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은 "헥터가 후반기 구위가 다소 떨어졌는데 회복이 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훈련 때와 홍백전에서 공을 받아봤는데 확실히 3주 동안 쉬면서 힘이 붙었다"고 강조했다. 헥터는 올해 정규리그 전반기 14승 무패 평균자책점(ERA) 3.16으로 승승장구했으나 후반기 6승5패 ERA 3.92로 주춤했다.
헥터는 지난해 리그 최다 이닝(206⅔이닝)을 소화했다. 여기에 올해도 201⅔이닝, 2년 연속 최다였다. 피로가 올 수 있었지만 정규리그 우승으로 KS까지 3주의 휴식 시간이 있었다.
과연 헥터는 이날 초반 구위가 돋보였다. 3회까지 2피안타 무실점, 투구수 37개로 역대 플레이오프(PO) 최고 타율(3할5푼5리)을 세운 두산 타선을 잠재웠다. PO 최우수선수 오재일과 지난해 KS MVP 양의지 등 두산 타자들의 방망이가 잇따라 최고 구속 150km를 찍은 헥터의 힘있는 공에 부러져 나갔다.
하지만 4회 헥터는 살짝 흔들렸다. 첫 타자 박건우는 초구에 땅볼로 처리했으나 4번 김재환과 5번 오재일에게 연속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줘 득점권에 몰렸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헥터는 이번에도 양의지의 방망이를 부러뜨리며 병살타성 땅볼을 유도했다. 양의지의 타구는 힘없이 떴다가 2루수 안치홍의 앞에 떨어졌다. 오재일, 양의지의 느린 발을 감안하면 병살타는 충분했다.
그러나 안치홍이 공을 더듬었다. 병살 처리를 하려는 마음이 급해 나온 실책. 이닝이 끝났어야 할 상황이 1사 만루가 됐다.
헥터는 허경민을 땅볼로 처리해 이닝을 마감했다. 잇딴 위기를 감안하면 1실점으로 잘 막은 편이었다. 하지만 실책 뒤 23개나 공을 더 던진 점을 감안하면 헥터로서는 진한 아쉬움이 남은 4회였다.
특히 헥터는 4회 무려 34개의 공을 던지면서 '마의 구간'에 들어서고 있었다. 올해 헥터는 투구수 76~90개 사이의 피안타율이 3할5푼으로 120개까지 15개씩 끊은 구간 중 가장 높았다. 4회까지 헥터는 71개의 공을 던졌다.
4회의 여파는 5회 곧바로 드러났다. 헥터는 첫 타자 민병헌의 내야 안타, 류지혁의 희생번트로 6개의 공을 던졌다. 투구수 77개, 가장 약했던 75구 이상 범위에 들어갔다. KIA로서는 위험 신호였다. 박건우에게 3볼-1스트라이크로 몰린 가운데 맞은 좌전 적시타는 재앙의 서막에 불과했다.
헥터는 4번 김재환에게 2점 우월 홈런을 얻어맞았다. 4구째 시속 148km 속구가 가운데 높게 들어가면서 김재환의 파워 스윙에 비거리 115m 아치를 그렸다. 후속 오재일에게도 4구째 147km 속구가 몰리면서 우월 1점 홈런이 됐다. 오재일은 홈런 타구가 외야 관중석에 설치된 홈런존을 맞아 3900만 원 상당의 스팅어 드림 에디션 차량을 받는 행운까지 누렸다.
이날 경기 전 김기태 KIA 감독은 "오늘 경기에서 분명 실수가 나올 것"이라면서 "실책도, 병살도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최대한 줄이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치홍의 실책 1개는 결과적으로 승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공교롭게도 헥터가 4회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김재환, 오재일의 볼넷은 자신이 가장 강했던 투구수 구간이었다. 올해 헥터는 31~45구째 피안타율 1할9푼5리로 2명 이상을 상대한 투구수 구간 중 가장 낮았다. 양의지의 땅볼을 유도한 투구수 46~60구도 2할1푼7리로 다음이었다.
이 구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연속 볼넷을 내준 것은 헥터 본인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양의지의 땅볼을 아쉽게 처리하지 못한 안치홍의 플레이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 뒤에 이어진 박세혁, 오재원의 끈질긴 승부는 두산의 힘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들이 끈덕지게 헥터를 물고 늘어졌기에 5회 4득점의 빅이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헥터의 힘이 떨어진 '마의 구간'에 들어서게 한 숨은 공로자들이었다.
결국 두산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대 반격을 막아내며 5-3 승리를 거뒀다. KIA는 8회 무사 1, 2루에서 안치홍의 3루수 병살타가 나오면서 추격 의지를 잃었다. 헥터는 6이닝 5실점(4자책), 투구수 106개를 던지고 패전 투수가 됐다. 6이닝 3실점한 니퍼트가 경기 MVP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