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 추악함"…정세균 의장의 호된 질책 왜?

국회 역대 최대치 7천5백건 법안 쌓였는데 처리율 미비

(좌측부터 국민의당 김동철,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정 의장, 자유한국당 정우택, 바른정당 주호영 / 자료사진 윤창원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국회 본연의 임무를 잊었느냐"며 작심하고 쓴소리를 한 것으로 알려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 상임위에서 법안이 제대로 심사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실제로 20대 국회에는 역대 최대인 7천건 이상의 법안이 쌓여있는데 처리 실적은 미미해 최악의 성적표를 내고 있다.

▷ "국회 본연 임무 망각했다" 쌓이는 법안에 정세균 의장의 작심 쓴소리

참석자들에 따르면 정 의장은 10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 비공개 회동에서 강경한 어조로 대표들을 질타했다.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계류된 법안이 역대 최대인 7천여건인 점을 상기하면서 따끔하게 호통을 친 것이다. 평소 온화한 성품의 정 의장이 작정한듯 질책의 발언을 이어가자 참석자들도 긴장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정 의장은 지난 9월 국회에서 각 상임위의 법안 심사 소위가 제대로 열리지 않은 점을 상기하며 "국회 본연의 입무는 법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것이다. 이를 방기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여야 공통의 각성을 촉구했다.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들 중 485건이 법사위에서 타위법으로 발목이 묶여 있는 점에 대해서도 "법을 잡아두는 추악한 모습"이라는 고강도 표현으로 정면 비판했다.

한 참석자는 "법안이 산처럼 쌓여가는 현실에 국회의장이 작정하고 문제를 지적한 것 같았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모두 경청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 7천5백여건 계류중, 文정권 들어 처리된 법안 5백건에 불과

'직무유기', '추악한 모습'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국회의장이 쓴소리를 한 것은 20대 국회 들어 더욱 심해진 법안 적체 현상 때문이다.

국회 의안과 통계에 따르면 현재 7569건의 법안이 잠자고 있다. 국회 개원 이래 역대 최대치로 추정된다.

특히 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각 상임위에서 심사가 더디게 진행돼 본회의 처리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법을 쉽게 만들지만 통과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회 의안과 관계자는 "19대 국회에 비해서 20대 국회에서 같은 기간에 법안 발의 건수가 2천건 정도 늘었다"며 "발의는 크게 늘었지만 통과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대선 이후 현재까지 약 6개월간 법안 처리 건수는 546건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권 말인 20대 국회 개원부터 대선 이전까지 1만1516건의 법안이 통과된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적은 수치이다.

이같은 법안 적체 현상은 기본적으로 각 상임위에서 제대로 심사가 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상임위에서는 소위를 열지 않다가 본회의를 앞두고 하루이틀에 걸쳐 날림으로 심사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 수백건에 대해 법사위에서 제동을 걸어 잡아두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 의장은 "법사위가 마치 상원같다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일부 법안들을 붙잡아두는 법사위의 행태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법안 발의에 비해 현저히 낮은 처리율로 법안이 산처럼 쌓여가면서 국회 기능이 마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체가 심해지면서 여야를 떠나 시급히 처리해야할 민생 법안들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각 상임위에서 법안을 심사하는 기본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 오로지 정치 투쟁에만 관심이 있고, 쟁점 법안이 아닌 일반 법안들의 심사는 소원하게 하고 있다"면서 "법안 심사 기능이 정지된 지금의 국회 모습은 국민에게 어떤 말로도 해명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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