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최저임금위 제도개선 성공할까?

2004년·2015년 실패… 외부전문가 통해 합의 틀 마련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근 30여년만에 제도개선의 첫단추를 꿰면서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최임위는 지난 10일 올해 안으로 제도개선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구체적 일정까지 발표했다.

노사 각자 3개씩 제출한 총 6개 과제에 노·사·공익위원이 추천한 전문가가 3명씩, 총 1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TF를 구성해 전문가별로 과제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중심으로 TF가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면, 최임위가 이를 토대로 재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최임위는 1987년 8월 처음 열린 이후 해마다 노사 간 격렬한 갈등을 반복했고, 그 때마다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이 조정안을 내놓으면서 합의기구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당장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는 노동자위원들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사용자위원 측이 제시한 시급 6470원 안을 놓고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만 모여 표결을 거쳐 그대로 통과됐고, 결국 노동자위원들이 집단 사퇴한 바 있다.

반대로 올해는 노동자위원 측이 제시한 시급 7530원 제시안이 채택, 의결됐고, 사용자위원들은 결과에 불복한 채 전원 사퇴를 선언했다.

정해진 재원을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기 위해 노사 간 이해다툼이 첨예할 수밖에 없는 최저임금을 정부 측 공익위원이 '캐스팅보드' 역할을 하며 사실상 최종 결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최임위의 신뢰만 손상돼온 셈이다.

이 때문에 앞서 최임위는 2004년과 2015년에도 최임위 내부에서 제도개선 논의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2004년에는 6개 과제를 놓고 노사가 머리를 맞댔지만 합의에 실패한 채 노·사·공익의견을 정부에 건의하는 데 그쳤다. 2015년에는 5대 과제 16개 의제를 놓고갑론을박을 벌였지만, 5개 의제만 합의했을 뿐이다.

최임위는 이처럼 노사간 이견을 쉽게 좁히지 못하자 이번에는 외부 전문가를 통해 객관적인 논의 기준부터 마련한 뒤 반드시 합의를 이루겠다는 각오다.

최임위 김성호 공익위원은 "그동안 각자 의견이 엇갈려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면서 "이번에는 양측 이견을 좁히기 위한 '마중물'로서 제도개선안을 TF로부터 제시받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 만들어질 전문가TF의 대안을 토대로 최임위 내에서 구성한 운영위가 올해 안으로 논의를 마무리한 뒤 결과를 내년 초쯤 열릴 최임위 전원회의에 보고하고, 최종안을 도출해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만약 최임위가 제도개선안 합의에 성공해도 이것이 곧바로 관련 법 및 행정지침이 변경되는 법적 강제력은 없다.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여부가 주요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아온 터라 정치권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현재 노정(勞政)대화가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위·최임위가 제도개선 합의에 성공할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노사정 주요 합의사항이 될 가능성도 높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만약 최임위가 합의에 성공해 대안을 정부에 제출하면 당정합의 등을 거쳐 최저임금법 개정안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노사공 합의에 성공한다면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권 역시 최임위 합의안을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번에 논의될 6개 과제는 노동계가 제시한 ▲ 가구생계비 계측 및 반영방법 ▲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분배 개선 및 저임금 해소에 미치는 영향 ▲ 최저임금 준수율 제고 등 3개 과제와 경영계가 요구한 ▲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선방안 ▲ 업종·지역별 등 구분적용 방안 ▲ 최저임금 결정구조·구성개편 등 3개 과제로 이뤄졌다.

그동안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중 상당수가 가구 생계를 홀로 책임진다"며 "미혼 단신 근로자생계비 외에 가구생계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최임위는 1988년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이래 줄곧 '미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를 주요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산정해왔다.

소득분배 개선 차원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데에는 노사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실제 최임위 논의과정에서는 인상폭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왔다.

아울러 내년도 최저임금이 큰 폭(16.4%)으로 인상되면서 실제 산업현장에서 최저임금 준수율을 높이는 방안은 명목상의 최저임금과 실제 노동자들의 손에 쥐어진 최저임금 간의 괴리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기준 전체 노동자의 13.6%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데다 이들의 약 90%가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 정부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마당에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내년에는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편 경영계는 최근 기아차 노사 소송으로 주목받은 정기상여금이나 숙식비 등 간접인건비까지 최저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또 영업이익률이 낮은 택시·경비·편의점·음식점업 등 8개 업종이나 물가가 낮은 지방에는 최저임금을 따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동계는 "최저임금의 개념부터 정면으로 위배하는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최임위 구성에 관해 노동계는 최임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 선발권을 국회에 맡기거나 시민사회 등과 권한을 나눠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 일각에서는 최임위 자체를 폐지하고 자문기구로 격하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최임위와 같은 독립된 합의기구를 통해 결정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아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처럼 노사간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과제를 두고 이번에도 운영위 및 최임위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 2004년과 2015년의 전례 대로 노·사·공익 3자 의견을 따로 정리해 정부에 제출하게 된다.

다만 김 위원은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위한 전문가 TF 제안을 중심으로 최임위 차원의 합의를 도출한다는 데 노사공 공감대가 있다"고 "가능한 한 합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고 강조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