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들은 한중관계 개선과 민생 등을 언급하면서 덕담을 건넸지만, 야당 대표들은 내년도 예산안 구성과 안보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온도차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35분쯤 국회에 도착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의사당 본청 현관까지 나와 문 대통령을 맞이했고 두 사람은 곧장 국회의장 접견실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문 대통령은 약 20분간 정 의장과 심재철·박주선 국회부의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우원식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정우택 원내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김동철 원내대표,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 등과 차를 마시며 환담했다.
정 의장이 먼저 "(문 대통령님께서) 빅뉴스 두 개를 가지고 오셨다. 어제 발표가 있었지만 한·중관계의 물꼬를 트신 것과 코스피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라며 "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덕담을 건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국빈 방문으로 오시고 국회에서도 연설을 하게 됐는데 지혜롭게 대처하고 국가 위기 극복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대통령께서 취임 후 휴식도 없이 강행군을 해오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애써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지만, 고용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며 "고용상황만 좋아지면 경제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니 오늘 제출된 예산안에 대해 여야가 지혜를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살려 나가면 2%대 저성장의 우려에서 벗어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각 당 대표들이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주문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중국과의 사드 문제 등을 잘 풀어 좋은 전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경제지표는 좋지만 고용상황은 어렵다고 하셨는데 국회가 잘 협의하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시정연설에서 내놓게 될 내용에 대해 성장동력을 만들고 성과로 돌려드리는 것으로 여당의 역할을 다하겠다"며 야당 대표들을 향해서도 "국민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개헌과 선거법 개정은 미래설계의 기반이므로 매우 중요한데 제대로 진행이 될지 우려가 깊다"면서 "국회 안에서만 진행할 수 없는 게 개헌인 만큼 개헌과 선거법 개정에 대통령이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자유한국당)은 "R&D(연구·개발)와 SOC(사회간접자본) 분야 예산 축소로 성장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최저임금·공무원 증원 등에 대해 예산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박주선 국회부의장(국민의당)은 "안보문제에 대해 미국 내 이견이 많은 것 같다.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두고 의견이 들쑥날쑥한데 한국의 동의 없는 군사행동은 안 된다는 법적 구속력 있는 조치들을 강구해달라"고 요구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이 있다"며 "경제 곳간은 분명한 재원 대책을 갖고 풀어야 하지만, 정치 곳간은 옥죄지 말고 많이 베풀어야 정치가 여유로워지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쓴소리'를 내놨다.
정 원내대표는 "취임 초 협치를 강조하실 때와는 동떨어진 느낌"이라며 "외교적 측면에서 한중관계 발표가 있었는데 군사주권의 미래에 족쇄를 채웠다는 비판도 있으니 귀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흥진호 나포사건은 국민에게 안보불안을 느끼게 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방향과 원칙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야당과 소통하고 국민적 공감대 속에 추진해야 하는데, 복지정책 등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갈등이 유발될 수 있으니 이점을 유념해달라"고 말했다.
주 권한대행은 이어 "국민 통합에 각별히 신경 써달라"며 "남북관계 로드맵을 밝히고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 해법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정책과 예산에 대한 국민의 체감도가 중요하다"며 "실현 가능한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과감한 복지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지도부의 요구를 다 들은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이미 이뤄졌다. 국회가 후속조치 마련에 지혜를 모아달라"며 "한중관계 정상화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평가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취임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났으니 시간을 좀 갖자"며 "(남북관계 로드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하고 난 후에 혹시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한국당 홍준표 대표에게 "오늘은 오셨네요"라고 인사하자 홍 대표는 "여기는 국회니까요"라고 답하는 어색한 풍경도 연출됐다.
문 대통령은 "홍 대표가 미국에 다녀온 것이나 박주선 부의장이 태국에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따로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홍 대표는 "나중에 기회 되면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두 차례 여야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 회동을 했지만 홍 대표는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며 불참했다.
이번 차담회에는 청와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박수현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