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청춘시대1'이 아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울리고 웃기면서, '청춘시대1'을 인생드라마로 꼽는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드라마 팬들의 지지, 작품을 향한 호평은 시즌2가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청춘시대1'은 작가가 만든 캐릭터에 생동감과 현실감을 더해 시청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 배우들의 연기, 아기자기한 분위기부터 긴박감 넘치는 상황까지 극에 몰입하게 해 준 이태곤 감독의 연출이 일품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박연선 작가가 주목받은 것은 물론이다. 드라마 종영 후 기자간담회 자리를 마련해 작품 이야기를 더한 것은, 당시 '청춘시대1'과 박 작가에 대한 관심의 크기를 보여준다.
박 작가의 장점은 인간의 다층적인 면을 놓치지 않고 잘 그려낸다는 점이다. 티 한 점 없이 무결하거나, 영영 나쁘기만 한 인간은 없다는 것을 일러주려는 듯, 그는 보통 사람들의 밝고 매끈매끈한 부분부터 투박하고 일그러진 부분까지 세밀하게 담아냈다.
'벨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5명의 하우스메이트들(이하 하메들)은 20대 여성이라는 공통점만 가졌을 뿐 잘난 부분도 허술한 부분도 있고, 일부는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지닌 독립된 개인이었다.
청춘물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로 여겨지는 '연애'를 그리면서도, 하메들은 언제나 주인공이었다. 상대에 끌려다니든, 현실적 한계 때문에 관계 맺기를 보류하든, 가벼운 사이만을 유지하든, 모태솔로이든, 불 같은 첫사랑을 하든, 하메들이 '사랑'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하는지가 드라마의 큰 줄기였다.
더불어 '청춘시대1'은 개별의 캐릭터에게 스토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한 집에 살면서 생긴 하메들의 '관계성' 탐구에도 집중해 호평을 받았다.
◇ 주변화되거나 전형적으로 소비된 하메들
우선, 시청자들을 시즌1으로 끌어당긴 일등공신이었던 '하메들'이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 물론 진명, 예은, 은재는 전작에서 개인의 스토리가 풍성하게 나왔기에, 비중이 줄어들 수는 있다. 문제는 하메들의 빈틈마저 안을 수 있었던 공감도 높은 묘사를 잘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불만이 나왔던 캐릭터는 유은재였다. 시즌1에서 소심하지만 정점에 다다랐을 때 폭발할 때가 있고 자신이 아빠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입체적인 캐릭터였던 은재는 시즌2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로 요약되는 단순한 인물이 된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은재에게 처음 느껴 본 강렬한 '사랑'은 분명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은재는 철저히 첫사랑인 전 남자친구에게 흑역사를 적립하는 캐릭터로 도구화됐다.
은재는 새벽에 자느냐는 문자를 보내고, 예쁜 옷을 입고 갔다가 긴장이 풀린 탓에 갑자기 방귀를 끼는 실수를 하거나, 마지막으로 매달리며 '모텔 가자'고 했다. 자신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장본인이라는 죄책감을 진 전작의 서사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하고 죽는 종열(신현수 분)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하는 모습으로 단번에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조은의 '의외성'이 발휘되는 지점은 대개 러브라인을 이루는 서장훈(김민석 분)과의 관계에서였다. 사귀기 전 탐색 시기에서 두 사람은 특히 '남자가~', '여자가~' 하는 식의 대화를 나누며 성 고정관념이 반영된 대사를 자주 하기도 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가난을 온몸으로 맞서면서, 남들만큼 평범해지고자 애썼던, 강함과 약함을 모두 지니고 있어 더 마음이 갔던 윤진명 캐릭터는 시즌2에서 사실상 거의 두드러지지 못했다.
시즌2에서 기승전결이 가장 확실하고 사연까지 부여됐던 캐릭터로 꼽히는 헤임달(안우연 분)의 희로애락을 그리는 데, 주변인물로 얼굴을 비쳤을 뿐이다. 고난 끝에 입사한 회사를 배경으로 '직장인 윤진명'의 성장기나 박재완(윤박 분)과의 원거리 연애를 그릴 수도 있었지만, 박 작가는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다섯 명 중에서 가장 독특하며 하이텐션을 유지하는 개그 캐릭터이지만, 똑똑하고 야무지며 내심 속 깊은 구석도 있던 송지원의 매력도 시즌2에서 많은 부분이 희석됐다.
