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FA컵 결승 진출 "조진호 감독님,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은 수원 삼성과 FA컵 준결승에 앞서 故 조진호 감독을 추모하는 묵념으로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곁에 안 계시지만, 항상 같이 뛴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 고경민의 슛이 성공하자 하프라인에서 어깨 동무를 하고 응원하던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은 고경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벤치에 있던 선수단 전원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고(故) 조진호 감독에게 승리를 선물하기 위한 간절함으로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조진호 감독에게 승리를 안겼다.

부산은 25일 부산구덕운동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FA컵 준결승에서 수원 삼성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부산은 울산과 FA컵 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지난 10일 부산 선수단은 충격에 휩싸였다. 조진호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8일 경남FC전 패배로 챌린지 우승이 사실상 좌절되면서 K리그 클래식 자동 승격이 어려워졌지만, 아직 FA컵 준결승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이후 챌린지 2경기를 치렀지만, 모두 원정이었다. 이날 FA컵 준결승이 조진호 감독이 떠난 뒤 첫 홈 경기였다.

이승엽 감독대행은 경기 전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하자고 했다. 곁에 안 계시지만, 항상 같이 뛴다고 생각한다"면서 "대진표가 나왔을 때부터 조진호 감독님께서 수원 전술을 파악해두셨다. 단판 승부지만, 감독님이 원했던 공격 축구를 하려고 한다. 전방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수원 서정원 감독 역시 부담이었다. 부산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뛸 상황에서 나흘 전 슈퍼매치까지 치르고 왔다.


서정원 감독은 "축구라는 게 여러 요소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다. 부산은 동기유발이 극에 달했다. 22일 챌린지 경기에 주전을 제외하면서 준비했다"면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시작에 앞서 조진호 감독의 추모 영상과 함께 부산 갈매기가 흘러나왔다. 조진호 감독이 올해 2월 챌린지 미디어데이에서 클래식 승격 확정 후 팬들 앞에서 부르겠다고 약속한 곡이다. 하지만 조진호 감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부산 지역 스포츠 구단들의 응원가로 쓰이는 신나는 곡이지만, 이날은 너무나도 슬픈 멜로디였다.

K리그 클래식 4위 팀 수원을 상대로 부산이 잘 버텼다. 22일 챌린지 경기에 주전들을 제외한 효과가 있었다. 전반 15분 만에 임상협이 부상으로 교체되는 악재 속에서도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부산에게 기회는 있었다. 후반 12분 최성근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면서 수적 우위를 점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

후반 18분 임유환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핸드볼 파울을 범했다. 박기동의 돌파를 태클로 막아서는 과정에서 공이 팔에 닿았다. VAR을 거쳤지만, 페널티킥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후반 21분 염기훈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줬다. 골키퍼 김형근이 방향을 예측해 손을 뻗었지만, 공은 골키퍼 손을 맞고 골문 안으로 향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실점 후 곧바로 공을 꺼내들어 하프라인으로 달렸다. 승리에 대한 의지였다.

결국 동점골이 터졌다. 해결사는 이정협이었다. 후반 32분 정석화가 페널티 박스 안으로 찔러준 공을 이정협이 마무리했다. 수비수를 등진 상황에서 때린 터닝슛이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승리의 여신은 하늘에 있는 조진호 감독, 또 부산을 향해 웃었다.

연장 후반 7분에는 조나탄의 벼락 슈팅에 실점했지만, VAR을 통해 골에 앞서 수원 김건희의 파울이 인정되면서 실점이 취소됐다.

승부차기에서 세 번째 키커 이정협이 수원 골키퍼 양형모의 선방에 막혔지만, 수원 역시 조성진의 슛이 골문을 벗어났다. 부산이 먼저 네 번째 킥을 성공시킨 뒤 골키퍼 김형근이 김은선의 슛을 막아냈다. 이어 마지막 키커 고경민이 승부를 매조지었다.

축포와 함께 부산 갈매기가 흘러나왔다. 경기 전과 달리 경쾌한 멜로디였다. 마치 하늘에서 조진호 감독이 부르는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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