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수난 경력 위주로요.
2012년에 예능 PD로 입사를 해서요. 입사하던 날부터 170일 파업이 시작됐고요. 파업이 끝나고 예능국 생활을 조금 하다가, 세월호 참사 때 MBC 보도에 대한 여러 가지 비난을 안타깝게 여기고 (모 커뮤니티에) 사과와 함께 어떻게 해서 이런 엉망진창 보도가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을 드렸다 6개월 정직을 받았고요. 그 뒤 회사가 저를 예능국이 아닌 수원에 있는 경인 지사 영업부서로 보냈는데, 그곳이 너무 심심해서 예능국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다루는 <예능국 이야기>라는 만화를, 웹툰이라고 하기에도 좀 민망한데, 하여튼 그걸 제 개인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그게 회사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고요. 그 후 약 1년 반 만에 부당해고라는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고 작년 5월에 복직해서 다시 예능국 생활을 하다 지금은 2017년 파업에 돌입한, 예능 PD 권성민이라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뽑히신 거죠? (웃음) 2012년은 김재철 사장 때 아닌가요.
입사 당시 최종면접 전날 제가 엄청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저는 표정을 잘 못 숨기는 사람인데 내일 최종 면접에 가서 김재철 사장이 싫은 티가 나면 어떡하나, 하고. 그런데 면접날 사장이 'MBC라는 회사 되게 좋은 회사야. 권성민 씨 같은 사람이 내가 싫으면 나가라고 싸워도 되는 회사라고', 라며 저를 콕 집어서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웃음) 그런데도 어떻게 뽑힌 거 보면, 실제로 채용에 사장 입김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MBC 채용이 언론사 지망생들 사이에서도 되게 유명했거든요. 학벌 블라인드 테스트하는 곳이고, 나이 제한도 없고, 토익 점수가 없어도 지원할 수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회사라고 할 정도로. 그것부터 망가트렸다는 게 좀 슬프긴 하죠. 2013년을 마지막으로 그 뒤로는 다 경력직, 계약직만 뽑고, 어떻게 채용이 이뤄지고 있는지도 현직 직원들 사이로 공유가 되지 않기도 하고요.
예능국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뭉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목적인 거죠. 신입 공채를 뽑으면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지고 대부분 가입을 하니까. 사측에서는 어쨌든 노조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신입 공채를 중단시켰던 거고요. 새로 누가 일하러 들어왔는데 누가 새로 들어온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고. 얘는 언제 뽑혔는지도 모르겠고, 누가 선배고 후밴지 하는 게 애매해지면서 예전 같은 끈끈함이 없어진 게 커요.
아나운서국이나 시사교양, 보도 본부같이 정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서 회사가 적극적으로 그 힘을 빼려 했던 조직들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갈등을 조장하는 거죠. 최근 MBC의 많은 채용은 일할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들한테 일을 시키지 않기 위해 진행된 거예요. 사실상 누군가를 내쫓기 위한 채용이었던 거죠. 그 채용에 지원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정의 골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 들어온 분 중 몇몇 이야기를 들어요. 기자가 되는 게, 아나운서가 되는 게 너무 간절한 꿈이었고, 정말로 취업난 때문에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기로가 없었고, 이게 어떤 채용이고 잘못된 채용인지도 알고 있는데 지원할 수밖에 없어 자괴감이 들었다는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 간절함을 이용해먹은 회사가 정말 악랄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파업은 그 뒤에 경력직, 계약직으로 채용되신 분들도 노조에 가입하고 참여했어요. 사실 노조에 가입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직접적으로 협박을 받은 분들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제일 쉬운 방법이 연봉제죠. 경력직은 (호봉제를 적용받는 기존 직원과 달리) 매년 연봉을 재협상해요. 노동조합에 가입을 한다든지, 상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든지 하면 연봉을 깎는다는 식으로 위협을 주는 사례들이 있었는데, 그런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 노조에 가입하시고 이번 파업에 많이들 동참하셔서 저희도 그동안 되게 후배가 없었는데 이번에 노동조합에 가입해준 예능 PD들, 후배들과 같이 투쟁하면서 돈독함을 다시 쌓고 있습니다.
계약 형태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파업 이후에도 극복하기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사실 비정규직 같은 경우는 파업 전에도 많았을 것 같고요.
방송 현장의 업무 특성상 이전부터 비정규직이 많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업무 특성상 비정규직이 많았던 데 더해 지난 5년간 이 채용 형태를 가지고 악행을 많이 저질렀거든요. 예를 들어 이번에 저희가 새로 뽑은 경력직 예능PD 후배 같은 경우에는 열 몇 명 가까이를 2년 계약직으로 먼저 뽑았어요. 그러다 일부만 정규직 전환을 시켜준다는 거죠. 그 많은 동기가 친하게 지내다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몇은 정규직이 되고, 몇은 그대로 계약이 끝나면서 서먹해지고. 굉장히 잔인한 거죠. 예전 MBC에서는 적어도 이런 건 없었거든요. 채용을 가지고 사람을 절박하게 만들면서 충성을 요구하는 시스템은 (파업이 끝난다면) 가장 먼저 개선이 될 것 같아요.
