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KBS라디오 프로그램 '명사들의 책읽기'에서 출연 제의가 왔었죠. 앞서 여러 방송에서 책 소개를 해 왔던 터라 부담 없이 응했는데, 프로그램 이름에 '명사'(名士·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가 들어간 것에서 저 스스로를 명사라고 생각하기가 뻘쭘하더군요. 그래서 출연 제의를 해 온 제작진에게 가벼운 농담조로 '저는 명사가 아닌데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동사(動士·움직이는 사람)에 가깝다'고 했죠.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제작진이 '재밌다'며 '방송에서 그 말을 해달라'더군요. (웃음)"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준영의 눈은 사회적 약자·소수자에게 쏠려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역사서는 가진 자들, 권력자들의 기록"이라고 운을 뗐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보면 이런 취지의 이야기가 나와요. 90%의 일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노동자·농민과 10%의 방자한 엘리트가 있어요. 노동자·농민은 평생을 일하느라 자신의 삶을 기록할 시간이 없지만, 방자한 엘리트들은 시간이 많으니 자신의 삶을 기록해 왔어요. 그것이 훗날 역사라는 이름으로 읽히고 있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역사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최준영은 "가진 자, 권력 있는 자와 같은 주류의 삶만이 역사가 아니라, 이제는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숙인,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장, 미혼모, 어르신 등 모든 분들의 삶도 소중해진 것"이라며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표현하고 같이 호흡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매개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만나야 한다"고 전했다.
"그런 강의에서는 강사비를 적게 주니까 요즘 TV에 나오는 유명 강사들은 안 가요. 저는 비용 안 따지고 가서 강의하고, 주최 측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면 제 강사비 반납해서 예산에 쓰라고도 합니다. 제가 1년에 200~300회 강의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몇 억을 버는 줄 압니다. (웃음) 제가 하는 강의 대부분이 지역자활지원센터, 노숙인쉼터 등이니 큰 돈이 되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오히려 겸손해진다는 점에서 얻는 것이 더욱 많습니다."
◇ "가진 자들의 기록이 '역사'란 이름으로 읽히는 시대는 갔다"
"300여 일간 쓴 글을 골라 100여 편으로 책을 엮으려고 보니 '나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낸 글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글 대부분이 책 읽고 그 속에 담긴 문장을 인용하면서 제 생각을 쓰는 식이었는데, '동사의 삶'이라는 표현은 제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해서 대표 글로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동사의 삶'까지 그간 7권의 책을 낸 최준영은 "이번처럼 반응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며 다소 고무된 분위기였다. 그는 "그동안 뿌린 씨가 이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말을 이어갔다.
"십수 년간 전국을 돌며 인문학 강의를 한 덕에 많은 분들을 알게 됐어요. (초반 책 반응이 좋은 것은) '강의를 재밌게 들었는데 책은 언제 나오냐'며 기다려 주신 분들이 활약하시는 덕이죠. (웃음) 수강생들과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1년 6개월 전에 냈던 책 제목 '책고집'을 따와서 독서모임도 꾸렸죠. 순천시 공무원들이 모인 '순천책고집',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모인 '삼성책고집',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제자들이 모인 '아주책고집' 등 10여 군데가 있는데, 그분들의 도움이 큽니다."
그가 매일매일 쓰는 글의 주제는 모두 다르다.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서 글의 공통분모를 찾았나'라는 물음에는 "책"이라고 답했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인상을 기록으로 남긴 것들이니까요. 책의 주제에 따라 시사적인 얘기도 있고, 개인적인 인생사와 관련된 것도 있고,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단상도 있습니다. 현실과 맥이 닿아 있는, 결국 우리가 사는 얘기예요."
◇ "저마다 의미있는 삶 찾아가는 여정이 인문학의 실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살아 온 인생의 족적들이 모이고 모여서 역사가 됩니다. 우리는 그 하루하루의 과정을 꾸준히 정리하고 기록함으로써 자기 인생에서 인문학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죠. 이번 책에 '어머니의 주름'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마에 굵은 주름을 두세 개 갖고 계셨죠. 우리가 책을 읽다보면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치기도 하잖아요. 나이 드신 어머니의 이마 주름은 인생이라는 책에 그은 밑줄이라는 생각을 했죠."
"결국 삶에는 저마다 의미가 있다"는 것이 최준영의 지론이다. 그는 "각자가 자기 삶에 밑줄을 치듯이 주름으로 나타나는 인생의 밑줄을 잊지 말자고, 늘 깨어 있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최준영은 스스로를 '글노동자'로 소개하기도 한다. 매일매일 노동하듯이 쓴 글을 SNS에 올리면서 누리꾼들과 소통하려 애쓰는 그에게 제법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SNS에 중독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 역시 초반에는 SNS를 주로 신변잡기용으로 활용했죠. 그런데 불현듯 'SNS에 투자하는 시간은 많은데 생산성은 거의 없는, 효율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SNS로 많은 친구를 사귀었으니 끊을 수는 없는 것이고, 기왕에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저 역시 의미를 찾는다는 취지로 독서 칼럼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는 "어떤 일이든 조금 하다 마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저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다. 성실함 하나로 십수 년간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버텨 온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SNS 글도 한 번 시작했으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는 겁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믿음과 감동을 주는 법이니까요. 제가 유명 대학 소속 교수가 아니어도 강의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바탕이기도 하죠. 그래서 한 번 강의한 데는 공식처럼 또 다시 저를 불러주게 돼 있습니다. (웃음)"
◇ "책 '동사의 삶',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였던 실천의 기록"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그분들에게 인문학 강의한답시고 어려운 문자, 외래어나 쓰면서 강의하면 스스로는 우쭐할지 모르겠지만, 소통은 물건너갑니다. 자기만족적인 강의에 머무는 거죠. 제 강의가 재밌다는 평가를 얻는 것은 그분들의 눈높이에서 어려운 용어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최준영은 "살아 있는 생명체는,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다보면 각각의 움직임 속에 의미가 뭍어나게 돼 있다"며 "책 '동사의 삶'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였던 실천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어렵지 않아요. 꾸준하게 묵묵하게 열심히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면 누구나 인문학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인문학은 어렵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학문이다' '가진 자들의 학문'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보탬을 줬으면 합니다."
그는 끝으로 "'학문에는 횡재가 없다'는 말이 있다. 꾸준히 해야만 조금씩 내 것이 된다는 뜻"이라며 "공부의 가장 기본은 읽고 쓰기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글은 꾸준히 쓰다보면 저절로 조금씩 나아집니다. 그 증거가 이 책이죠. 저 역시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는 있지만, 글을 썩 잘 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글을 쓰다보니 저도 모르게 글쓰기가 조금씩 편해지고 쉬워지고 재밌어지면서 자신감이 붙더군요. 제 이러한 경험을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느끼고 겪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