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공동체 오로빌을 아시나요?

[인터뷰] 50년 맞은 ‘인류 화합’의 공동체 오로빌 출신 원태백 씨

- 1968년 설립, 인류화합과 세계평화에 공감한 사람들의 공동체
- 53개국 2700여 명..한국인도 30여 명
- 주 36시간 노동하는 ‘빈부 없는 유토피아’
- 필요에 따라 교환하는 ‘기프트 이코노미’
-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뜨겁고 습한 기후
- 술집도 오락실도 없지만 자유와 다양성 존중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7년 10월 2일 (월)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원태백


◇ 정관용> 약 50년 전에 인도의 척박한 땅에 ‘오로빌(Auroville)’이라고 하는 이름의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다국적 생태공동체,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덧 53개 나라에서 온 2700명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경찰도 없고 법도 없답니다. 그리고 기본소득 비슷하게 돈을 받는다고 그러네요.

어떤 마을일지 이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쯤까지 10여 년을 산 한국 청년이 있습니다. 원태백 씨 오늘 초대석에 모셔서 오로빌이라고 하는 공동체에 대해서 좀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원태백 씨 어서 오십시오.

◆ 원태백> 안녕하세요.

◇ 정관용> 지금 몇 살이세요?

◆ 원태백> 지금 스물아홉입니다.

◇ 정관용> 스물아홉.

◆ 원태백> 네.

◇ 정관용>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여기 살았어요?

◆ 원태백> 열 살 때부터 열일곱, 열여덟까지 거주를 했고요. 그 이후에도 저희 부모님이 거기 계속 사셔서 종종 방문을 했습니다.

◇ 정관용> 열 살 때면 본인의 뜻은 아닐 거고 부모님을 따라서 갔겠군요.

◆ 원태백> 네, 그렇죠. 저희 부모님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유학 생활을 인도로 가셨기 때문에 인도를 자주 왔다 갔다 했었고요. 저와 조금 대안적인 그런 공동체 삶을 원하셔서 오로빌을 택하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조금 교과서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몇 년도에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된 건지, 오로빌이라고 하는 곳은.

◆ 원태백> 오로빌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오로빌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 있는 국제공동체고요. 196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 68혁명이 일어난 시기라서 인류 화합과 세계평화 이런 것들이 오로빌의 가치이기 때문에 이런 거에 공감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었습니다.

◇ 정관용> 하나의 국가는 아닌 거죠?

◆ 원태백> 국가라기보다는 이런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실험을 하고 시도를 하는 그런 공동체이고 마을입니다.

◇ 정관용> 인도 정부가 인정했습니까? 하나의 독자적인 자치주 이런 식으로?

◆ 원태백> 자치주라기보다는 인도 정부는 오로빌 설립 때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해 주셨는데 1988년에 인도 국회에서 오로빌재단법이 통과되면서 오로빌은 특별자치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로빌리언들은 자원봉사자들은 볼런티어 비자를 받아 거주하고 있어요.

◇ 정관용> 지금 몇 개 나라에서 몇 사람? 아까 53개 국, 2700명?

◆ 원태백> 네, 2700명입니다. 그중에서 한 700명이 아이들이라서 되게 젊은 그런 마을입니다.

◇ 정관용> 53개 나라.

◆ 원태백> 그렇습니다.

◇ 정관용> 한국 사람이 또 있어요?

◆ 원태백> 네. 제가 처음 갔을 때는 별로 없었어요. 이제 아이들도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저밖에 없었고요. 시간이 좀 지나니까 많이 들어오셔서 지금은 한 서른 명 정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인도 사람이 제일 많습니까?

◆ 원태백> 인도 분들이 인구 중에서 제일 많이 차지하고 있고요. 그 이외에 프랑스 분들, 독일 분들, 유럽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러시아, 남미, 동북아시아 분들이 많이 있고요.

◇ 정관용> 정말 다양하겠군요.

◆ 원태백> 엄청 다양합니다.

◇ 정관용> 제가 아까 처음 잠깐 소개하면서 경찰도 없고 법도 없다고 그랬는데 정말 다 없어요?

◆ 원태백> 네, 경찰이라기보다는 시큐리티라고 해서 마을 청년들 그리고 사람들이 자원으로 이제 봉사를 하는 것처럼 그 주위를 돌고 하는 것이 있고요.

◇ 정관용> 자원봉사?

◆ 원태백> 자원봉사처럼 지원을 해서 밤이나 야간 경비를 도는 시스템이 있고요. 그 외에도 큰 문제가 생기면 외부에 있는 경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 정관용> 범죄가 없어요?