추가적으로는 그 생각을 많이 해요. 몇 주 전에 보도국 AD 다섯 분이 '엉망진창인 뉴스를 만드는 데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서 제작거부를 하고 싶은데, 정규직도 아니고 조합원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제작거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파업이 아니라 퇴사를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라며 퇴사를 하고 파업을 지지하셨어요. 또 저희가 파업 일주일 남기고 어수선한 분위기일 때 가까이 지내는 프리랜서 PD들을 만났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여기 남아서 회사 좋은 일 하는 거, 우리도 별로 기분 안좋다고.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서운하다는 듯이 얘기를 하고 가셨거든요. 그게 여러가지 한계죠. 사실은 파업하고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노동조합원에게 주어진 권린데, 그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회사 안에 굉장히 많이 있는 거고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조합의 많은 구성원들이 이번 파업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사각지대에 있었던 분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고 듣게 되고 마음에 담는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차적인 목표는 김장겸을 내쫓고 공정방송을 정상화하는 거지만, 그 과정에서 MBC가 무너져 있던 부분들을 회복시켜가는 과정에서, 노동의 권리에서 소외된 분들을 같이 함께 만들어가는 부분들에 대한 고민을 곳곳에서 하고 있고요. 쉬운 얘기로, 그때 퇴사 선언하신 보도국AD 다섯 분같은 경우에는 이분들이 나중에 정규직으로 다시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면 MBC 정상화가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시는 분도 많이 있어요.
조금 바보 같은 질문 하나 할게요. 파업은 언제 끝나요?
명시적으로는 김장겸 사장이 나갈 때까지고요. 이게 되게 단순한 얘기 같은데 공영방송 지상파 사장이 퇴임을 한다는 것, 혹은 물러난다는 것이 여러 가지 제반 변수들이 움직여줘야 가능한 일이더라고요. (김장겸 사장은) 누구보다도 가장 강력하게 버티고 계시고, 이렇게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나가려면 방문진의 구성이 정리가 된다든지 해야 해요. 사실 김장겸 사장이 얼마나 부당 노동행위를 많이 해왔고 공정 방송을 방해해왔는지에 대해서는 공개도 많이 했고, 증거가 너무 많은 상태라 나가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가실 수밖에 없어요. 언제 나가느냐의 문젠데.
저희가 회사를 '작살'내기 위해 파업하는 건 아니잖아요. 더 좋은 회사,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싸우는 거고, 그래서 사실은 파업에 내려오더라도 회사가 최소한의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최소 인력들은 보통 남아 있거든요. 2012년 파업 때만 해도 최소한의 필요 인원은 노동조합에 가입된 조합원이어도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암묵적으로 상호 간 양해하는 그런 구조였는데요. 2017년 이번 파업은 이 회사를 돌이켜놓지 못하면 MBC는 정말로 끝, 이라는 위기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전례없이 모든 인원이 다 파업에 참여했어요. 구내식당 주방장님도 다 오셨고 최소 송출인력도 다 기술국에서 내려와서 파업에 참여하셨기 때문에, 지금 뉴스를 생방송으로 할 수 있는 여력이 안돼서 녹화뉴스도 나가고 있죠. 파업이 조금씩만 길어져도 MBC라는 브랜드가, 이미 많이 망가졌지만 굉장히 타격이 큰 상황입니다. 사장님께서 빨리 나가주셔야 저희가 얼른 올라가서 망가진 MBC를 재건하고 회복시킬 텐데, 어차피 나가실 거 빨리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MBC가 파업해도 불편함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구성원으로서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파업을 하는 거죠, 사실은. 파업해서 불편한 거 하나도 없다면 그만큼 MBC가 제 역할을 못 했고 그만큼 사람들이 MBC를 봐주지 않는다는 얘기니까요.
다만 또 하나의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콘텐츠도, 뉴스 채널도 너무 많아져서 MBC 하나 콘텐츠 공급이 없어져도 티가 덜 나는 시대가 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MBC가 빨리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그걸 지금까지 못했어요. 이놈의 경영진은 오로지 정권에 충성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새로운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MBC 콘텐츠를 고민해야 되는 시점이 꽤 많이 지났는데, 이 고민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 이어졌던 거고요. 지금이라도 고민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사실은 김장겸 사장을 내보낸 이후에 해내야 하는 중요한 과제겠죠.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 중 가장 별로인 순서대로 순위를 매겨주세요.
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안광한 씨가 제일 싫고요. 저를 잘랐거든요. (웃음) 굉장히 쪼잔한 사장님이셨어요.
