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바보 온달은 실화, 주인공은 평강공주"

유홍준이 꼽은 '추석 답사여행지' TOP 5

- 온달산성, 800 산성 중 단연 으뜸
- 청평호, 스위스 루체른 보다 멋져
- 부여 '금동대향로', 디테일 아름다워
-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아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명지대 석좌교수)

추석특집 김현정의 뉴스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 나와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 유홍준>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이제 정식으로 인사. 우리 청취자분들께 추석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 유홍준> 추석이 이와 같이 국민의 명절로 된 건 사실 그렇게 오랜 것은 아닙니다.

◇ 김현정> 그래요?

◆ 유홍준> 우리 농경사회 때의 명절은 세 번이 있는데. 대보름 그 다음에 단오 그 다음에 추석. 그렇습니다. 농사가 끝나고 농한기로 들어가고 1월 정월 초하루 지나서 보름되면 농한기를 끝내고 전쟁 같은 농사에 들어간다 하는 의미에서 카타르시스도 하고 출정식 비슷하게 노는 것이 대보름 축제. 그리고 보리농사가 끝나서 추수할 때쯤 될 때 단오가 있습니다.

◇ 김현정> 그것도 축제죠?

◆ 유홍준> 축제죠. 그리고 쌀농사가 끝나서 이제는 태풍 없이 태양이 내리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때가 추석이었죠.

◇ 김현정> 그렇죠.

◆ 유홍준> 그래서요, 북한에서는 추석명절이 별로 없어요. 단오예요, 거기는. 보리농사가 세잖아요. 그랬던 이 추석이 남쪽에서 이렇게 대명절된 것은 60년대 농민들이 도시 노동자로 전입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당시에는 농촌 인구가 국민의 70%였었죠.

◇ 김현정> 그랬죠, 그 시절에는.

◆ 유홍준> 지금은 7%도 안 되고 6% 정도밖에 안 되니까. 이분들이 정말 전쟁 같은 노동을 하면서 우리 산업화를 일으키는 데 그때 명절 때 설날하고 추석에 고향에 가면 사람을 만난다. 그것이 전 국민을 대이동시키는 추석이 때문에.

◇ 김현정> 그때부터군요. 고향에 갈 수 있는 긴 명절. 그러니까 설하고 추석 그때는 특별해지는 거예요. 아, 그렇게 시작된.

◆ 유홍준>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옛날 60년대, 70년대하고는 달리 지금 추석은 좀 여유가 있어서 또 앞뒤로 긴 연휴를 주니까 고향에 가고 친지를 만나는 것 이외에 여유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도 갖게 됐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
◇ 김현정> 그러니까요. 평소에 못 가던 여행도 좀 가고. 교수님은 뭐 하면서 보내세요, 이런 보통 명절에는?

◆ 유홍준> 나도 가족하고 같이 지내고 내가 은퇴하면 낙향하려고 부여에 농막을 하나 갖고 있죠.

◇ 김현정> 이름 저 알아요. 휴휴당.

◆ 유홍준> 휴휴당.

◇ 김현정> 쉬고 쉬고 또 쉬는 집입니까?

◆ 유홍준> 네. 그런데 아직 은퇴가 안 돼가지고 추석에 다녀왔습니다.

◇ 김현정> 그러셨어요.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로 지금 계시거든요. 그런데 유홍준 교수님도 여행 다니시면 가족들과 여행 더러 다니시죠? 혼자만 다니시는 거 아니죠?

◆ 유홍준> 가족하고 다니는 건 이제 졸업했고요.

◇ 김현정> (웃음) 졸업하셨습니까?

◆ 유홍준> 부여에서 유홍준과 함께하는 부여답사. 우리 대학원 학생 학부 학생들하고 미술사 답사.

◇ 김현정> 그렇게 다니시는군요.

◆ 유홍준> 여행사를 통해서 유홍준과 함께 가는 중국 답사, 이런 것도 있어요.

◇ 김현정> 정말 걸어다니는 역사책 같은 분하고 함께 여행 다니면 이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저는 부럽네요, 그분들.

◆ 유홍준> 한번 따라와보시기 바랍니다.

◇ 김현정> 그래요, 그래요. 가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또 유홍준 교수 같은 분을 만나기가 어려워서 그런 여행을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오늘 우리가 오늘과 내일 두 회를 마련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추천하는 다섯 군데. 우리나라에서 꼭 가봐야 하는 다섯 군데를 뽑아보는 건데요. 저희 정다솜 작가가 나름대로 제목을 붙여봤대요, 교수님. 유홍준의 알쓸신명.

◆ 유홍준> 무슨 뜻인가요? 알면 쓸데없는까지는 알겠는데. 쓸모있는인가?

◇ 김현정> 이게 요새 유행하는 줄임말 제목이래요. 알아두면 쓸모있는 국내의 신비한 명소. 알쓸신명이랍니다. 신세대 작가의 아이디어 마음에 드세요?

◆ 유홍준> 네, 좋아요.

◇ 김현정> 일단 오늘은 5위와 4위. 알쓸신명 5위와 4위 두 군데를 좀 찾아 떠나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지금까지 총 몇 권 나왔죠, 교수님?

◆ 유홍준> 국내 10권이고 일본편 4권이고요.

◇ 김현정> 일본편 4권. 그러면 국내 10편에서 찾아가본 명소가 몇 곳이나 될까요?

◆ 유홍준>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고요.

◇ 김현정> 대략?

◆ 유홍준> 우리나라 국토의 한 반 정도 쓴 것 같아요.

