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양현종-꾸역꾸역 장원준' 이런 투수전도 있다

26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명품 투수전을 펼친 KIA와 두산의 좌완 에이스 양현종(왼쪽)과 장원준.(사진=KIA, 두산)
한 명은 압도적이었고, 또 한 명은 불안했다. 그러나 점수는 나지 않아 팽팽한 투수전이 경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한 팀의 타선은 출루조차 쉽지 않았고, 또 다른 타선은 매이닝 출루는 쉬웠지만 홈까지가 어려웠다.

KIA와 두산의 토종 좌완 에이스들이 가을야구를 명품 투수전으로 물들였다. 연일 홈런포가 펑펑 터졌던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모처럼 팽팽한 투수전의 긴장감이 흘렀다.

KIA 양현종과 두산 장원준은 2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한국시리즈(KS) 2차전에 나란히 선발 등판했다. 양현종은 올해 20승으로 1995년 이상훈(당시 LG) 이후 22년 만에 선발 20승을 거둔 토종 투수, 장원준은 14승9패를 기록했으나 평균자책점(ERA) 3.14로 전체 2위, 국내 선수 중 1위에 올랐다.

국내 최고 좌완을 다투는 둘인 만큼 치열한 선발 대결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하지만 정규리그 팀 타율과 득점 1, 2위인 KIA와 두산인 만큼 두 투수도 다소의 출혈은 각오를 할 터였다.

그러나 양현종은 한 마디로 압도적이었다. 본인의 날카로운 구위에 전날 1패를 당한 에이스의 책임감을 더해 혼신의 역투를 펼쳤다. NC와 플레이오프(PO) 2~4차전에서 평균 15득점, KS 1차전에서도 5점을 뽑아낸 두산 타선은 8회까지 무득점에 머물렀다.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와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까지 두산 타자들은 양현종 공략에 쩔쩔 맸다. 5회까지 양현종은 공 60개로 1피안타 1볼넷 5탈삼진으로 두산 타선을 잠재웠다.


위기는 6회였다. 1사에서 양현종은 민병헌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고 득점권에 몰렸다. 양현종은 오재원을 삼진으로 돌려세워 한숨을 돌렸다. 이때 KIA 이대진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이후 양현종은 어려운 승부로 까다로운 타자 박건우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다음 타자는 두산 4번 김재환. 정규리그에서 양현종에 6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앞선 두 타석에서도 무안타. 양현종은 1볼-2스트라이크에서 시속 147km 속구를 꽂아 김재환을 얼렸다.

8회까지 10탈삼진 3피안타 2볼넷 무실점, 투구수 101개의 괴력투. 8회 마운드를 내려오며 양현종은 3루 쪽 KIA 응원석을 향해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리며 팬들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양현종이 두산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회말 수비를 마친 뒤 마운드를 내려오며 3루 쪽 KIA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을 이끌어내고 있다.(광주=KIA)
이에 맞선 장원준도 명불허전이었다. 7회까지 매이닝 주자를 내보냈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원래 장원준은 양현종만큼 타자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아니다. 정교한 제구력과 변화구를 적절하게 이용해 안정적인 마운드 운영을 하는 투수.

이날 장원준은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7회까지 볼넷을 5개나 내줬다. 탈삼진은 4개, 피안타도 4개였다. 그러나 9명이나 출루를 허용했음에도 단 1점도 주지 않았다. 꾸역꾸역 이닝을 먹어가며 장꾸준이라는 별명을 입증해냈다.

포수 양의지와 함께 병살타 2개를 유도해내며 위기를 넘겼다. 장원준은 1회 이명기를 유격수 실책으로 내보냈지만 김주찬에게 유격수 병살타를 유도했고, 3회 1사에서도 이명기의 번트 안타 뒤 역시 김주찬의 유격수 병살타를 솎아냈다.

투구수 100개가 넘어간 7회가 고비였다. 장원준은 안치홍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2사에서 다시 김선빈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두산도 투수코치가 올라가 장원준의 상황을 살폈다. 투구수 114개, 교체 시점이었지만 두산 벤치는 에이스의 자존심을 살려줬다. 결국 이명기를 땅볼로 잡고 이닝을 마쳤다.

결국 승부는 한 명이 물러난 뒤 결정됐다. 8회말 장원준에 이어 올라온 함덕주가 김주찬에게 빗맞은 우선상 2루타를 내줬다. 희생번트 뒤 교체 등판한 김강률이 최형우를 볼넷으로 내보낸 1사 1, 3루.

나지완이 3루 땅볼을 때렸지만 여기서 사건이 벌어졌다. 두산 내야진은 3루 주자 김주찬을 협살로 모는 듯했다. 그러나 포수 양의지가 그 사이 3루로 뛰던 최형우를 잡기 위해 송구해 아웃시켰다. 그러나 그동안 김주찬이 홈을 밟았고, 송구가 늦어 실점했다.

8회 승리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양현종은 9회도 마운드에 올랐다. 1사 뒤 김재환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1-0 승리를 지켰다. 9이닝 11탈삼진 4피안타 2볼넷 무실점 투구수 122개의 완봉 역투. 역대 포스트시즌 21번째, KS 10번째 완봉승을 거두며 경기 MVP에 올랐다. 특히 KS 최초 1-0 완봉승의 주인공이 됐다. 압도적이었던 양현종과 꾸역꾸역 버텨준 장원준, 승패를 떠나 이런 투수전이 가을야구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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