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없는 임신부 최대 3.7배 폭력 더 겪어…의료진 신고의무 법제화 필요"
임신부 3명 중 1명꼴로 아이를 밴 상태에서 배우자로부터 심리적, 육체적, 성적 폭력을 1차례 이상 경험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북대 간호과학연구소 연구팀(이성희 교수, 이은영 연구원)은 지난해 대구·경북지역 3곳의 산부인과 전문 병원을 찾은 250명의 임신부를 대상으로 임신 중 배우자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31일 밝혔다.
미국에서는 임신부의 18%가 임신 중 배우자로부터 폭력을 경험한다고 보고된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이런 실태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이 연구논문을 국제산부인과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Gynecology and Obstetrics) 11월호에 발표했다.
논문을 보면 전체 조사 대상자의 34%(85명)가 임신 기간에 배우자로부터 심리적, 육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욕설 등으로 아내를 모욕하거나 주변 물건을 부수는 등의 심리적 폭력이 32.4%(81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내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밀치고, 어깨나 목 등을 움켜잡는 등의 신체적 폭력이 8.4%(21명),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시도하는 등의 성적 폭력이 5.6%(14명)로 각각 집계됐다.
이 중에는 폭력으로 타박상과 골절 등의 상해를 입은 경우도 3.6%(9명)에 달했다.
이런 배우자 폭력은 임신부의 학력이 상대적으로 높을수록 최대 7.1배까지 더 심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임신부의 학력이 높을수록 배우자의 폭력 행위를 인식하고 보고하는 경향이 강한 데다, 임신부의 학력보다 남편의 학력이 낮거나 동등할 경우 남편이 폭력적인 행위로 힘을 과시하는 한국 고유의 가부장적인 경향이 잘못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임신부가 직업이 없는 경우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폭력을 참음으로써 배우자 폭력을 최대 3.7배 더 많이 겪는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연구팀은 임신 중의 배우자 폭력은 임신부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장·단기적으로 큰 피해를 주는 만큼 산전 진찰시 간호사나 의사가 폭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스크리닝 도구를 개발하고, 의료인의 신고의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희 교수는 "국내에서는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실태조사를 통해 19세 이상 기혼 여성의 12%가 배우자 폭력을 경험했다는 통계치가 있을 뿐 임신부 대상의 폭력 실태조사는 전무했다"면서 "임신부 스스로 해당 지역의 해바라기센터 등을 통해 상담과 법률 지원 등을 받는 방법이 있지만, 신고율이 저조한 만큼 간호사와 의사 등의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