◇ 김현정> 반 정도? 그렇게 곳곳을 다 다닌 중에 5곳을 고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셨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어요?

◆ 유홍준> 제가 아직 쓰지 않은 곳도 포함을 시켰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써야 될 곳도. 그러니까 책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니라 지금 2017년 추석이라고 하는 때와 함께 지역도 안배해가지고 한번 골라봤습니다.

◇ 김현정> 지역까지 안배해서 여러분이 가까운 곳이 어딘가 5개 중에 골라서 한번 가보시는 것도 괜찮겠어요. 정말 신중하게 골라온 5군데 명소. 유홍준 교수와 함께 알쓸신명 여행 떠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5위. 5위 어디 골라오셨어요?

◆ 유홍준> 단양의 온달산성을 골랐습니다.

◇ 김현정> 단양이요? 충북 단양?

◆ 유홍준> 충북 단양.

◇ 김현정> 단양. 온달산성의 온달이 우리가 알고 있는 평강공주하고 온달?

◆ 유홍준> 온달이죠. 그런데 온달이 거기 와서 싸웠는지는 몰라도 온달이 싸운 것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온달산성의 방위가 고구려에서 싸운 게 아니라 신라에서 싸운 방위입니다. 남쪽에서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강 건너를 지키는 산성이니까요.

◇ 김현정> 이 온달산성 할 때 이 온달이 그 온달이면 저는 갑자기 궁금해지는 게 우리 바보 온달하고 평강공주 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 유홍준> 없죠.

◇ 김현정> 실화예요?

◆ 유홍준> 실화죠. 아차산성에서 돌아가셨을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런데 너무 실화가 아닌 얘기 같아서. 다들 뭔가 지어내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까?

◆ 유홍준> 그게 아니고 사실 바보 온달의 주인공은 온달이 아니고 나는 평강공주라고 봐요.

◇ 김현정> 그래요? 왜 그렇게 보세요?

◆ 유홍준> 평강공주가 공주인데 눈먼 시어머니에다가 바보 남편한테 온 거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유홍준> 그때 공주가 그런 선택을 하게 했다는 왕도 그렇지만 공주의 처지라고 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만하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유홍준> 그러니까 거꾸로 영국 사람들이 다이애나 황태자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평강공주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아, 그 당시의 평강공주는 지금으로 치면 다이애나, 고 다이애나 비 같은 존재였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 유홍준> 그렇지 않겠어요?

◇ 김현정> 그럴 수 있겠네요, 진짜. 남편을 멋지게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내고. 바로 그 온달이 이 온달산성의 이름이 붙은 건데. 사연이 무슨 사연이 붙어 있길래 이름이 온달산성인 걸까요?

◆ 유홍준> 우리나라의 자연지형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을 정도로 70%가 산인데.

◇ 김현정> 맞아요.

◆ 유홍준> 그 산이 다른 나라는 산 있는 데는 산만 높고 그다음에 들판 있고. 그런데 우리는 산과 강과 들이 같이 어우러져 있잖아요.

◇ 김현정> 그래요. 아기자기하게.

◆ 유홍준> 그것이 전쟁을 한다고 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됐어요.

◇ 김현정> 어떤 의미입니까?

◆ 유홍준> 일본이나 중국 또는 유럽에 있는 나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고을에 성을 쌓아가지고 외적이 들어오면 들어오지 못하게 해자라고 해서 물길을 파가지고 건너오지 못하게 하고 해서 성벽을 쌓았잖아요.

◇ 김현정> 그리고 성을 굉장히 높게 쌓아서 그 위로 쭉 올라가서 아래서부터 차단해 오는 이런 식이더라고요.

◆ 유홍준> 우리는 해자를 쌓은 성이 한양도성을 비롯해가지고 진주성도 그렇고 읍성들이 해자 판 데가 없어요.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까. 우리는 없어요.

◆ 유홍준> 그거는 고을의 울타리라는 의미지. 그것이 도적을 막는 정도지 전쟁을 하겠다는 성은 아니었어요. 전쟁하는 성은 산성이었어요. 그러니까 평소에는 도성 안에 살다가 전란이 나면 산성에 올라가는 것이 진지를 친 거예요.

◇ 김현정> 진지를?

◆ 유홍준> 진지를. 그래서 그 진지, 산성 안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고 그 다음에 군량미가 비축돼 있어요. 한 달이고 두 달을 견딜 수 있는. 그래서 아주 가뭄이 심하거나 그랬을 적에는 그것을 임시 구호식량으로 쓰고 그 다음에 다시 채워넣기도 했던 그 산성입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 유홍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대한 여러 개념 중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것의 하나는 한국은 산성의 나라다라는 것.

◇ 김현정> 산성이 정말 곳곳에 다 있으니까.

◆ 유홍준> 800개 내지 1000곳이 있을 겁니다. 특히 충청북도 이 지역에는 산성이 내가 대충 보면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 보은에 삼년산성, 청주의 상당산성, 충주의 장미산성, 상주의 견훤산성. 거기가 삼국이 격전을 치르던 데이기 때문에 그렇게 산성이 많은 겁니다.

◇ 김현정> 800개나 돼요, 우리나라에?

◆ 유홍준> 그럼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우리가 이제는 이런 전란을 겪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쓴 책이 징비록이잖아요.

◇ 김현정> 네, 징비록.

◆ 유홍준> 그 징비록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 유홍준> 전쟁을 치르고 나니까 우리가 평지 싸움은 다 졌어도 산성 싸움은 다 이겼어요. 행주산성도 이겼잖아요.

