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월 만에 나온 검찰의 '백남기 외인사' 수사결과

이전 정권 눈치보다 현정부 들어 속도냈다 의혹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전남 보성군 농민회 백남기(69) 씨에게 경찰이 멈추지 않고 물대포를 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백남기 씨 사건과 관련해 약 2년 만인 17일이 돼서야 '당시 경찰 관계자 4명 불구속기소'라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이전 정권 눈치를 보던 검찰이 문재인정부 들어 뒤늦게 수사에 속도를 낸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인 백 씨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차벽 앞에서 직사살수(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백씨는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유족과 시민단체 측은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에 백씨가 사망했다고 판단, 사건 발생 4일 뒤인 18일 강신명(53) 당시 경찰청장과 구은수(59)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7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더디게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건의 복잡성을 고려하더라도 수사가 지금처럼 더디게 진행된다면 진상 규명은 더 어려울 것"이라며 검찰총장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결국 백씨는 정확한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사경을 헤매다가 쓰러진지 317일 만인 지난해 9월 25일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이에 검찰은 백씨의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을 조건부로 발부받아 집행을 시도했지만 장례식장을 에워싼 유족과 시민단체 측의 반발에 부딪혀 부검을 포기했다.

백씨 사망 이후 검찰은 올 초부터 구 전 청장 등 피의자와 참고인 19명을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당시 총책임자로 지목된 강신명 전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진동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검사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날 검찰 관계자는 "강 전 청장의 혐의가 명백하지 않고, 수집된 증거만 봐도 강 전 청장의 지휘·감독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굳이 소환조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발장 접수가 2년 가까이 됐는데 수사가 매우 늦은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공무집행 과정에서 (경찰 쪽도) 중대한 피해를 입어 정당성이 일부 인정돼 고민이 많았다. 유사 사례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독일 법원 측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했다. 유족과의 첫 면담도 지난 9월에서야 처음 20분간 진행됐다.

또 지난 6월 서울대병원이 백씨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한 부분이 수사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검찰 관계자는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이진동 부장검사)는 이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책임자급 간부 구 전 서울청장 등 2명과, 살수요원 A(38) 경장 등 2명을 불구속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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