농담, 허풍,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것이 어릴 적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것이 나타난 후, 지원은 문제 해결에 나서지만 많은 부분을 학보사 편집장이자 절친한 친구인 성민(손승원 분)에게 의지했다. 극 초반부터 꾸준히 나왔던 지원의 개인 스토리도 후반부에 몰아치느라 마지막까지 매듭을 짓지 못했다.
데이트폭력 피해자였던 예은은 학교폭력을 겪어 자신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호창(이유진 분)과 두 명의 단짝, 하메들 덕에 차차 회복해 나갔다.
그러나 예은은 늘 자신을 옥죄었던 엄마의 잔소리와 간섭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호창을 메이크오버시킨 후 즐거워하는 모습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제일 친한 줄 알았던 한유경(하은설 분)이 지독한 방식으로 예은을 괴롭혔던 일 역시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더해, '청춘시대2'는 종종 극중 캐릭터나 시청자들에게도 무례하고 불친절한 모습을 노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부 캐릭터의 '단명'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각 캐릭터의 특성이 돋보이는 검은 방 인터뷰 등 재미를 더하기 위해 쓰였던 에필로그에서, 하메들의 생몰년도가 등장했다. 그 중 2025년, 2043년 등 30대 초반, 40대 중반에 죽는 캐릭터가 있어 시청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 중 31살에 죽는 것으로 예측됐던 인물은 송지원이었다. 당시 묘비만 나왔을 뿐 하메들의 이름은 없었는데, 지난 6일 13회에서는 별안간 하메 중 한 명의 딸로 보이는 어린 아이와 아이 손을 잡고 가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아이는 여기가 엄마가 살던 집이냐고 묻고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이때 목소리가 시즌2에서 지원과 내내 엮였던 성민이어서 '송지원 단명설'에 더 힘이 실렸다.
많은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캐릭터가 언제 죽는지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며 불만을 표했지만, 최종회에서는 이 부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해프닝으로 무마되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10일) 진행된 배우 박은빈의 인터뷰를 보면 박 작가는 단명하는 인물이 지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박은빈에 따르면 박 작가는 지원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기자가 되어 살면서 불의를 쫓아가다 악의 세력에 의해 죽는다고 했고, 13회 에필로그에 나온 아이 역시 지원의 아이라고 했다.
진명, 지원은 성소수자 여부는 아무 상관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예은은 종교(기독교)를 내세우며 별로라고 하고 은재도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어느 날 은재와 은 둘만 집에 남겨진 날, 은재는 방문을 잠그고 음악을 들으며 잠에 빠지는데 은은 은재가 심하게 아픈 줄 알고 보조키를 찾으며 문을 열려고 한다.
은을 레즈비언으로 오해한 은재는 혼자 한 망상을 바탕으로 멀리 달아난다. 나중에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오해를 풀고 친해지지만, 은재의 호모포비아적인 태도를 "낯선 것은 이상한 것이고 이상한 것은 무서운 것이 되고 무서운 것은 나쁜 것이 된다. 그렇게 낯선 것은 피해야 할 무서운 것이 된다"며 "겁쟁이"로 치환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키 큰 여자-키 작은 남자라는 잘 볼 수 없었던 커플로 사랑받은 조은-서장훈 커플 역시, 비슷한 한계를 보였다. 은에게 과도하게 매달리고 때로 집착적인 모습을 보이는 예지의 진심을 떠 보기 위해 가짜로 연인 연기를 하는 설정을 예로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1회에서는 '청춘시대2'의 시작이 되는 분홍색 편지의 주인공 문효진 사연과 함께 20여 분에 가까운 강도 높은 폭력씬이 나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최종회에서도 문효진의 동거인이 지원, 성민 모두를 공격하는 씬이 나왔고, 강이나의 운전 미숙으로 우연히 산골짜기 펜션에 머물게 된다는 첫 회 역시 흉기를 들고 원래 펜션 주인과 하메들을 위협하려는 씬이 등장한 바 있다.
아직 눈에 익지는 않지만 신선하고 가능성 있는 배우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있다는 점, 산뜻하지만도 우울하지만도 않은 청춘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여성 주인공 다수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청춘시대' 시리즈는 분명히 소중하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 덕분에 자연히 '시즌3' 요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끝'이 예정돼 있는 캐릭터에 시청자가 예전만큼 깊이 몰입할 수 있을까. 필요 이상의 정보를 굳이 밝혀 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