◇ 김현정> 그러네요.

◆ 유홍준> 그래서 전국에 있는 산성에 대한 보수가 시작이 됩니다. 그동안은 그 가치를 몰랐었죠.

◇ 김현정> 아, 산성 싸움은 우리가 이기더라. 자, 산성 다 정비하자, 짓자 이렇게 되는 거?

◆ 유홍준> 그렇죠.

◇ 김현정> 그러면서 자그마치 800개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많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뭐예요?

◆ 유홍준> 사용하지 않고 무너진 산성이 많죠. 서울의 아차산성만 해도 그렇죠.

◇ 김현정> 맞아요.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 유홍준> 관리할 이유도 없었죠. 산성이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 김현정> 쓸모가 없다고.

◆ 유홍준> 그렇지만 문화유적으로서의 산성의 가치는 대단한 것이 산성에 가면 첫째로 높이가 적당한 높이지 아주 힘든 위치에 있는 건 없어요.

◇ 김현정> 그렇더라고요. 맞아요.

◆ 유홍준> 그러니까 등산이 아니고 적당히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낮지도 않아요. 그다음에 산성에 올라가면 전망이 좋아요.

◇ 김현정> 아, 맞아요.

◆ 유홍준> 적이 오는 거 쳐다봐야 되잖아.

◇ 김현정> 그러네. 제일 전망 좋은. 그 고을에서 제일 전망 좋은 곳에 산성이 있어요.

◆ 유홍준> 그렇죠. 산성이 있죠. 자기는 은폐가 되면서 남은 다 볼 수가 있는 곳. 그러니까 산성은 무조건 멋있어요.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네요.

◆ 유홍준> 등산은 멋이 없을 수 있어도 산성은 멋이 없을 수 없어요.

◇ 김현정> 그러면 산성을 이렇게 방치해놓을 게 아니라 거기를 이용해가지고 우리가 생활 속에서 유용한 공간으로 써볼 수...

◆ 유홍준> 지금 방치한 게 아니고 가면 관광할 수 있게 데크도 놔 있고.

◇ 김현정> 아, 그래요?

◆ 유홍준> 여기가 단양이라고 하지만 옛날엔 영춘이라고 하는 곳이거든요. 단양군 영춘면이지만 옛날에는 단양이나 영춘이나 동격이었죠. 그리고 그 옆에 제천 청풍이 있거든요. 제천 청풍 단양 영춘을 합쳐서 4군이라고 그랬어요.

◇ 김현정> 4군?

◆ 유홍준> 4군 산수라고 하면 여기를 얘기하는 거였고. 그외 또 4군이 있는데 금강산 4군이라고 해서 회양에서부터 그 일대에 4군. 4군 산수라고 해서 옛날부터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한강 따라서 갔을 적에 도담삼봉을 비롯한 아름다운 풍광을 봤던 곳인데. 거기에서 영월 쪽으로 가다가 영춘에 온달산성이 사진도 멋있어요, 사진도. 사진으로 나온 것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이 남한강을 따라서라는 책인데 거기에 표지가 온달산성이거든요.

◇ 김현정> 그렇군요. 얼마나 풍경이 멋있으면 표지로 쓰셨겠어요, 표지로. 산성이 한 800개 있는데 800개가 다 전망이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곳 다섯손가락 안에 꼽으라고 하면 여기에 들어갑니까?

◆ 유홍준>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죠. 실제로 문화재청에서 지금도 추진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있을 적에 산성 5개를 묶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준비를 했어요.

◇ 김현정> 그래요?

◆ 유홍준> 그것이 온달산성하고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

◇ 김현정> 삼년산성.

◆ 유홍준> 그다음에 상주에 있는 견훤산성.

◇ 김현정> 견훤산성.

◆ 유홍준> 그거는 빠질 수가 없어요. 그다음에 충주에 있는 상당산성. 아직 정비가 안 된 청주의 상당산성하고 충주의 장미산성인데. 그런데 이게 조금 복잡한 게 우리는 왜 빠졌냐고 주장하고 나오는 데가 있어요.

◇ 김현정> 우리 지역 거는 왜 빠졌냐? 우리도 빠질 게 하나도 없는데 좋은데, 이런?

◆ 유홍준> 그런데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그러면 3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 김현정> 뭡니까?

◆ 유홍준> 하나는 UNIVERSAL VALUE라고 해서 보편적 가치. 다른 나라에는 없고 그 나라에만 있는 역사 유적이고 멋있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보존 실태. 그다음에 보존 의지. 이 3가지를 같이 봅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거기에다가 또 하나는 역사적으로 그곳을 가치 있게 국민들이 연구하고 심포지엄도 열고 보고서도 내고 학술적으로 하고 있느냐를 보는 거거든요.

◇ 김현정> 그런 것까지 보는군요, 심사할 때.

◆ 유홍준> 그럼요. 힘든 거예요.

◇ 김현정> 그러네요.

◆ 유홍준> 그러니까 우리는 생전에 사용도 안 하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도 안 하고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유네스코 등재해 달라고 했을 때 유네스코에서 해 주겠습니까?

◇ 김현정> 유네스코도 다 알아요, 그런 거.

◆ 유홍준> 다 알죠. 조사위원회가 오죠.

◇ 김현정>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게 지금까지도 통과는 못 된 거예요?

◆ 유홍준> 아직 신청단계에 있죠. 준비단계에 있죠.

◇ 김현정> 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그러니까 사랑을 해야겠네요, 산성을.

