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반 아이들 이야기 '땐뽀걸즈'의 매력은 그동안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잘 경험할 수 없었던 성질의 것이다. 좀처럼 '이야깃거리'로 다루어지지 않은 보통 소녀들의 일상을 그려지고, 그들의 신뢰를 받으며 관객의 맘까지 사로잡는 '좋은 어른'이 나온다. 댄스스포츠에 매진한 주인공들에게선 건강함이 뿜어져 나온다. "맑고 사랑스럽다"는 수식이 꼭 어울린다.
지난 4월 13일 KBS 1TV에서 'KBS스페셜'로 먼저 방송된 바 있는 '땐뽀걸즈'는 원래부터 영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었다.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우연'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맞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거야!' 하는 확신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이야기를 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앞섰다.
다행히 제 때 만난 '조언' 덕에 '땐뽀걸즈'는 영화로 만들어져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6개월 간 거제여상 '댄스스포츠반' 아이들을 좇는 카메라는 그동안 자주 놓쳐왔던, 그래서 새롭게 느껴지는 어떤 순간들을 잡는다.
개봉 한 달째에 맞춰 5천 관객을 돌파한 영화 '땐뽀걸즈'의 이승문 감독을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시네마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 27일 관객수 5천 명을 기록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기쁘다' 말고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사실은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처음에도 개봉관이 많지 않았고 중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줄었다, 10개관 정도로. 그런데 매일매일 들어오는 관객 스코어(수)가 줄지 않고, 확 늘지는 않았지만 (웃음) 계속해서 사람들이 봐 주고 있다. 되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실은 5천 명이 여러 가지 제 심리적인 마지노선이었거든요! 5천은 넘겨야 여러 사람들에게 덜 미안하겠다는 생각도 좀 있었다. 아예 잊혀지는 작품이 아닌 정도의 스코어는 된 것 같다. (기자 : 그럼 목표치에 닿은 건가) 목표는 100만이다. (웃음)
▶ 1만 관객 돌파 시 '땐뽀반' 아이들과 이규호 선생님이 함께하는 GV를 진행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가능할 것이라고 보나.
지금처럼 사랑해 주신다면! (웃음) 지금까지 보신 분들이 한 번씩만 더 봐 주시면 된다. 그럼 다음주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사실 그때 제가 하고 싶었던 아이템은 따로 있었다. (기자 : 회사에서 아이템을 자른 건가) 'KBS스페셜' 팀 PD들과 아이템 회의하다가 추려진 거다. 그때 하고 싶었던 게 어떻게 보면 ('땐뽀걸즈'와) 결과적으로는 좀 비슷한 것 같다. 경북 칠곡의 시 쓰는 할머니들이 계시다. '시가 뭐고'라는 시집을 내신. 칠곡에 그 당시 다른 큰 이슈가 걸리는 게 있다면 그것과 관련해서, 밀양 할머니들처럼 떠올리게 하면서 또 다르게 접근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약간 말만 앞서는 얘기다 보니 추려졌다.
'둘러서 하는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일상이 묻어나는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 (이미 나간 기사들에서) 제가 거제에서 ('땐뽀반' 아이들을 보고) 확신에 차서 올라온 것처럼 나오기도 하는데 (웃음)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건 맞다. (아이들에게) 차비로 천 원씩 주는 선생님이.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믿는 선배한테 얘기했다. 하고 싶어서 내려갔는데 우리 용어로 '짜치는'('쪼들리다'의 방언) 얘기가 아닌가 싶었다. 뭔가 큰 걸 해야 되는데, 하면서. 그때 그 선배가 일침을 놔 줬다. 늘 그런 데서 시작한다고.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하더라. 그런가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제가 귀가 얇아서… (웃음)
▶ 다큐멘터리이니만큼 아이들의 일상이 공개되는 부분이 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카메라로 찍힌다는 것에 어색해 했을 것 같다.
'카메라가 나를 찍는다'는 걸 이해하는 시간은 당연히 걸렸다. 그럼 하루 안에 절대적으로 많이 찍어 익숙해지게 하면 된다. (웃음) 한 관객이 '다큐가 아니라 연출된 것 같다'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친구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건 사실이지만 저희가 그 삶을 생방송으로 중계한 게 아니잖아요. 제가 그 모습에 일종의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이게 뭐다' 하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이 저한테도 온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취사선택해서 보여드린 거다.
▶ 촬영기간이 얼마나 되나. 그 시간에 놓치지 않고 담고 싶었던 장면이 있나. 아니면 그런 순간이 제 발로 찾아온 편이었나.
지난해 7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총 6개월 정도다. 추가 촬영도 좀 했다.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나니까, 저는 카메라로 찍은 것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게 된다. 제가 느낀 감정과 (이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 뭔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 이들의 백그라운드 사연을 찍기 위해 깊이 있는 촬영을 한 번 더 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반말하는 장면을 위해서는 선생님도 표현되어야 하고, 개개인의 사연도 표현되어야 했다.
