각했다. (웃음)
제가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게 알려지게 되는 건 기자님들 손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않나. 저를 예쁘게 봐 주셔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다."
박신혜는 "만났는데 예민하고 까칠하더라, 하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분들은 잠깐이지만 저희는 직업적으로 늘 갖고 있는 부분이니까 기분 안 나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한다. 마주치는 분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는 거다. 제가 잔꾀가 되게 많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임기응변이 생겼다고 할까. 경력이 쌓이면서 그런 걸 얻었다. 매 순간 잘 대처할 순 없지만 보다 부드럽게 넘기는 방법을 일하면서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 하고 싶은 걸 하고 누릴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은 스물여덟
본인이 아역배우 출신이어서인지 어린 나이에 데뷔한 연예인들에 더 마음이 간다는 박신혜는 최근 '초등학생 걸그룹'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요즘 아이들의 진로 방향이 너무 연예계로 치우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과 아쉬움이 들었다고.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 대부분인 현장을 드나들었던 박신혜는, 그동안 '건강하게', 사람들이 정해 둔 선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로 살아왔다고 회상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신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고.
"조금은 단아하게, 조금은 얌전하게. 이걸 계속 갖고 가다 보면 안 되겠더라. 굳이 그거에 의식하고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 제가 제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것을 하자! 여행도 다니고 한강에 돗자리 깔아놓고 술도 마시고. 의외로 각자의 인생을 즐기고 계신 분들이 많다. 그게 맞는 거죠."
시간을 급 뛰어넘어, 10년 후 모습이나 되고 싶은 배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박신혜는 "어떤 배우로 살고 싶다고 정의하는 건 어렵다. 그 정의를 내리는 순간, 그대로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며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라고 밝혔다.
다소 거칠기도 하고 순식간에 많은 것들이 바뀌는 연예계에 15년이나 발 붙인 '내공'이 있어서인지, 박신혜는 대부분의 질문을 여유롭게 답했다.
또래 여배우들과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기사에 대한 생각을 묻자 "모든 배우들이 다 예쁘고 부럽다. 각자 장점이 다 다르지 않나. 서로 하는 작품도 다르고. 그런 걸 찾아보면 제게 없는 모습도 많이 발견하게 돼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박신혜의 '의연한' 태도가 무너진 것은 같이 하고 싶은 배우를 물었을 때였다. 소위 잘 나가는 남자배우들과는 거의 다 만나보지 않았느냐며 누구와 연기해 보고 싶은지 운을 띄웠는데, 돌아온 답은 '여자 선배'들의 이름이었다.
"김혜수 선배님! 너무 멋있을 것 같다. 전도연 선배님도. 영화 '협녀' 때 (같이 연기한) 김고은 배우가 너무 부러웠다. 두 분 다 너무 좋아하는 배우다. 제가 선배님들하고 아무래도 많이 마주칠 기회가 없다. 여자들 간의 이야기가 많지 않기도 하고. 수경이(이수경)한테 '차이나타운' 찍을 때 (김혜수가) 어땠냐고 물으니 '되게 좋았다'고 그랬다. 시상식, 시사회 오가면서 인사드리기만 했다. (같이 연기하면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