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축구②] 발전 없이 현재에 안주하는 선수들

한 때 한국 축구를 이끌 중앙 수비수로 손꼽혔지만, 현재 소속팀도 없는 상태에 놓인 홍정호. (황진환 기자)
한국 축구가 위기다. 아시아 축구 최초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새 역사를 썼지만 많은 축구팬은 뜨거운 환영이 아닌 날이 선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축구계 안팎의 목소리를 통해 3회에 걸쳐 한국 축구가 처한 현주소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16일 발표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은 62위까지 추락했다. 10월 유럽 2연전(러시아 2-4 패, 모로코 1-3 패)이 반영된 결과다. 9월 51위에서 무려 11계단이나 내려앉았다. 57위로 올라선 중국보다 낮은 순위다. 1993년 FIFA 랭킹 도입 후 한국이 중국보다 밑에 자리한 것은 처음이다.


말 그대로 한국 축구의 수모다. 아시아의 호랑이는 옛날 이야기. 축구 팬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는 현실이다. 대한축구협회의 행정적 문제는 누구나 아는 사실. 그렇다면 최근 보여주고 있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은 오롯이 감독의 책임일까.

시계를 돌려보자. 불과 몇 년 전까지 해외파는 곧 유럽파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나선 해외파 10명 가운데 유럽파는 6명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해외파가 17명, 이 중 유럽파는 10명이었다. 유럽파가 해외파의 중심이었다.

이후 해외파 지형도가 달라졌다.

기존 일본 J리그와 J2리그는 물론 중국 슈퍼리그, 그리고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속속 일본과 중국, 중동으로 날아갔다. 10월 유럽 2연전 23명 해외파 명단 중 유럽파는 단 6명에 불과했다.

일본과 중국, 중동으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돈이다. 돈을 쫓는 것은 프로로서 당연한 선택이기에 전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유럽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중국에도 오스카, 헐크 같은 정상급 선수들이 뛴다. 수비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스파링 파트너다. 파울리뉴의 경우 중국에서 활약을 앞세워 FC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중동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축구에 정통한 김환 JTBC 해설위원은 "최근 2~3년 사이 중국, 중동 등 해외파가 늘어났다"면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어디 리그에서 뛴다고 기량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 같은 경우는 헐크, 오스카를 막은 수비수들이니 기량이 올라야 하는 게 맞다. 수준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선수들 하기 나름"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만 5년째 뛰고 있는 김영권. 홍정호와 함께 한국 수비의 희망이었지만, 역시 중국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박종민 기자)
문제는 현실에 안주하는 선수들이다. 한국 축구의 주축으로 성장해야 할 선수들이 돈 때문에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 중국파들은 슈퍼리그의 갑작스러운 외국인 선수 제한 규정으로 출전 기회를 잃었다. 홍정호 등은 아예 방출됐다. 한국 사령탑이 아닌 팀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권경원(톈진 취안젠)이 전부다. 중동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출전을 위해 팀을 옮긴 것은 장현수(FC도쿄)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이전트는 "중국이나 중동에서 받는 돈이 있기에 경기에 뛰지 못해도 적극적으로 새 팀을 구하려 하지 않는 선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에이전트는 "예전에는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으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리한 유럽 도전보다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중국, 중동 등을 선택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의 캡틴 기성용. 대표팀 기량이 떨어진다는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전문가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박종민 기자)
◇"근본적인 문제는 기량 부족"

다수의 축구인들이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한국 축구 위기가 대한축구협회의 행정 탓도 있지만, 선수들의 발전이 없었던 탓도 크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한국 스타일로 성적을 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축구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 선수들의 기량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진 축구만 외치고 있다.

김환 해설위원은 "대표팀 선수들 대다수가 소속팀에서는 주축이다. 소속팀에서처럼 공을 많이 가지고 한다. 예쁜 플레이만 한다. 그런데 모로코 벤치 선수들도 우리보다 공을 잘 찬다. 소속팀에서처럼 하면 안 된다. 항상 1대1에서 밀리는데 소속팀에서처럼 하니까 공을 뺏기고, 한 방에 무너진다"면서 "스스로 공을 잘 찬다고 생각한다. 기성용(스완지시티) 정도가 아니면 소속팀 플레이가 아닌 대표팀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해서 "1대1 기술로는 안 된다. 그걸 극복하려면 체력과 조직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밀란다"면서 "단순히 투지를 외칠 수도 없다. 달려들어서 안 되면 실수다. 결국 기량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럽파가 확연히 줄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K리그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선수는 권창훈(디종 FCO) 정도다.

김환 해설위원은 "냉정하게 말하면 유럽에서 한국 선수들을 원하지 않는다. 원하더라도 17~18세 어린 선수를 본다. 이후 선수들은 갈 기회가 없다. 권창훈은 특이 케이스"라면서 "특히 수비수는 갈 수 있는 시장이 중국, 일본, 중동 뿐이다. 유럽에서는 안 부른다. 측면 수비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경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