◆ 유홍준> 그렇죠. 우리 국민들이 먼저 사랑을 해야지 그것도 등재신청을 할 수 있고. 하면 된다고 봅니다.

◇ 김현정> 여러분, 제가 다시 한 번 불러드릴게요. 우리나라 800개 산성 중에 유홍준 교수가 뽑은 세 군데 하면 온달산성, 삼년산성, 견훤산성. 여기다 두 개를 더하자면 장미산성, 상당산성까지. 이 주변 계시는 분들은 꼭 한번 가서 도대체 얼마나 멋있기에 풍경이. 유 교수께서 800개 중에 뽑았을까 이거 한번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딱 올라가면, 온달산성 올라가면 기분이 어떠세요? 느낌이 어떠셨어요?

◆ 유홍준> 시인 신경림 선생님이 같이 온달산성을 갔어요.

◇ 김현정> 아, 두 분이 같이?

◆ 유홍준> 그분이 충주분이거든요. 유홍준이하고 한번 같이 가자 그러더니. 저보다 연세가 많잖아요. 그러더니 갑자기 저를 불러가지고 올라가가지고 눈앞에 남한강이 휘어가는 걸 보고 야, 홍준아 여기 와서 설명 좀 해 봐, 이거를.

◇ 김현정> 홍준아? (웃음)

◆ 유홍준> 선생님이 시를 읊으세요, 본 대로. 온달산성은 올라가서 보는 것도 멋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멋있어요.

[추석 특집] 유홍준 교수가 선정한 신비한 명서 베스트 5 '온달산성' (위 사진=김성철, 창비 제공, 아래=온달산성에서 보이는 소백산, 창비 제공)
◇ 김현정> 멀리서 바라봐도?

◆ 유홍준> 숲자락을 딱 타고. 드라마 중에 추노라고 있었죠?

◇ 김현정> 추노. 네네.

◆ 유홍준> 그 세트장이 여기 온달산성 아래에다 새로 지었어요.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 구경 가시면 단양 여러분 구경가시면 추노 세트장도 좀 구경하시고 위에 산성 올라가서 풍경도 구경하시고 남한강도 좀 보시고 먹거리나 이런 거는 뭐가 있어요, 단양은?

◆ 유홍준> 너무 많죠. 단양에서 맛있는 거는 도토리묵이었던 것 같고.

◇ 김현정> 도토리묵?

◆ 유홍준> 묵무침. 그리고 거기에서 영월로 갈 수 있거든요. 영월로 가면 올갱이.

◇ 김현정> 저 가봤어요. 영월도 정말 좋습니다, 영월도.

◆ 유홍준> 조용하죠?

◇ 김현정> 참 좋아요. 저는 정말 영월의 매력에 푹 빠지고 왔거든요.

◆ 유홍준> 거기에 라디오스타 무대가 영월이잖아요.

◇ 김현정> 맞아요, 맞습니다.

◆ 유홍준> 그런데 그 전에는 한 사람이 영월 현감으로 간다니까 그 친구가 떠나는 친구한테 얘기해 주는 게.

◇ 김현정> 뭐라고?

◆ 유홍준> 영월이라는 고을은 사람도 적고 도적도 없어서 드러누워서도 행정 본다더라.

◇ 김현정> (웃음) 그 정도로 평화로운 곳.

◆ 유홍준> 네.

◇ 김현정> 영월까지 내친 김에 여러분 다녀오시면 이건 환상적인 여행이 되겠네요. 유홍준 교수가 추천하는 알쓸신명. 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한 명소 베스트5. 그중에 5위였습니다. 온달산성. 어떻게 단양에 대해서 조금 더 덧붙이실 말씀, 못하신 말씀 있으세요?

◆ 유홍준> 단양의 기본은 단양8경이잖아요.

◇ 김현정> 단양8경. 그렇죠.

◆ 유홍준> 그러니까 그것도 보시고 그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청풍호수.

◇ 김현정> 청풍호수?

◆ 유홍준> 단양의 충주호. 충주호가 사실 수몰된 건 청풍면. 청풍 전체가. 청풍 김씨 들어봤잖아요.

◇ 김현정> 들어봤습니다.

◆ 유홍준> 그래서 지금도 그거 갖고 고을 둘이 싸워요. 이거를 충주호라고 그러냐 청풍호라고 그러냐.

◇ 김현정> 그래요, 그래요.

◆ 유홍준> 그래서 행정적으로는 충주호예요.

◇ 김현정> 정식 명칭은?

◆ 유홍준> 네. 그런데 수몰된 사람들은 다 위에 청풍문화재단지로 올라와가지고 거기에서 바라보는 충주호가 가장 아름답거든요.

◇ 김현정> 그래서 그분들은 청풍호라고 부르세요?

◆ 유홍준> 청풍호라고 부르죠.

◇ 김현정> 그럼 여러분, 청풍호 겸 충주호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보시고 찾아가시면 되겠네요.

◆ 유홍준> 그런데 거기를 가면 특히 외국인 대사나 주재원으로 온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드라이브로 갔다 와서 청풍호를 갔다 와서 하는 얘기는 스위스 갔다 온 것 같대.

◇ 김현정> 그래요?

◆ 유홍준> 산은, 산상의 호수잖아요.

◇ 김현정> 스위스. 와~

◆ 유홍준> 내가 볼 때는 루체른보다 더 멋있어요.

◇ 김현정> 스위스 루체른보다?

◆ 유홍준> 네.