◆ 원태백> 네. 큰 범죄라기보다는. 마을 사람들 간에 갈등은 없고요. 아무래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분들이 좀도둑이나 이런 것들이 있기는 한데 이런 것들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고요. 있다 하더라도 외부에 폰티체리에 있는 경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 정관용> 오로빌 옆에 있는 마을, 인도 마을?

◆ 원태백>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거의 범죄가 없는.

◆ 원태백> 강력범죄는 없고요. 가끔씩 도둑이나 그런 추행 사건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게 주로 외부인들이?

◆ 원태백> 네, 외부인들이 들어와서.

◇ 정관용> 그러니까 청년들이 자원봉사로 세이프티 활동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좀 경계하기 위한?

◆ 원태백>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외부인들이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어요?

◆ 원태백> 네, 전혀 막혀 있는 마을이 아니고요.

◇ 정관용> 구경 삼아 온 분들 중에 조금 못된 분들이 있는 거군요.

◆ 원태백> 그렇죠. 매년 수천 명의 분들이 들락날락하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법도 없어요? 무슨 뭐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 원태백> 리더 같은 분들도 없고.

◇ 정관용> 없어요?

◆ 원태백> 네. 창립하신 그런 분들이 있기는 한데 지금 상태에서는 주민들이 모든 결정에 참여하고 있고.

◇ 정관용> 직접 민주주의로?

원태백 씨(사진=시사자키)

◆ 원태백> 주민위원회 같은 것들이 있고 상임위원회, 위원회들이 많이 있어서 그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주민위원회면 전체 주민 가운데 아마 투표 같은 것도 해서 뽑습니까?

◆ 원태백> 투표로 많이 하고 있고 요즘에 또 온라인상 테크놀로지가 있으니까 그런 것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인터넷으로 많이 하고.

◆ 원태백> 그런 것도 이제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실험의 장소이기 때문에.

◇ 정관용> 모든 실험을 다 해 보는군요.

◆ 원태백> 네, 네.

◇ 정관용> 병원과 학교는 몇 개 정도 있습니까?

◆ 원태백> 학교는 지금 대안학교가 열세 개 정도 운영되고 있고요.

◇ 정관용> 열세 개? 2700명인데 열세 개?

◆ 원태백> 네. 그래서 되게 다양한.

◇ 정관용> 아이들이 그중에 700명이라고 그랬잖아요.

◆ 원태백> 그렇습니다.

◇ 정관용> 다양한 실험을 하는군요, 학교마다.

◆ 원태백> 그중에서는 아무래도 조금 공부 위주의 그런 커리큘럼이 있는 그런 학교들도 있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대화를 하면서 원하는 수업들을 조율해나가는 그런 학교들도 있고요. 아니면 여행이나 그런 것을 하면서 놀이로 교육을 하는 학교도 있고 그렇습니다.

◇ 정관용> 대단하네요. 원태백 군은 그 가운데 어떤 학교에 다녔어요?

◆ 원태백> 저 같은 경우에는 약간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는 그런 학교였고요.

◇ 정관용> 학력 위주가 아니고요.

◆ 원태백> 학력도 많이 보기는 하는데 그 외에도 철학, 예술 이런 것도 많이 배우고요. 타밀어라고 그 인도어 그리고 프랑스어 이런 것도 많이 배우고요. 그 외에 저한테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은 Awareness through the Body라는 수업인데요.

◇ 정관용> 그게 뭐죠?

◆ 원태백> 말 그대로 몸을 통해서 세상을 감지하는 것을 배우는 그런 학습 프로그램입니다.

◇ 정관용> 조금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 원태백> 숨 쉬는 방법, 노는 방법 이런 것들을 요가나 명상을 통해서 배우기도 하고요. 장애물 같은 것을 넘고 그런 것을 놀이처럼 많이 배우는 프로그램인데 저희가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한국도 그렇고 외국에서도 그렇고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면서 아이들처럼 노는 방법을 잊어먹는 게 되게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원태백> 그런데 이런 수업을 통해서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너무 스트레스 받고 나아가기 힘들 때 꺼내 쓸 수 있는 그런 도구를 선물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요가, 명상 거기다 놀이까지 포함시켜서 그냥 단순히 놀이가 아니라 생각하며 노는?

◆ 원태백> 그렇습니다. 제가 봤을 때 흔히 말하는 선진국들에서도 요즘에 놀이문화를 교육에 많이 적용하려고 하는데 오로빌은 아주 예전부터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거죠. 이런 면에서는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맨 처음에 딱 가서 학교에 가니까 어땠어요, 풍경이?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한 반에 모여 있었겠군요.

