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운 교수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지식인의 글쓰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저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긍심을 갖고 산 적이 별로 없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한국역사와 문화를 자주 생각해 보았지만, 외국인들에게 딱히 자랑할 만한 게 별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저로 하여금 한국인, 한국문화에 대해 무한 긍지를 가져다주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한글입니다."
그는 "인류역사상, 모든 사람들이 알기 쉽게 자신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인위적으로 만든 예가 한글 외에 또 어디에 있습니까. 그 목적성과 그 과학적 수준을 어느 문자 체계가 따라올 수 있습니까"라며 "그런 이유로 저는 오늘이 5천 년 민족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국경일로 대대손손 경축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입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한글날, 이 특별한 날을 맞이해 지식인의 글쓰기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요즘 책 몇 권을 틈나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 중엔 신간 철학서가 있습니다. 신문에서 보고 즉시 주문한 것이지요. 그런데 몇 쪽을 읽다가 책장을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저자의 메시지가 독특한 것 같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보고 싶었지만, 제 능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번역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곳곳에 유명 철학자의 말이 간단히 인용되는데, 저는 그 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라도, 문자만 한글이지, 내용은 외국어 원서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 "아무리 어려운 내용의 책 쓰고 번역하더라도 독자 입장 생각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명색이 대학교수입니다. 저도 박사입니다. 해외에서 공부도 했습니다. 책도 몇 권이나 쓴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이런 책을 읽다가 중간에서 집어던진다면, 그게 제 잘못, 제 무능에서 기인한 건 아니잖습니까? 저는 분명히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저자의, 번역가의 잘못이다.'"
그는 "요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저는 이 위기를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지식인, 그중에서도 인문학자나 인문서 번역가들은 알기 쉬운 글을 쓰고, 알기 쉽게 번역해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그래야만 글을 읽는 저변이 넓혀집니다. 왜 글을 그렇게 어렵게 써야 합니까. 왜 이해도 되지 않게 번역을 하는 겁니까. 그러면서도 한국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좀, 반성해야 합니다. 이 한글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의 책을 쓰고 번역하더라도 독자 입장과 수준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과연 이 글이 독자에게 읽혀질 수 있는가, 이것을 항시 생각하고 글을 쓰고 번역하자는 것"이라며 "대중이 읽길 바란다면, 그러한 태도는 글을 쓰고 번역하는 이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