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호국영웅 66년만에 아내의 품에 안겼다

고 김창헌 일병의 94살 아내 "너무 감격스러워요"

유해와 함께 발굴된 고 김창헌 일병의 유품(인식표) (사진=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6.25 전쟁 때 숨진 호국 영웅이 66년 동안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94살 아내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4일 오전 1951년 국군 8사단 10연대 소속으로 6․25전쟁 노전평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 김창헌 일병(1924년생)의 아내 황용녀(94세, 경기 성남 중원구)씨의 자택을 방문해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갖었다고 밝혔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에서는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시 관을 덮은 태극기, 함께 발굴된 인식표, 도장 등 유품이 가족에게 전달됐다.

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5번째다.

고 김창헌 일병은 1924년 경기 안성시 삼죽면 용월리에서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삼죽면 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44년 4월 황용녀씨와 결혼했다.

이후 김 일병은 1951년 1월 28세의 나이로 자원입대해 국군 8사단 10연대로 배치됐다.


당시 유엔군은 공산군 측의 무성의로 휴전 회담이 지연되자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제한된 공격작전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노전평 전투(’51.8.9∼’51.9.18)에 김 일병이 소속된 국군 8사단이 투입됐다.

8사단은 강원도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점령해 적을 압박하기 위한 전형적인 고지쟁탈전을 벌였다.

국군 8사단은 1차 노건평 전투에 이어 일주일간 벌어진 2차 전투에서 포로 57명, 사살 983명의 전과를 올렸지만 아군측 피해도 커 90명이 숨지고 536명이 부상, 17명이 실종됐다.

김 일병은 2차 노전평 전투 중 적의 총탄에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며 1951년 8월 25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김 일병의 유해는 2017년 7월 5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무명 900고지 일대에서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0184968)와 한자로 이름이 새겨진 도장, 버클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유해발굴단에 따르면 그러나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는 끝자리가 불명확해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웠다.

결국 군번 0184960부터 0184969을 가지고 있는 전사자와 김창○(金昌○) 두 글자의 한자로 시작되는 전사자 이름을 일일이 대조해 지난 7월 6일 최종적으로 군번 0184968, 일병 김창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유해의 유전자와 그가 남기고 간 딸의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최종 그의 가족 관계가 확인됐다.

66년만에 돌아온 남편을 맞은 아내 황용녀(94세)씨는 감격스럽다며 눈문을 흘렸다.

황 씨는 "남편이 6·25전쟁으로 자원입대 했을 때 임신 중이었고 남편은 복중의 아이를 남자로 생각해 김인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났는데 10일 후 딸이 태어났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또 "남편이 소중하게 지어준 아이의 이름을 바꿀 수 없어 아들 이름이지만 그대로 썼다"며 "남편이 떠난 후 보따리 장사와 노점상을 하며 딸을 키웠는데 이제라도 남편의 유해를 찾아 만나 볼 수 있어서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신원이 확인된 김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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