◆ 원태백> 네, 한마디로 자유였습니다.

◇ 정관용> 그냥 자유?

◆ 원태백> 네. 사람들이 자기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고요. 가니까 아무래도 다양한 억양이 쓰이고 있었어요. 프랑스 억양도 섞여 있고 인도 억양도 섞여 있고.

◇ 정관용> 거기서 교육할 때는 어떤 언어로 해요?

◆ 원태백> 보통 영어로 합니다. 영어로 하고. 아무래도 인도에 있으니까 타밀어, 인도 타밀어 교육도 하고 프랑스어도 두 번째로 많이 쓰이고 그렇습니다.

◇ 정관용> 여러 언어를 가지고 하는군요, 그것도.

◆ 원태백>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면 언어로 인해 오는 오해 같은 것도 많이 있고 그렇습니다. 한 번은 축구를 하는데 어떤 친구가 제 앞에서 ‘감사 감사’ 하는 거예요.

◇ 정관용> 한국말로?

◆ 원태백> 그래서 제가 어린 나이에 이 아이는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으며 왜 자꾸 나한테 감사하다고 하는 거지? 그랬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게 프랑스어로 ‘깜싸’라는 게 ‘저렇게’라는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아이 딴에는 가르쳐주려고 했던 건데 저 혼자 이상한 상상을 했던 거죠.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언어 때문에 오해도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아까 학교가 13개 있다고 들었고 병원은 몇 개쯤 있어요?

◆ 원태백> 병원은 아주 큰 게 하나 있고요. 그 외에 약간 좀 더 실험적인 그런 것들을 도입한 그런 병원이 1개 더 있고요.

◇ 정관용> 한방과 서양 의학을 결합한?

◆ 원태백> 그런 것들이 많이 있고.

◇ 정관용>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의 결합?

◆ 원태백> 네, 그렇습니다. 동양 의학도 그렇고 인도 자체의.

◇ 정관용> 인도 전통 의술.

◆ 원태백>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물론 수술까지 해야 하는 아주 큰 병이라든지 그러면 또 다른 인도 내의 다른 곳으로 가겠죠.

◆ 원태백> 그 외에 있는 병원들에 요청을 합니다.

◇ 정관용> 그리고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삽니까?

◆ 원태백> 아주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요.

◇ 정관용>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 원태백> 저희 부모님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예술가이시긴 하지만 아무래도 노동이나 일을 해야 되니까.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일을 해야 되니까. 정원 일도 하셨고.

◇ 정관용> 정원 다듬는?

◆ 원태백> 정원사 일도 하셨고 그 외에 만다라 클래스라고 이제 그림 그리는 방법들.

◇ 정관용> 가르쳐주는.

◆ 원태백> 네, 주민들에게 가르쳐주는 그런 클래스도 많이 했었고요.

◇ 정관용> 자기 전문 영역에서 예술가니까 예술 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노동도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군요.

◆ 원태백> 네. 특히 처음에 게스트 기간이라고 한 3개월 동안 그 공동체 체험을 해 보고 오로빌리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뉴커머라는 것을 신청해서 1년 동안 자기가 공동체에 이바지 할 수 있는지, 뜨거운 날씨와 자연 그런 것들이 자신에게 맞는지, 그런 것을 거쳐야 되거든요. 특히 이때 좀 노동과 그런 것을 많이 하게 됩니다.

◇ 정관용> 육체노동.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 일하게 되는 거예요?

◆ 원태백> 보통 6시간을 일하고요.

◇ 정관용> 6시간.

◆ 원태백> 한 주에 36시간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6시간이라고 하면 되게 짧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감안해야 될 게 인도의 뜨거운 태양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 정관용> 워낙 더워서.

◆ 원태백>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거기 사시는 성인 주민들은 거의 똑같은 정도의 육체노동은 나눠서 한다, 이겁니까?

◆ 원태백> 그렇기도 하지만 물론 자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각 분야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왜냐하면 여러 나라에서 온 분들이 많은데 자기 나라에서 선생님을 하셨던 분도 있고 의사를 하셨던 분도 있어서. 되게 다양합니다.

건축가들도 있고 엔지니어도 있고 그러면 굳이 모두 육체노동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일을 하고.

◇ 정관용> 집은 공짜로 주는 거예요? 자기가 지어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 원태백> 뭐랄까. 오로빌에서 부동산은 각자의 소유가 아닙니다. 오로빌 재단의 소유고요. 집을 사더라도 오로빌 재단에 기부를 한 후 거기서 살 수 있는 권한만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 정관용> 주거권만 갖는 거죠?