◇ 김현정> 여러분, 스위스 가고 싶은데 비싸서 못 가셨던 분들 충주호. 청풍호 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 정말 알아두면 쓸모있는 것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5위 단양 온달산성. 교수님, 우리 한 곳밖에 안 했는데 굉장히 많이 돈 느낌이에요, 이미.

◆ 유홍준> 주변에 있는 것 여러 가지로 어디 가든지 하나를 보러 갔다가 많이 나오는 거는. 또 음식도 그렇잖아요. 메인 하나 있으면 그 다음에 반찬하고.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그러고 보니까 유홍준 교수님이 참 말을,말씀을 조목조목조목 살살살살살살 재미있게 잘하세요. 주변에서 교수님 문체를 보고 제가 어디서 듣기로는 수다체다. 맞습니까?

◆ 유홍준> 이시영 시인이 그랬죠. 그래서 내 답사기 책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것이 그 책을 읽으면 내 얘기를 들으면서 같이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 김현정> 맞아요. 어렵지가 않고. 맞아요. 그 수다체를 마치 귀로 지금 들려주고 계시는 글을 귀로 들려주시는.

◆ 유홍준> 생방송으로 듣는 거죠, 그 글을, 답사기를.

◇ 김현정> 그래요. 5위로 단양의 온달산성 다녀왔고요. 4위는 어디를 골라오셨습니까?

◆ 유홍준> 부여에 국립부여박물관을 제가 꼭 추천하고 싶었어요.

◇ 김현정> 부여로 갑니까, 이번에는? 부여 하면 백제의 도시죠.

◆ 유홍준>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사실은 경주 하면 신라의 도시. 경주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거예요. 수학여행 다들 한번씩 갔다오시니까. 그런데 부여 하면 잘 몰라요.

◆ 유홍준> 그 이유가 통일신라 빼고 신라나 백제나 다 700년인데. 그중에 백제의 수도 500년은 한성백제 500년이에요. 아차산성, 풍납토성, 몽촌토성 있는 그 일대에 한성백제가 500년 길었고. 개로왕이 죽고 장수왕에게 쫓겨서 급히 피난간 곳이 공주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유홍준> 그리고 공주에서 70년 있다가 이제 좀 더 안정하기 위해서 간 곳이 부여였고 그리고 부여에서 120년 있다가.

◇ 김현정> 120년이군요.

◆ 유홍준> 네, 그러니까 경주는 1000년이 쌓인 거고 부여는 100년이거든요.

◇ 김현정> 그렇다 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여의 국립박물관을 골라오신 건 볼 것이 많다는 말씀이세요?

◆ 유홍준> 아니, 그것보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지금 왕흥사터 출토 사리함 특별전을 열고 있는데.

◇ 김현정> 그게 뭡니까?

◆ 유홍준> 백제시대 때의 여러 절 중에서 왕흥사라고 백마강 넘어 낙화암 넘어서 규암에 왕흥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위덕왕이 거기 배 타고 건너가서 절을 세우고 그다음에 향을 올렸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또 왕흥사라고 하는 기왓장도 나왔어요. 출토가 됐어요. 거기에 어딘가에 절 자리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고려시대 거만 나오고 백제 거는 안 나왔어요. 그러다 2007년에 사리함이 나왔는데 금, 은, 동 원세트로 나왔는데 동합 조그마한 동합을 뚜껑을 여니까 은항아리가 나온 거예요.

◇ 김현정> 동을 여니까 은이 나오고 은을 여니까?

◆ 유홍준> 은항아리처럼 생긴 속을 여니까 거기서 아주 뭐라고 그럴까. 구기자처럼 생겼다 그럴까. 아주 조그만 향수병 같은 금병이 나왔는데 거기 써 있기를 위덕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서 절을 세우고 거기에 사리를 안치했다라고 하는 글씨가 쓰여 있는 거예요.

◇ 김현정> 엄청 귀한 거네요.

◆ 유홍준> 엄청 귀한 거죠. 2007년에. 이래서 처음으로 확실한 명문을 알고 있는 이 사리함을 발견을 했는데. 또 나오려니까 2년 후 2009년에는 유명한 선화공주 전설이 있는 익산 미륵사 석탑을 해체하는데 거기서 사리함이 또 나왔어요.

◇ 김현정> 또 나왔어요.

◆ 유홍준> 그래서 백제시대 때의 사리함이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게 있는데 이것이 그동안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해가지고 완벽하게 복원 끝나가지고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왕흥사터 출토 사리함 특별전을 열고 있어요.

◇ 김현정> 열고 있군요, 그래서.

◆ 유홍준> 그러니까 이때 가서 안 보면 다시 연구소의 유물창고, 보존창고로 들어가는 거예요.

◇ 김현정> 귀한 전시회가 지금 열리고 있군요. 그래서 일단 추천해 주시는 거예요.

◆ 유홍준> 그리고 간 김에 백제의 유적 정림사탑이라든지 부소산성도 가볼 수 있고 주변에 유물이 많죠. 공주까지도 있지만 일단 어떤 계기가 있으면 좋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그 점에서 국립부여박물관을 가서 보시고.

◇ 김현정> 국립부여박물관.

◆ 유홍준> 거기 가보면 사리함만 전시한 게 아니라 왕흥사에서 출토된 백제 기와. 정말 뽀얀 것이 아름답죠.

◇ 김현정> 기와가 뽀얘요?

◆ 유홍준> 뽀얗죠.

◇ 김현정> 그래요?

◆ 유홍준> 시커먼 기와가 아니에요, 백제 기와는.

◇ 김현정> 그래요?

