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재임시절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온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형사재판에서도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그러나 탄핵과 검찰 수사로 6개월 동안 재판을 받던 전직 대통령 신분의 피고인이 재판 보이콧에 나선 것은 국가의 근본인 사법체계를 무력화 시키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이에따라 사실상의 '재판 보이콧' 파장은 사법부는 물론 정치권에도 일파만파의 파장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은 더이상 형사재판을 끌고 가는 것이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렇기 때문에 변호인 사임이라는 '강수'를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특히 "이같은 박 전 대통령측의 돌발적 행동은 결과적으로 본인의 형사재판을 정치화시켜 버렸고 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과 유영하 변호사는 재판에서 그같은 '의도'를 뜻을 숨기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저는 롯데나 SK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사실이 없고 재판과정에서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며 본인 스스로 무죄 선고를 내렸다.
그는 "한 사람(최순실)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돌아와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며 "그렇지만 사사로운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변호인이 사임했지만 향후 재판은 재판부 뜻에 따르겠다"면서도 "검찰 수사와 6개월간의 법원 재판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 보이콧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퍼부었다.
유 변호사는 "형사법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중요한데도 이것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변호인이 향후 재판절차에 관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재판부에 대한 불신임 입장을 강력히 드러냈다.
그는 특히 재판부에 대한 '협박성 발언'까지 내놓았다.
유 변호사는 "2017년 10월 13일 재판부의 구속영장 추가발부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있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며 "모든 역사는 반드시 기록되고 후세가 평가한다"고 말했다.
특히 "구속영장 추가 발부는 '사법부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재판부에 대한 모욕성 발언도 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측은 더이상 형사 재판을 지속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의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는 신호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법원 안팎에선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사임 조치가 재판부에 대한 반발 뿐아니라 자유한국당의 출당조치에 대한 반발의 성격도 갖는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은 17일 혹은 18일 당 윤리위원회를 개최해 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 '필요적 변론사건'…재판 장기 표류하나?
그러나 박 전 대통령측의 정치적 노림수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무한정 장기 표류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중앙지법 김세윤 재판장은 "변호인 사임으로 오늘 예정된 증인 신문은 취소하겠지만 오는 19일 예정된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 대한 증인 신문은 열겠다"며 "그때 가서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필요적 변론사건'이다. 필요적 변론사건이란 피고인에 대한 방어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변호사를 지정하도록 한 사건이다.
이에따라 박 전 대통령은 기존 변호팀이 사임했기 때문에 새로운 변호사나 국선 변호인의 조력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변호사 사임으로 '재판 보이콧'을 사실상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정상적 재판 진행을 위해서는 국선 변호인을 지정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재판부는 일단 다음 기일에 박 전대통령에게 새로운 변호사 선임을 촉구하고 선임 의사가 없을 경우, 재판부 결정으로 국선 변호인을 선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선 변호인은 재판부가 피고인의 의견을 경청한 뒤 강제 결정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추가로 발부했다는 사실은 박 전 대통령 재판을 반드시 내년 4월 16일 이전에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구속 연장을 해놓고 연장 기간내에 재판을 끝내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며 "구속영장을 연장한다는 것은 구속 기간내에 반드시 판결 선고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에따라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일정 기간 표류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도 재판 서류가 10만여장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고 증인 신문 내용도 많기 때문에 심리가 일정기간 늦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무한정 늦추기는 어렵다.
재판부도 "새로운 변호인이 서류를 새로 검토해야 하므로 상당 기간 심리가 지연되겠지만 미결 구금일수 불산정 등 불이익은 피고인에게 돌아간다"며 피고인인 박 전 대통령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은 전 국민적 관심 사안이고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당하지 않는 선에서 신속하게 예단없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