◆ 원태백> 오로빌 떠날 때에도 오로빌에 집은 남겨두고 가야 되는 상황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자꾸 주민이 늘어났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집을 누가 다 지어요?

(사진=오로빌 홈페이지 캡처)

◆ 원태백> 아무래도 예전에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되게 황폐한 사막에서 시작한 그런 동네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나무집 같은 되게 조그만 소소한 집들에 살았는데.

◇ 정관용> 처음 모여든 분들은 직접 자기 손으로 집을 지었겠다, 그렇죠?

◆ 원태백>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서는요.

◆ 원태백> 사람들이 워낙 많아지니까 주택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그런 방향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요.

저희가 이번에 풍력발전기를 설치를 했어요. 그래서 근처에 풍력발전기를 설치를 해서 그곳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반 정도는 전기를 무료로 오로빌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고 있고 나머지는 인도 정부나 이런 곳에 팔아서 나오는 돈으로 주민들을 위해 건물들이나 이런 집들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오로빌 마을 전체에 필요한 전기는 풍력발전 등으로 자급자족 하는 거예요?

◆ 원태백> 태양열도 많이 연구하고 있고 그런 풍력발전기로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물론 약간 모자랄 때가 많이 있기 때문에 정전도 많이 있고 물이 안 나올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모두 무료고요.

◇ 정관용> 식생활에 필요한 무슨 고기, 채소 이런 것들도 다 자급자족합니까? 아니면 외부에서 교역합니까?

◆ 원태백> 고기 같은 경우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게 많고요. 아무래도 오로빌에 사시는 분들은 채식 위주의 삶이 생활화돼 있기 때문에.

◇ 정관용> 그런 분들이 많겠네요, 또.

◆ 원태백> 대부분은 자급자족할 수 있고요. 그 외에 필요한 것들은 외부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가 하루 6시간, 주 36시간 일을 한다. 그러면 월급은 어떻게 받는 거예요?

◆ 원태백> 월급 같은 경우에는 모두가 다 똑같이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고요. 뭐랄까. 월급 개념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아무래도 소비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 정관용> 모두가.

◆ 원태백> 사람 중심의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 정관용> 우선 돈이 별로 필요없다.

◆ 원태백> 오로빌만의 독특한 선물경제가 존재합니다. 선물경제라는 게 영어로 말해서 기프트 이코노미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돈으로 물건이나 노동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른 교환을 중시하는 거고요.

◇ 정관용> 서로 물물교환.

◆ 원태백> 네.

◇ 정관용> 또 노동도 품앗이?

◆ 원태백> 네. 그런데 오로빌에서 일을 하더라도 모두가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생계비가 필요한 사람들만 월 1만 루피? 약 17만 원 정도의 기초생활 유지비를 요청할 수 있고요. 그것과 함께 의료보험, 무료점심 등이 복지 혜택으로 주어집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오로빌 주민 가운데 생계비 필요한 사람만 신청하시오 이런 거예요?

◆ 원태백>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생계비가 전혀 필요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 원태백> 많지는 않지만 그중에서 외부적으로 그런 인컴이 있는 분들은 그런 게 필요없기 때문에.

◇ 정관용> 다른 데서 소득이 좀 있는? 예를 들면 금융자산이 좀 있다든지 그런 분들은. 그럼 그런 분들은 아예 나는 생계비 필요없다 이렇게 하고.

◆ 원태백> 네. 오로빌에는 직업의 귀천이 없고 월급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더 받지도 않고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은 무료로 일을 하면서 매달 3150루피, 약 5만 원 정도의 기부금을 내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나는 돈이 좀 있는 사람이니 나는 생계비 안 받고 오히려 기부금을 내면서 대신에 일은 하겠다. 또 반대로 나는 일은 좀 하는데 재산이 없으니 생계 유지를 위해 17만 원 정도는 주세요. 그러면 그냥 준다 이거죠?

◆ 원태백>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 돈을 별로 쓸 데는 없다는 거죠?

◆ 원태백>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되게 자연 속에서라 삶이 되게 아껴쓰기도 많이 해야 되고 별로 쓸 데가 없기 때문에.

◇ 정관용> 물건이 필요하면 옆 집 사람이 갖고 있으면 나눠 쓰기도 하고 이렇게?

◆ 원태백> 그렇습니다. 그리고 리사이클링 그런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옷 같은 것도 남들이 썼던 것을 다시 쓸 수 있는 그런 가게들도 많이 있고 그래서.