◆ 유홍준> 백제 기와에 매료된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한 번 보면. 그리고 우리나라 옛날 집들의 궁궐이나 절 보면 끄트머리에 치미라고 해서 이렇게.

◇ 김현정> 올라오는 것?

◆ 유홍준> 물고리 꼬리, 용 꼬리처럼 돼 있는 거 있죠. 이게 양쪽에 있잖아요.

◇ 김현정> 네네.

◆ 유홍준> 그런데 그게 굉장히 커요. 건물이 크면 클수록 그것도 컸잖아요.

◇ 김현정> 그렇겠죠.

◆ 유홍준> 그래서 커서 한 번에 제작을 못하고 두 동강을 내서 얹었거든요, 양쪽에.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번에 발굴을 했더니 한쪽에서는 윗부분이 남았고 한쪽에서는 아랫부분이 남았어요. 그래서 완벽하게.

◇ 김현정> 우와, 세트가 만들어진 거예요?

◆ 유홍준> 세트가 된다는 거예요.

◇ 김현정> 그것도 전시하고 있습니까?

◆ 유홍준> 전시하고 있어요.

◇ 김현정> 게다가 여러분, 교과서에서 다들 보셨을 거예요. 금동대향로. 그것도 박물관에 지금 전시가 돼 있잖아요.

◆ 유홍준> 사실 부여에서 나온 많은 유물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에 올라와 있잖아요.

◇ 김현정> 그렇겠죠.

◆ 유홍준> 그런데 부여박물관이 다른 건 다 내줘도 금동대향로만은. 이거 하나 보러 오라 이거죠.

◇ 김현정> 지금 사진을 못 보시니까 여러분이 뭐야, 그거? 이러실지 모르겠는데.

◆ 유홍준> 인터넷으로 치면 되는 거예요.

◇ 김현정> 인터넷 일단 쳐보시고요. 제가 잠깐 설명해 드리자면 높이가 한 64cm 정도 되고요. 지름이 20cm, 무게가 11.8kg. 향로입니다. 봉황 뚜껑 장식이 있고 봉래산이 그려진 뚜껑. 또 연꽃잎으로 장식된 몸통. 이렇게, 이렇게 돼 있는 거죠. 그 향로?

◆ 유홍준> 다시 설명하면 향로는 세계에 너무나 많아요. 그런 향로 중에 최고로 큰 게... 높이가 얼마라고 그랬어요?

◇ 김현정> 64cm.

◆ 유홍준> 64cm되는 향로 어디서 봤어요?

◇ 김현정> 이게 제일 큰 거예요, 세계에서?

◆ 유홍준> 그렇죠. 중국에 있는 향로 큰 거는 이런 모양새를 갖는 게 아니고 또 향로는 클 이유가 없잖아요.

◇ 김현정> 그렇긴 해요.

◆ 유홍준> 조그만 것 부처님 앞에다 놓는 거, 제삿상에 놓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거는 왕가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만드는데. 용이 용트름을 해가지고 입에다가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에요.

◇ 김현정> 이게 그런가요?

◆ 유홍준> 네, 그런데 반을 딱 잘라서 아랫부분은 연잎이고 위는 첩첩 다섯 겹 산이 봉래산이라고 하는 봉래산 뚜껑이 있고 그 맨 꼭대기에는 봉황이 날갯짓하고 날아갈 준비를 해서 그전에는 용봉대향로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었죠, 금동대향로를. 용하고 봉황이 조각이 돼 있다고.

◇ 김현정>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어요.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 유홍준> 우리 삼국시대에 주조기술이 굉장히 뛰어났어요. 주조기술이 뛰어났다는 건 금속을 다루는 시설이 그만큼 있었다는 거예요, 용광로에서부터. 철과 브론즈를 다룰 수 있는 게 있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 아름다워요.

◇ 김현정> 맞아요.

[추석특집] 유홍준 교수가 선정한 신비한 명소 베스트4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 (사진=국립부여박물관 홈페이지)
◆ 유홍준> 금동대향로의 연잎하고 산 사이에 상상의 동물, 현실의 동물이 다 나와요. 코끼리도 있고 사자도 있고.

◇ 김현정> 그 조그마한 공간에?

◆ 유홍준> 조각에, 산봉우리에. 그리고 봉황새 바로 아래에는 5인의 악사가 악기를 타고 있는 게 조각이 돼 있어요. 그리고 냇물이 있고.

◇ 김현정> 기가 막히네요.

◆ 유홍준> 냇가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전부 100개예요. 그래서 내가 답사기... 이걸 몇 권에 썼나? 하도 많이 써가지고. 6권에 썼나? 아까 남한강 그건 8권이고.

◇ 김현정> 8권입니다. 정정합니다. 이게 6권입니까?

◆ 유홍준> 6권에 이 얘기를 쓰면서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다워야 돼요.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명품도 그래요. 우리가 명품이다 하는 것도 사실은 디테일에 달려 있는 거거든요.

◆ 유홍준> 20세기 유명한 건축가 미스 반데로이한테 명작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이 GOD IS IN THE DETAILS.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그런데 실리콘밸리에 어느 전자회사가 있거든요. 거기서는 GOD IS IN THE DETAILS를 리메이크해가지고 사시로 삼아서 로비에 새겨놨는데 DEVIL IS IN THE DETAILS. 악마는 디테일 안에 있다. 그거 말 되죠?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네요.

◆ 유홍준> 그리고 왕흥사 사리함은 조그맣고 실제로 보면 앙증맞다 하는 기분으로 가야지. 어디 큰 거 나오는 줄 알고 있으면 사리함이 클 이유도 없잖아요. 그런데 백제의 미라는 게 사람들이 우아하다. 백제의 미소가 있다.

