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그는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다. 굴비를 뇌물로 받는 포졸 등 작은 역할에서 시작된 그의 연기 인생은 20여 년 동안 이어졌다.
특히 올해는 영화 '공조', '석조저택 살인사건' 2편이 개봉했고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에 출연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아직 개봉하지 못한 영화 '독전'과 '흥부'는 故 김주혁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스스로 수차례 밝혔듯, 고인은 집에 있기를 즐기는 덜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연기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예능 출연을 잘 하지 않았던 그가, KBS2 '1박 2일'을 2년 간 고정출연하며 깨달은 바는 '내향적인 연기자'에게 예능은 분명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CBS노컷뉴스는 고인의 생전 출연 방송과 제작발표회 등에서 공개된 발언, 본지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故 김주혁의 '연기'와 '삶'을 돌아봤다. 보다 구체적인 '삶과 죽음' 이야기는 지난해 11월 하퍼스 바자 인터뷰를 참고했다.
◇ "조금은 나아지니까" 연기를 한다
고인은 지난 2011년 9월 28일 MBC '무릎팍도사'에서 "제가 주연으로 작품할 때는 그 작품 전체의 배경 색깔을 깔아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전반적인 색을 까는 역할은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 배역들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인은 연기할 때 무엇보다 '자연스러움'과 '상대방과의 호흡'을 중시했다. 같은 방송에서 그는 "저는 자연스럽지 않으면 연기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여배우들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의가 많이 오는 이유로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들었다.
고인은 로맨틱코미디에서 두각을 나타내 '한국의 휴 그랜트'라는 별명이 붙었던 시기를 지나, 최근 2~3년 전부터는 악역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왔다. 고인이 배역이나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재미'였다.
그는 올해 4월 28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연기할 맛이 나겠다 혹은 연기하면 재미있겠다, 이렇게 하면 다르게 할 수 있겠다 하는 촉이 온다"며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흡이 안 맞는 건 (배우가) 정말 괴팍하고 이상하지 않는 한 잘 없다"고 단언한 고인은, '연기'와 관련해서는 본인에게 몹시 가혹한 편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같은 인터뷰에서 고인은 "굉장히 비판적이고 상을 안 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할수록 "조금은 나아지니까. 나아질 확률이 있으니까" 연기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본인이 보기에 평소 삶은 재미없지만…
하지만 고인은 천생 배우였다. 본인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촬영할 때의 모습과 그 외의 모습이 달랐다. 평소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사람이 "일터에서 스태프들이랑 어울리는 건 너무 편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의 삶을 "재미없다"고 단언하면서도 차근차근 도전을 해 나간다고 밝힌 고인은 연기를 향한 열정만은 어마어마했다. "저도 (배우로서 일을) 나름 치열하게 하죠. 안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사교성도 없는 놈이 지금까지 해 왔겠어요"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그 '재미없는 삶'을 바꿔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촬영장 가는 게 제일 재밌는 일이다. 내 삶은 진짜 재미가 없다. 그런 삶을 살면서 무슨 좋은 연기를 하겠느냐. 이제부터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라며 "'저 사람, 참 삶을 멋있게 살았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일이자 취미인 '연기'를 계속 할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한 고인은 '죽음의 의미'를 묻는 유호진 PD의 질문에 "아무리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조금은 무서울 것"이라며 "지금은 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 故 김주혁이 바랐던 '10년 후'
"난 이번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지금 마누라가 셋째를 가졌다.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데 이번에 다행히 브래드 피트 형하고 같이 영화를 찍게 됐다. 돈 벌어서 한 턱 쏘마."
'1박 2일' 멤버들에게도 사려 깊은 덕담을 전했다. 차태현에게는 아들 수찬이의 명문대 입학을 축하했고, 김준호에게는 사업의 성공을 빌었으며, 데프콘에게는 근심걱정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해 보라고 권했고, 정준영에게는 나이를 먹었으니 평범하게 살라고 당부했다.
고인은 10년 후에도 종종 만나 술 한 잔 하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훈훈한 앞날을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 오늘(2일)은 故 김주혁의 발인 날이다. 이제 정말 작별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