◇ 정관용> 아껴 쓰고 나눠 쓰고.

◆ 원태백> 그렇습니다.

◇ 정관용> 바꿔 쓰고 다시 쓰고. 아나바다 정신.

◆ 원태백> 네, 그렇습니다. 오로빌에 사는 게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을 결코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 정관용> 무슨 오락실, 술집 이런 거 없습니까?

◆ 원태백> 술집은 없고요. 오락실이라기보다는 젊은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놀 수 있는 축구시설 이런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축구?

◆ 원태백> 네.

◇ 정관용> 축구 말고 다른 거 하는 전자오락 이런 거 하는 데 없어요?

◆ 원태백> 전자오락을 할 수 있는 곳은 따로 없습니다. 그 부분은 아무래도 제가 나중에 가서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 정관용> 술집이 없다. 그럼 술도 안 마셔요?

◆ 원태백> 오로빌 안에서는 술을 안 마시자는 그런 분위기라서 술집은 없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좀 기본적으로 삶의 철학이 채식 위주로 하고 술이나 이런 거 좀 멀리 하고 명상 즐겨 하시고 그리고 공동체 생태주의 이런 철학을 가지신 분들만 모여 드시는 거로군요.

◆ 원태백> 대부분 그렇습니다. 안 그런 분들도 가끔씩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인식이.

◇ 정관용> 그런데 안 그런 분들은 호기심 삼아 왔다가도 몇 년 못 버티겠는데요?

◆ 원태백> 아주 잘 아시네요. 힘들어하시고 1~2년 정도는 어떻게 버티시다가 결국은 떠나시는 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떠나는 분들이 제일 큰 이유가 뭐라고 그래요?

◆ 원태백> 아무래도 공동체 생활이 안 맞으시는 분들이 있고 사람들이 같이 살다 보면 아무래도 마찰이 있을 수도 있고요. 제일 큰 부분은 아무래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인도의 뜨거운 날씨, 우기, 뱀과 벌레 이런 것들입니다.

◇ 정관용> 우리 원태백 군은 거기서 10년을 살면서 뭘 배웠다고 생각해요?

◆ 원태백> 저 같은 경우에는 여러 나라 권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되게 포용하는 거하고 이해하는 그런 점을 많이 배웠고요. 인내심 같은 것을 어쩔 수 없이 배운 것 같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는 게 몸에 배어 있게 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지금 거기를 떠나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사실.

◆ 원태백>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 10년 사이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나요?

◆ 원태백> 저 같은 경우에는 17살이 되니까 공동체 생활이 아무래도 성에 안 차기 시작하더라고요. 좀 그런 나이인 것 같아요. 더 큰 세상을 보고 싶고.

◇ 정관용> 더 해 보고 싶은 것도 막 생기고.

◆ 원태백> 가끔씩 한국에 오면 새로운 빌딩들도 있고 인터넷도 빠르고 그러니까.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을 해서 한국으로 와서 검정고시 학원도 다니고 재수학원도 다니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대학을?

◆ 원태백> 저 같은 경우에는 호주로 대학을 갔고요. 거기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일을 하다가 한국에서 또 군 복무를 마치고 그렇게 지금은 영상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영상 프리랜서?

◆ 원태백> 네.

◇ 정관용> 앞으로의 꿈은요.

◆ 원태백> 앞으로의 꿈은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많이 만들고 싶은데 아무래도 제가 오로빌에서 자랐다 보니까 아무래도 문화와 문화를 연결해 주고 또 제가 아류 문화나 서브 컬쳐 같은 것에 많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대중문화와 서브 컬쳐를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영상 작품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오로빌과 같은 어찌 보면 이상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회인데, 우리 사회가 오로빌 전체를 다 배워서 사회가 바뀐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그 중에 한두 가지라도 우리가 배울 게 있지 않겠어요? 뭘 제일 배웠으면 좋겠습니까?

◆ 원태백> 우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다양성에 대한 존중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살다 보면 마찰이 있기 마련인데 서로 끌어내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고요. 특히 한국에서는 획일화된 문화나 소속감을 중요시 하다 보니까 나와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고 종종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런 것들은 가끔 좀 내려두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다큐멘터리 작업 앞으로 하면서 바로 그런 것도 좀 많이 우리들한테 가르쳐주시기를 바라고.

◆ 원태백> 알겠습니다.

◇ 정관용> 오로빌에 대해서 오늘 새롭게 공부했고요. 조금 더 궁금증 있는 분들은 막 검색해 보실 것 같네요. 오로빌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원태백 씨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원태백>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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