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실장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실행·관리한 혐의로 구소기소돼 1심 실형선고 뒤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밝혀진 자료들이 증거로 인정돼 재판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 김기춘, 靑입성 직후부터 국정원-문체부 보고받고 블랙리스트 작업 지시
이는 "좌성향 문화계 인물들이 2014년 지방선거를 조직 재건의 호기로 보고 세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어 면밀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김 전 실장에게 "이념 오염 온상이 되어온 문예계 정상화를 위해 민관 협력하에 좌성향 단체·인물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뿌리 뽑아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김 전 실장은 문체부에 '특정성향 예술 지원 실태 및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문체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국정원과는 별대로 대책을 보고한 뒤 곧바로 '문화예술정책 점검 TF'를 구성해 본격적으로 작업에 나섰다.
김 전 시장의 문예계 블랙리스트 점검은 꼼꼼하고 치밀했다. 그는 2013년 12월 국정원에 "문화예술과 미디어 부분에 좌파가 많다. 공직 내부에도 문제인물이 있으니 잘 살펴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국정원은 2014년 1월27일 문예기금의 지원기준 변경 방안을 보고한데 이어 2월20일 '문화진흥기금 지원사업 심사체계 보완필요 여론'이라는 제목의 종합보고서를 청와대에 내놨다.
국정원은 '혜화동1번지', '서울프린지 네트워크' 등 이념 편파적 연극으로 물의를 빚은 극단이 문예진흥기금 지원 대상으로 재선정됐다는 점 등을 예로 들며 아직 좌파 단체나 인물들이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했다.
김 전 실장은 국정원 보고 다음날인 2월21일 문체부 장관을 불러 "좌편향 인물과 단체가 아직 지원대상에 포함돼 있다"며 질책에 나섰다.
당시 문체부 문건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문체부 장관에게 "문체부 예산과 기금이 좌파세력에게 흘러들어 가고 있고,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에도 문제가 있는 만큼 국정원과 협의해 정체성을 검증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 국정원 2년 6개월간 8천500명 검증작업, 348명 문제인물로 통보
질책을 들은 문체부는 바로 다음날인 2월22일부터 국정원에 지속적으로 인물 검증을 요청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정권 막판까지 인물 검증은 계속됐다.
방식은 문체부와 국정원의 긴밀한 협업으로 이뤄졌다. 문체부 담당 국정원 정보요원(IO)이 문체부에서 검증요청 명단을 받아 국정원에 전달하면 국정원이 검증을 한 뒤 명단을 확정해 구두로 문체부에 결과를 통보하는 식이었다. 이들은 처음에 명단을 문서로 받다가 나중에는 이메일로 주고받았다.
국정원이 2014년2월~2016년9월까지 이런 방식으로 검증한 인물은 무려 8천500여명이었다. 이들 중에 348명을 문체부에 '문제 인물'로 선별 통보했다.
국정원 IO가 문체에 명단을 전화로 불러주고 별도의 문서를 남기지 않아 348명의 실명이 기재된 자료는 보존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정원 내에 남아있는 보고서 등을 종합한 결과 348명 중 181명의 실명은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 국정원 자체 작성 블랙리스트 최초 공개, 249명 분야별로 분류
이 리스트는 문학, 미술, 연극, 음악, 영화, 방송, 기타로 분류돼 있고 파트별로 초성 순으로 249명의 이름이 나열돼 있다.
국정원은 이 보고서에서 이들의 명단을 나열하며 공공, 민간 분야로 구분해 단체 인물에 따라 차별화된 대응전략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공분야에서는 ▶문체부 소속 공공기관 주요보직에 좌성향 인물이 배치되지 않도록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며, ▶예술위·영진위 등 좌성향 실무진 청산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제단체·인물에 대한 기사 등을 통해 비리·부조리 관련 증거를 확보해 자발적 사임을 유도하고, 임기만료시 연임 차단하며 ▶한예종의 「전임교수 및 조교임용규정」에 연구실적 등이 부진한 교수에 대한 제재조항을 신설해 이념 편향적 교수를 퇴출하는 방안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단체의 경우 "좌파는 철저히 정부지원 대상에서 제외시켜 고립·고사시키고 중도성향 세력은 적극 포용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언론·인터넷을 통한 좌성향 문예인들의 이념·정치적 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을 집중 부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국정원 개혁위의 이날 발표 내용에는 김기춘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관련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는 나와 있지 않다. 국정원 개혁위에 조사 결과를 보고한 적폐 TF가 국정원 내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활동을 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블랙리스트의 꼭지점에 박 전 대통령이 지시했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일은 검찰의 몫으로 남겨졌다. 국정원 개혁위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자들이 기소돼 재판중에 있거나 수사중에 있음을 고려해 조사 결과 및 관련자료를 검찰에 전달하도록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