김장겸 사장님은 지금 나가셔야 하기 때문에 두 번째로 싫은 거로 하고요. 요즘 김재철 사장님은 좀 측은해요. 저기 어디 가서 강의하고 있고, 참. 네, 뭐, 그래요. 사람이 잘 살아야 해요.
김재철 사장은 지난 파업이나 <공범자들> 같은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인데, 김장겸 현 사장에 대해선 잘 몰라요. 국민 입장에서는 그냥 '갑툭튀'였거든요. 내부적으로 김장겸 사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페이스북 페이지 '마봉춘 세탁소' 영상 중 방송장악 메이커라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패러디한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보시면 김장겸의 연대기가 나오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보도국 기자들 사이에서 나오던 얘기가 있어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이게 되게 전 지구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이었잖아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편집회의 시간에 당시 국제부장이었던 김장겸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거예요. "오바마 그런 놈 뭐하러 뉴스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주나? 노무현이랑 똑같은 놈 아냐 그거, 인터넷으로 사람 선동하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대해서 당시 국제부장이었던 김장겸 기자가 가지고 있는 인식은 '인터넷에서 사람을 선동하는 노무현과 똑같은 놈'. 그렇기 때문에 뉴스를 많이 보도해줄 필요가 없다는 거죠. 편집회의에서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다시 준비해서 타사랑 비슷한 수준으로 많은 보도가 나갔어요. 국제부장은 힘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체제에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겠죠. 계속 예쁨을 받으면서 국제부장에서 보도국장이 되고 보도본부장이 되고 사장까지 일사천리로.
김재철 사장을 뒤이어 현 체제를 공고히 만들어온 안광한 사장은 사실 편성 PD(비제작) 출신이에요. 보도국에서 뉴스를 얼마큼 직접적으로 간섭해야 하는지까지는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었고요. 안광한 체제 하에서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실제로 디테일하게 뉴스에 간섭했던 인물이 바로 김장겸 사장이었던 거죠.
그러면 안광한 사장 당시 세월호라든가, 국민이 보도 영역에서 MBC에 실망했던 그런 부분들도 다 김장겸 사장의..?
네. 현장에서 직접 개입했던 사람은 다 김장겸 사장이, 뉴스는 총괄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런 뉴스가 나갈 때 너희는 뭘 하고 있었느냐. 얘기하면, 내쫓겼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 내쫓기고. 반발하면 바로 마이크를 빼앗기고 이게 문제다, 라고 얘기하는 순간 바로 책상이 빠지고. 직접적으로 방송에 참여를 안 시키되, 정말로 지난 몇 년 동안 온갖 부서들을 다 만들었어요. 없던 부서들을 새로 만들었어요. 직원 중에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로 보내는 거예요. 교도소죠. 수용소, 감시당하는.
가끔 어디 가서 파업 관련된 강의를 하면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뭐냐, 무엇을 위해서 파업을 하고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거냐.
정말 믿을 수 없겠지만 공정방송을 위해서 파업을 하는 거거든요. 정말 제대로 된 뉴스를 하기 위해서.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제대로 된 뉴스를 나가게 하고 싶고 제대로 된 방송을 나가게 하고 싶어서. 그래서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해드리고 싶고 권력을 감시하고 싶고, 그런 방송을 만들고 싶어서, 지난 몇 년 동안 회사에서 온갖 회유와 협박과 노조파괴 공작을 벌였는데도 불구하고 노조를 탈퇴하지 않고 대오를 유지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거예요. MBC 뉴스의 시청률이 아무리 안 나온다고 해도, 사실은 5%만 나와도 대한민국 국민을 5000만이라고 한다면 250만은 보는 거거든요. 공영방송을, 지상파 전파를 쓰고 있는 공영방송을 저희가 포기하고 나온다는 건 이걸 이용하고 활용하고 장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넘겨주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잖아요. 공영방송을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시청자는 MBC의 정상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당장 김장겸 사장만 나가면 MBC KBS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느냐, 온전한 국민의 소유가 되느냐. 사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거잖아요. 정치권에 의해서 사장이 선임되고 구조가 왜곡되고, 그래서 사실은 그 이후를 그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인가 사장 선출 구도를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이 굉장히 많이 이뤄지고 있거든요. 지금 투병하고 있는 해직 기자 이용마 선배 같은 경우엔 시민 참여제를 통해 공영방송 사장을 뽑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자고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시민 참여제가 되려면 시민들이 공영방송, 공영방송의 사장으로 올 사람에 대한 어떤 관심이 있어야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인 거잖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했다'라든지, '김장겸 사장이 이렇게 나쁜 사람이다'라든지, 이런 이슈만큼 직관적이지 않아서, 우리하고 직접 상관이 없어 보이는 방송의 소유구조에 대한 얘기는 와닿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MBC는 국민의 것이고 여러분들의 소유니까, 조금 재미없더라도 주인으로서 계속해서 관심 가지고 봐주시면, 더 장기적으로는 공영방송이 온전히 국민의 방송이 되는 데 제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