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은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넥센과 홈 경기에 앞서 은퇴 회견에 나섰다. 1995년 데뷔 이후 23년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였다.
19살의 나이에 데뷔한 이승엽은 올해까지 KBO 리그 15시즌 동안 이날 경기를 빼고 1905경기 통산 타율 3할2리 2154안타 465홈런 1495타점을 기록했다. 지바 롯데와 요미우리 등 일본에서 8시즌을 빼고도 통산 최다 홈런, 타점 등 신기록들을 쏟아냈다.
이승엽은 은퇴 소감으로 "사실 오늘 기분이 별로"라면서 "마지막 경기니까 야구장에 가기 싫다는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다. 특히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고, 너무나 많은 것을 준 곳이 야구장인데 이제 야구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많이 아쉽다"면서 "어제까지 전혀 못 느꼈는데 뒤숭숭하고 씁쓸하다"는 표현은 얼마나 이승엽이 야구를 사랑하는지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시 태어나면 야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애증이 섞였다. "스타가 되면 좋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이승엽은 "야구는 제 인생이고 보물"이라면서 "평생 죽을 때까지 야구인으로 삼성과 대한민국 야구를 위해서 살겠다. 야구는 말 그래도 내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승엽과 일문일답.
오늘은 전혀 못 했다. 다녀올게, 이따가 보자 정도였다. 어제 아내가 아쉽고 서운하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당연히 서운하다고 했다. 당연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오늘 은퇴 경기 목표는.▲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하루를 부상 없이 보내고 싶다.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안타를 떠나서 23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경기다. 팬들 가슴 속에 이승엽이라는 선수가 있었구나 이것을 전달해주고 싶다.
-전성기 시절 타순인 3번으로 나가는데.▲
아주 감사한다. 원래 3번인 구자욱이 5번으로 갔다. 오늘 하루 위해 바꿔준 것 감사하다. 내가 좋았을 때가 삼성 3번 1루수였는데 김한수 감독님께 감사한다.
-오늘 은퇴 경기인데 눈물을 흘릴 것인가.▲
은퇴 투어 세리머니 때 가슴이 찡한 적 있었다. 잘 참았다. 울지 안 울지는 그 상황이 돼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일본 팬들이 응원해주고 있는데.▲
일본에서 8년 생활했는데 열성적 팬들을 많이 봤다. 좋을 때든 안 좋을 때든 2군에 있을 때도 원정까지 오셨다. 그 분이 다 오시지 못하지만 메시지 전할 수 있는 자리여서 감사한다. 8년 동안 팬들께 만족 못 시켜드렸지만 감사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열심히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못 미쳤다. 2군에 머문 시간도 많았다. 한국에서만큼의 폭발력은 보이지 못 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많이 배운 곳이라 생각한다. 42살까지 할 수 있던 것도 일본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나태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성공이 아니라도 공부를 하고 왔다.
-향후 계획은.▲
고민 중이다. 주위 분들과 상의를 하고 있다.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아 공부도 생각하고 있다. 해설도 생각 중이다. 다른 부분도 생각하고 있다. 공부 아니면 해설이다.
-가장 생각이 나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건강한 신체, 정신을 강조하신 아버지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결혼해서는 아내가 야구 선수로 16년 동안 큰 부상 없이 좋은 마무리할 수 있게 많이 도와줬다. 가족에게 감사한다. 경상도 사람이라 직접적으로 말할 기회는 없겠지만만 진심으로 감사하다 말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지도자는.▲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게 해준 박승호 코치, 형처럼 도와준 박흥식 코치, 홈런 타자로 키워준 백인천 감독, 지바 롯데에서 방황할 때 정신 무장을 해준 김성근 감독, 일본에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류중일 감독, 김한수 타격코치 등 모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분들이시다.
국가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극적인 장면에서 홈런과 안타를 친 것은 한국만의 끈끈한 선후배 관계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굉장히 강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할까.▲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스타가 되면 너무 행복하다. 그 누구보다 가진 것이 많다. 그러나 스타가 될 때까지 과정은 너무 힘들다. 훈련도 노력도 많이 해야 한다. 다 참고 부상도 이겨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다.
-수많은 홈런 중에 최고는 무엇인가.▲
팀 기록으로는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동점 홈런으로 첫 우승을 한 기억이다. 그러나 56호 홈런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1999년에 54호로 끝났는데 대단한 기록이지만 아쉬운 해였다. 2003년에는 뛰어난 성적을 올리자는 목표를 세웠다. 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해였고, 마지막 경기인 10월2일에 56호를 쳤다. 14년 전 55개에서 끝났다면 평생 기회가 안 왔을 것이다. 가장 값진 기록인 것이다.
-절제된 생활로도 모범을 보였는데 최근 야구 선수들의 일탈 행동이 나오고 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프로야구 전체 선수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1명이 아니라 주위 모든 선후배들이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어린이들이 많이 보고 배운다. 내가 팬들이 요구하는 100%를 할 수는 없다. 나머지는 후배들이 팬들과 가까이 하면서 채워야 한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프로야구 야구 선수"라고 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나를 홈런 잘 치는 선수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 모범이 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국가대표로서 기억에 남는 경기나 홈런은.▲
23년 동안 프로야구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순간이 있다. 국가대표에서는 매 경기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시드니올림픽 일본과 3, 4위 결정전에서도 삼진 3개 당하고 4번째 안타를 쳤을 때 희열이 컸다. 못 쳐서 팀이 졌다면 내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베이징올림픽 때도 일본과 4강전에서 계속 범타로 물러났다.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위해서, 또 그렇게 열심히 해주는 후배들을 위해서 좋은 경기를 해야 했다. 더군다나 나는 외국에서 뛰고 있어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후배들을 볼 낯이 없었다. 그런데 결승 홈런을 쳐서 그날은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조명은 내가 다 받았지만 모든 고생은 후배들이 다 했다. 베이징올림픽 멤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나.▲
너무 가만히 집에 있으면 많이 지루할 것 같다. 매일 집에 있으면 좀도 쑤시고 야구 말고는 골프를 좀 좋아한다. 아내가 보내줄지 모르겠지만 실컷 골프를 하면서 야구 쪽에선 쉬면서 다른 모습을 찾고 싶다. 안정이 되면 무엇이든 하고 싶을 것이다.
집에서 5m 거리에서 물렁공을 던져보라고 했는데 곧잘 던지더라. 경기장에서 연습은 안 할 생각이다. 올스타전 시구를 아들이 했는데 마무리를 아내가 한다. 구단에서 얘기해서 당연히 흔쾌히 찬성을 했다. 내가 (외국으로 가서) 없었을 때는 아버지가 하셨더라. 공이 뒤로 빠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받도록 하겠다.
-이승엽에게 야구란?▲
내 인생이고 보물이다. 이걸 빼면 내 이름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꿈이 야구 선수였고, 야구에서 한국 최고가 됐다. 얻은 게 너무 많다. 평생 죽을 때까지 야구인으로 살 생각이다. 삼성과 대한민국 야구를 위해서 가겠다. 야구는 정말 내 사랑입니다.
-은퇴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스스로 물러날 시점이 됐다. 구단에서 먼저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 돌아와서 우승은 했지만 2년 동안 9위 했다. 고참으로서 책임도 느끼고 뭔가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다. 은퇴는 2년 전부터 계획됐지만 좋은 성적을 내면 연장하는 것을 조금은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떠나야 변화도 오고 2군 선수에게 기회도 간다. 좋은 노력에 대한 기회가 마련될 것이다. 내가 가는 만큼 후배들은 이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군은 어려운 직업이다.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하고픈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