가치관이 그랬다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그런 서사를 싫어하긴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문제아들을 계도하는 프로젝트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 건 재미가 없고 보면 불편했다. ('땐뽀반' 아이들이) 흡연하고 음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선입견 가졌냐고 하면 '그건 아니'라고 하겠지만, 대단한 가치관을 갖고 접근한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거다. 저도 이 친구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촬영하지 않나. 저란 존재가 어떤 모양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그들도 마찬가지다. 그때 제 공간을 최대한 없애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가 기세에서 많이 밀렸기 때문에. (웃음) (아이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걸 우연히 많이 봤고, 그걸 보고 나면 굳이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이 공간은 어떨 거야' 짐작하고, 어떤 시선을 갖고 들어갔다면 (본 모습이) 안 보였을 거다. 제가 쭈굴쭈굴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부풀어 오르는 공간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특히 미디어가 다루는 '여고생'의 이미지는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인 동시에 굉장히 성적으로 소비되는 식으로 단편적인데, '땐뽀걸즈'는 그런 접근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역시 너무 당연한 거라. 촬영감독도 그렇고 저도 여자아이돌이 춤추는 모습을 즐겨 소비하지 않거든요. 그분들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여고생을 굳이 그렇게 봐야 될 대단한 이유가 없어서 안 본 것 같다. (웃음)
촬영 중에 그런 생각은 했었다. 어디서 이런 글을 봤다. 청소년들에게 흔히 하는 얘기가 '사교육 광풍으로 시름시름' 이런 거다. 그런데 그런 청소년은 10% 정도고 90% 청소년은 아무의 레이더 안에 들어오지 않은 채 방임, 방치돼 있다는 거였다. 전 그게 되게 맞다고 봤다.
저도 그런 친구들을 만날 일이 없었는데 우연히 만난 것이다. 이렇게 방치된 아이들을 우리 시선 안으로 불러들이는 기존의 방식이 있지 않나. 연출자도 카메라 감독도 어른이고, 미디어산업도 어른이 하는 건데 (기존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되게 무책임한 방식이라고 봤다. (정해진 테두리) '요 안에 들어와' 해 놓고 완전히 망가지거나 섹시하거나 하는 극단만 봐 줄게, 하는 건 나머지 90% 친구들을 어른들이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걸로 들려서.
오히려 묻고 싶다. 이 친구들에게 과연 연애상담할 수 있는 어른이 있느냐 하고. 쉬쉬하거나 '벌써 남자를 사귀어?' 하기 마련이니까. 아이들 연애상담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그들에게) 많은 어른들의 좋은 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아이들은 사랑이 뭐고 연애가 뭔지 등 본인들에게 진짜 중요한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방치돼 있다.
▶ 영화를 보면 아이들이 댄스스포츠에 빠지고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는 게 '땐뽀반' 이규호 선생님의 사소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이규호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종교인이나 사회봉사자 그런 느낌은 절대 아니다. (웃음) 정말 유쾌하시다. 어느 정도의 해석을 해 보면, 이규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딱 바꾸려고 하는 건 춤밖에 없다. 그것 외에는 뭔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선생님이 가지신 체질적인 미덕 같다. 그래서 선생님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몸에 인이 박히고 춤 동작을 익히듯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대하고, (선생님의 이 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모이는 것 같다. 사소한 관심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선생님은 의외로 (웃음) 카메라 체질이셨다. (웃음) 카메라 체질이라는 건 그냥 표현이고, 정말 평소 하시는 대로 해 주셨다. 끝까지 개인의 삶을 비추는 건 원치 않으셔서 거기까지만 했다.
▶ 사제지간이 흥미롭다. 위계 없이 평등하다. 한국 교실에서 잘 보기 어려운 장면인데, 오랫동안 촬영하면서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저나 촬영감독도 사람이라 기분 나쁘면 찍기 싫거든요. 선생님이 과하게 뭘 하시거나 애들이 너무 버릇없게 한다거나 하면 찍기 싫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없었다. 춤 연습 중에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뭔가 의견을 제시했을 때 아이들이 어기진 않는다. 그 외에는 선이 거의 없는 것 같고. 댄스스포츠라는 공간 안에서는 정확하게 선이 있다. 선생님도 누가 좀 못한다고 해서 체벌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본인들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알고.
선생님 대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 여덟 명과 한 명이 원형을 이뤄 지지하고 견제하는 구조라고 본다. 이 공간 안에 주목했다. 사실 어른들 9명이 모여서도 그런 윤리를 만들기가 어렵다. 그런 모습이 멋있었다. 학교라는 게 그런 사회를 만들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지 않나. 교실에서는 못했지만 여기('땐뽀반')서는 충분히 했던 것 같다.
▶ 그런 점이 이 이야기에 차별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판타지'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김훈식) 촬영감독이랑 숙소에서 백업하면서 보다가 '아, 이게 만약 영화였으면 아무도 안 믿을 것 같다'는 얘기는 진짜 많이 했다. 촬영 발제하면서도 (회사에서) '자꾸 부풀리는 거 아니냐?',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판타지로 보인다는) 지적이 타당하지만, 이런 현실의 이야기를 충분히 배달하지 못한 제작자들의 책임도 큰 것 같다. 예능에서 보이는 판타지는 진짜 현실의 세계로 범람해서 그것만이 현실인 것처럼 보이지 않나.
물론 미화시키면 안 되지만, '거기에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있어?' 싶은 분들이 있더라. 선생님들만 봐도 전국에 분명 그런 선생님들이 있을 거다. 없으면 어떡하지? (웃음) 저는 그런 분들을 경험적으로 만났다. 우리가 그동안 불러주지 않고 봐 주지 않았을 뿐이다. KBS PD들은 뭐하는 사람이냐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그 조직) 안에서도 뭔가 씨앗을 뿌려보려고 시멘트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있거든요. (특출난) 개인이 제도를 바꾸는 최종적 희망이 될 순 없겠지만 감화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노컷 인터뷰 ② KBS PD인 '땐뽀걸즈' 감독이 말하는 이번 파업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