◇ 김현정> 맞아요.

◆ 유홍준> 참 온화하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

◇ 김현정> 온화함.

◆ 유홍준> 온화하죠. 고구려는 강인함. 백제는 온화함. 신라는 화려함. 그렇게 얘기하는데 우아하면 우아했는데 어떻게 우아했는가? 화려하면 화려한데 어떻게 화려했는가 이런 말이 더 나가야 미학이 되거든요.

◇ 김현정> 어떻게 우아합니까, 그러면? 백제는?

◆ 유홍준> 그게 김부식이 삼국사기 쓰면서 백제 본기 온조왕 15년. BC4년. 거기에 12글자가 써 있는데 처음 4글자는 작신궁실, 새로 궁궐을 지었다. 사실 김부식 선생은 거기까지만 쓰면 자기 임무 끝난 사람이에요. 역사서 쓰는데 뭐 다른 이야기 쓰지도 않았어요. 팩트만 이렇게 했지. 그런데 여기에만 유독 8글자가 더 있어요.

◇ 김현정> 뭐라고 써 있어요?

◆ 유홍준> 검이불루 화이불치.

◇ 김현정> 무슨 뜻입니까?

◆ 유홍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

◇ 김현정> 멋있다.

◆ 유홍준> 멋있죠?

◇ 김현정>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한데 사치스럽지 않았다. 절묘한 선을 잘 지키는. 예술이네요. 이것도 디테일이네요.

◆ 유홍준> 그렇죠. 이게 백제의 미예요.

◇ 김현정> 이걸 부여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겁니까?

◆ 유홍준> 그러니까 금동대향로를 보면 화이불치하고 왕흥사 사리함을 보면 검이불루하죠.

◇ 김현정> 그렇군요, 그렇군요.

◆ 유홍준>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우리는 다 잊어먹고 살았는데 정도전이 조선왕조의 서울을 설계하고 궁궐을 지으면서 궁궐이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 이 얘기를 그대로 받아서 써요. 그러면 이 미학은 조선의 미학이고 한국인의 미학이죠.

◇ 김현정> 그렇게 되네요.

◆ 유홍준> 나는 그렇게 받아들여요.

◇ 김현정> 와, 멋있다.

◆ 유홍준> 그래가지고 이거를 자기의 모토로 한다는 공예가가 무척 많아요, 요새.

◇ 김현정> 그렇습니까?

◆ 유홍준> 공예가들이 팸플릿 서문 보면 나의 미적 목표는 검이불루와 화이불치다.

◇ 김현정> 백제에서부터 오는 거네요, 그러니까 그게. 백제의 미에서부터.

◆ 유홍준> 그게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고 우리 문화유산의 전통 속에서 나온 우리의 미학이죠.

◇ 김현정> 부여에 아까 휴휴당이라고 일종의 별장 같은 걸 갖고 계시는 거잖아요.

◆ 유홍준> 그렇죠.

◇ 김현정> 부여를 꼭 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교수님?

◆ 유홍준> 한번 생각을 해 본 것이 은퇴하면 어디 시골 가서 그냥 채소밭이나 가꾸면서 편안히 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디로 갈까 해서 굉장히 여러 군데를 봤어요.

◇ 김현정> 그러셨겠죠. 아는 곳도 워낙 많으니까.

◆ 유홍준> 우리 마누라 고향이 처갓집이 평창이니까.

◇ 김현정> 강원도.

◆ 유홍준> 강원도. 거기도 어떤가 했는데 가봤고. 그다음에 경주가 참 좋아서 경주의 괘릉 위에 아주 오래된 한옥마을이 있어요. 거기도 가보고.

◇ 김현정> 경주도 가보고.

◆ 유홍준> 그다음에 제주도에 가서 만고강산 노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제주도도 여러 군데 봤죠.

◇ 김현정> 요새 유행이 제주니까 제주도도 한번 가보시고.

◆ 유홍준> 십몇 년 전 얘기입니다.

◇ 김현정> 그렇습니까?

◆ 유홍준> 그랬는데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내가 서울을 떠나서는 못 살 것 같아요.

◇ 김현정>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유홍준 교수 고향이 서울입니다. 서울분 안 같으신데 서울분이세요.

◆ 유홍준> 왜냐하면 미술평론을 하고 이렇게 팔팔한 동안은 활동을 해야 되잖아요.

◇ 김현정> 맞아요.

◆ 유홍준> 그래서 그때 내가 기준을 세운 게 서울에서 차로 3시간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는 문화유산박물관이 하나는 있으면 좋겠다.

◇ 김현정> 박물관 하나.

◆ 유홍준> 그러면 박물관 자원봉사, 도슨트도 할 수 있고 그리고 유적지면 더 좋겠다 하니까 공주 아니면 부여더라고요.

◇ 김현정> 그렇게 되는 거군요.

◆ 유홍준> 그래서 공주 마곡사 근처 있는 데하고 부여 무량사 근처 있는 데를 살펴보다가 우리 집사람, 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집사람이 자주 가야 나도 따라가지. 그래서 집사람보고 골라보라고 했더니.

◇ 김현정> 부여 고르셨어요. 사모님의 힘이군요, 부여에 집을 짓게 된 건?

◆ 유홍준> 선택은 그 사람이 해야지. 나는 어디 가도 좋지만 내가 정해놓고 오라고 그랬을 적에는 불편하면 투덜댈 텐데. 당신이 골라놨으니까.

