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나란히 프로야구 무대에 뛰어들어 한국 야구의 역사를 이끌어 온 호랑이와 곰은 놀랍게도 그동안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마침내 '단군 매치'라 불릴만한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매치업이 성사됐다.
KIA는 87승56패1무를 기록해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전반기까지 여유있게 1위를 질주하다 뒷심 부족으로 고전, 시즌 마지막 날에서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KIA를 끝까지 괴롭힌 구단은 다름 아닌 두산이었다.
84승57패3무를 기록한 두산은 후반기 승률 1위의 질주를 앞세워 끝까지 KIA를 추격하다 결국 2경기차 뒤진 2위로 정규리그를 마무리했다.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3승1패로 승리해 3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정규리그 우승의 열매는 달콤하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는 동안 충분히 쉬면서 한국시리즈를 준비할 수 있다.
양대리그로 진행된 두 시즌을 제외하고 플레이오프 방식이 병행된 지난 29번의 한국시리즈에서 정규리그 1위 팀이 우승한 경우는 무려 23번이다. 확률로 따지면 82.8%다.
기간을 최근 15시즌으로 좁혀보면 무려 14번이나 한국시리즈 직행팀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현행 제도에서는 정규리그 1위 팀이 누리는 '어드밴티지'가 그만큼 크다.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불패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한다. 10번 올라가 10번 다 우승했다. 해태 시절이었던 1983년, 1986년~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1997년 그리고 KIA로 바뀐 뒤에는 2009년 정상에 올랐다.
최근 15시즌 가운데 정규리그 우승팀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례는 2015년에 나왔다. 정규리그 1위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에서 패했는데 당시 상대가 바로 두산이었다. 두산은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주축 선수들을 잃은 삼성을 4승1패로 눌렀고 이듬해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두산은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린다. 또 두산은 리그 4연패 업적을 자랑하는 해태(1986년~1989년)와 삼성(2011년~2014년)에 이어 프로야구 역사상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역대 세 번째 구단 타이틀에도 도전장을 던진다.
지난해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지배한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의 위용은 예전만 못했다. 플레이오프 4경기에 나란히 등판한 니퍼트(8.44), 장원준(8.44), 보우덴(9.00), 유희관(7.71)은 최소 7점대 이상의 평균자책점(괄호 안)을 기록했다.
4경기 6⅔이닝 무실점을 기록, 고비 때마다 NC 타선의 흐름을 끊으며 불펜의 열쇠로 떠오른 함덕주가 팀을 살렸다. 마무리 김강률도 굳건했다. 4경기를 치르면서 얼마나 힘을 소진했느냐가 관건. 3일 휴식이 어떤 변수가 될지 지켜봐야 한다.
두산은 NC와의 4경기에서 역대 플레이오프 시리즈 평균 최다득점인 12.5득점을 올렸다. 3경기에서 10점 이상의 점수를 뽑았다. 이전 플레이오프 사리즈에서는 2경기 이상 두자릿수 점수를 올린 팀이 없었다. 두산의 플레이오프 팀 타율은 0.355, OPS(출루율+장타율)는 무려 1.107로 높았다. 개인의 기록이라 해도 굉장한 수준인데 팀 기록이다.
두산이 플레이오프에서 역사적인 타격 성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나 KIA는 이미 정규리그에서 타격의 역사를 바꾼 팀이다.
KIA의 정규리그 팀 타율은 0.302로 이는 프로야구 역사상 역대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6월말부터 8경기 연속 두자릿수 득점이라는 믿기 힘든 대기록을 쓰기도 했다.
FA 영입의 성공 사례로 남은 최형우를 비롯해 버나디나, 김주찬, 나지완 등 강타자들이 즐비하다. 3할 타자는 무려 7명. 주로 9번타자를 맡았던 김선빈이 타격왕(타율 0.370)에 올랐을 정도로 탄탄한 타선을 자랑한다.
'원투펀치'도 강력하다. 헥터와 양현종이 나란히 20승을 기록해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한 팀에서 2명의 20승 투수가 나온 것은 1985년 삼성 김시진-김일융 이후 역대 두 번째.
변수는 불펜이다. KIA는 정규리그 동안 불안한 불펜 때문에 뒷목을 잡는 날이 많았다. KIA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트레이드로 영입, 정규리그 막판 안정된 투구 내용을 선보였던 지난해 구원왕 김세현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두산은 주축 선수들의 몸 상태가 변수다. 포수 양의지가 허리 염좌로 4차전에 결장했고 외야수 박건우는 4차전 도중 옆구리 통증을 호소했다. 특히 투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양의지의 출전 여부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최대 변수가 될 것이다. 양의지가 제대로 뛰지 못한 마산 3,4차전에서는 박세혁이 잘했다. 김태형 감독은 "없으면 없는대로 다른 선수들이 잘해준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프로야구 원년 챔피언과 최다 우승 명문 구단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맞대결. 정규리그 챔피언과 후반기 승률 1위 팀의 승부. 탄탄한 타격 그리고 스타들이 넘치는 마운드까지. 처음이라 더 설레고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는 '역대급' 수준의 한국시리즈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