◇ 김현정> 현명하십니다. 현명한 남편이십니다. 그렇게 해서 부여에 집을 짓게 되시고 지금도 이틀은 가 계시는 거죠, 일주일에?

◆ 유홍준> 일주일에 한 번은 가려고 그러는데. 목표는 5도 2촌. 도시에 닷새, 시골에 이틀. 그리고 더 큰 이상은 2도 5촌.

◇ 김현정> 2도 5촌?

◆ 유홍준> 도시에 이틀, 시골에 닷새.

◇ 김현정> 그래요, 그래요. 다들 그런 꿈꾸면서 살죠.

◆ 유홍준> 나는 실현을 하고 살아요.

◇ 김현정> 그래요. 부여. 국립부여박물관 우리 돌고.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질문드릴게요. 사실은 박물관 구경은 좀 지루하라라고 하는 분들 계세요. 왜냐하면 다 보다 보면 그게 그거 같고 아까 봤던 도자기랑 지금 도자기 같아 보이고 아까 봤던 갑옷하고 이게. 다 그게 그거 같아서 뭘 보라는 거냐? 지루하다는 분들 많은데. 박물관 잘 보는 법이라고 해야 될까요? 어떻게 보면 좀 유익하게?

◆ 유홍준> 우선 요즘에는 도슨트하고 안내원이 잘됐으니까 시간 있는 분은 그렇게 보시고. 예를 들어서 뉴욕에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을 내가 처음 80년대 초에 갔을 적에 3일을 봤어요. 다 보는 데 3일 걸렸어요.

◇ 김현정> 우와.

◆ 유홍준> 그런데 3일을 가서 메트로폴리탄 볼 사람은 없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유홍준> 아마 3시간 갖기도 힘들 거야.

◇ 김현정> 뉴욕에 가면 볼 게 얼마나 많은데. 박물관에서 3일을.

◆ 유홍준> 기껏해야 3시간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번에는 이집트와 중동을 보고 그다음에 유럽을 보고 그다음에 동양을 보고 이렇게 나눌 수도 없잖아요. 일단 한 바퀴는 다 돌아야 되니까.

◇ 김현정> 그렇죠.

◆ 유홍준> 설렁설렁 돌아도 1시간 걸리니까 잠깐 보면 금방 3시간이잖아요. 그럴 때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 김현정> 어떻게 봐야 됩니까?

◆ 유홍준> 진열장 안에 똑같은 유물인데 받침대 위에 올라 있으면, 쇼케이스에 있으면 그것만 보면 돼요.

◇ 김현정> 그게 제일 중요한 거군요?

◆ 유홍준> 제일 중요한 거죠. 디스플레이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게 중요하니까 올려놓지 바닥에 놓겠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별도의 쇼케이스를 갖고 있는 것.

◇ 김현정> 단독 전시돼 있는 것?

◆ 유홍준> 단독 전시돼 있는 것. 그리고 그 방에 들어갔을 적에 딱 눈에 띄는 것. 그것만 딱 보면...

◇ 김현정> 제일 명당에 있는 것.


◆ 유홍준> 그러면 뭐... 다 둘러봐도 집에 오면 그 세 개도 기억 안 날 거야.

◇ 김현정> 굉장히 솔직한 말씀이세요. 교수님은 3일씩이나 보시면서.

◆ 유홍준> 그러니까 핵심만 딱딱.

◇ 김현정> 이게 굉장히 좋은 말씀인 게 정말 전문가처럼 3일씩 하나하나 보는 게 벅차다면 그렇게 무리하지 마시고.

◆ 유홍준> 엑기스만 봐요.

◇ 김현정> 엑기스만이라도 제대로 보자. 술렁술렁 보는 것보다 엑기스만이라도 제대로 보는 게 훨씬 낫다는 말씀이신 거예요.

◆ 유홍준> 그러다가 뭔가 저거는 뭔가 괜찮은데 하고.

◇ 김현정> 꽂히는 게 있어요?

◆ 유홍준> 필링이 확 오는 게 있죠.

◇ 김현정> 필링이.

◆ 유홍준> 그거는 자기가 가서 자세히 보고 밑에 설명이 어떻게 써 있나 보고 아,그렇군 하면 거기에 자기의 관심이 생기겠죠.

◇ 김현정> 그런 거군요. 여러분, 박물관에서 하나라도 내 필이 꽂히는 게 있는 게 중요한 거예요. 이렇게 보면 된다. 저도 이렇게 좀 봐야겠어요. 유홍준 교수와 함께 오늘 함께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추천하는 국내의 아름다운 명소 다섯 군데. 알쓸신명. 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한 명소. 오늘 5위하고 4위 여러분과 함께 둘러봤습니다. 교수님, 오늘 첫 번째 시간 어떠셨어요?

◆ 유홍준> 시간이 짧네요.

◇ 김현정> 지금 부여 얘기도 하실 얘기 더 많으시죠, 사실은?

◆ 유홍준> 많죠.

◇ 김현정> 백마강 얘기도 해야 되고 먹을거리 얘기도 해야 되고 하시는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인사 나누고요. 내일 하루 더 괜찮으세요?

◆ 유홍준> 괜찮아요.

◇ 김현정> 도대체 4위하고 5위가 이 정도면 3위, 2위, 1위는 뭐가 남아 있을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내일도 여러분, 이 시간에 유홍준 교수와 함께 오겠습니다. 유홍준 교수님, 고맙습니다.

◆ 유홍준> 네, 내일 뵙겠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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