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문서를 통해 드러나는 국정원과 정보기관들의 수법은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중앙정보부(중정)'를 방불케 한다. 그나마 70년대보다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신장한지라 '의문사'와 '고문'이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권력과 자신의 정책을 반대.비판하는 세력에 '종북 딱지'를 붙이고, 안보는 자신들의 전유물인양 폼을 잡는 모습은 '오십보 백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밀수'는 없다고 하지만 미행·도청은 이명박 정권때도 버젓이 일어났다. 민간인 사찰사건 말이다.
◇ 70년대 중정식 마타도어 동원…'배우 나체사진 합성'
70년도 중앙정보부의 비사를 정리한 '남산의 부장들'에서 저자 김충식은 '서문'을 다음과 같이 썼다.
"박정희 시대는 중앙정보부가 열었다. 3선 개현, 유신 개헌의 견인차도 정보부였다. 그리고 마침내 10.26으로 암살 시대를 닫아버린 것도 정보부였다.
안보 파수꾼 외교 주역에서부터 정치공작, 선거조작, 이권배분, 정치자금 징수,미행 도청, 고문 납치, 문화예술의 사상 평가, 심지어 여색(女色) 관리, 밀수 ,암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올마이티'(Almighty)의 권력 중추였다.
그래서 중앙정보부의 역할에 눈감은 채 박정희 시대를 말하는 것은 허구일 뿐이다"
MB는 광우병 촛불사태 이후 크게 깨닫는다. 취임 첫해 임명했던 '유약한' 김성호 국정원장으로는 국정장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 1년도 안돼 전격적으로 측근 중의 최측근인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앉혔다.
원세훈은 '70년대 김기춘'과 닮았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국정원내에 '심리전단'을 승급시키고 인력을 대폭확대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 나선 야당 후보들을 인터넷 공간에서 공격하는 것으로 '2010년판 중앙정보부식 통치'의 서막을 열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사이버 세상은 좌파가 모조리 장악하고 있고 그들의 조종자는 퇴임한 고 노무현 대통령 일당'이라고 생각했다.
70년대 중정식 '마타도어 수법'도 동원됐다. 그때처럼 드러내놓고 원초적인 '여색 관리'를 할 수 없고 시대도 바뀐지라 배우 문성근 씨와 김여진 씨의 나체 사진을 합성해 사이버 공간에 마구 뿌렸다.
이름하여 '공화국 인민배우 문성근,김여진 주연 "육체 관계">라는 합성사진이다. 정부의 권력기관(KCIA)이라 하기엔 너무나 유치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 MB…국정원 퇴행시켜 놓고 "적폐수사를 '퇴행'"이라 주장
"요즘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데 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경제상황이)모두가 어렵고, 북한핵 도발은 한계상황을 넘어 나라의 안위가 위태롭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단합이 필요합니다.
(검찰 수사 관련)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합니다."(이명박 전 대통령 9월 28일 페이스북에)
미행.사찰과 유치한 합성 사진을 통한 '여색 관리' 수법을 재활용한 이명박 정부가 그와 관련된 수사를 "퇴행적 시도이며 국익을 해친다'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퇴임한 한 법조인은 "이명박 정부야말로 '70년대 중정식 사고에 젖어 국정원을 과거로 퇴행시킨 뒤 국정의 핵심 엔진으로 사용했다'며 "한때 국가의 지도자라는 분이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착각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인사도 "이명박 정부에서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을 '정치 공작기관'으로 환치시켰고, 박근혜 정부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그 '인프라'를 활용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 김상률 전 수석 "국정원 보고 오류 많아 수석들 피로감 컸다" 폭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법정구속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은 "국정원 보고가 오류가 많아 수석들이 피로감을 느꼈다"는 충격적 증언을 했다.
김 전 수석은 지난 7월 27일 1심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는 9월 26일 박근혜 전 대통령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검사>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아까 종북도서가 도서관에 있고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 대해 진술을 하셨습니다. 여기보면 국정원에서 수석에게 온 정보보고 문건에 관한 진술도 있습니다.
증인(김상률)이 교육부와 문체부 산하 도서관에 종북도서가 많다는 문건을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한테 받아 전수조사 했는데, 그 결과 문체부 산하 도서관에 2종의 도서만 있다고 보고를 받은 적 있고, 또 국정원 보고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했는데 당시 이병기 실장이 국정원 보고서를 언급하며 실수비에서 많은 부분을 언급했습니까?
김상률>네, 그렇습니다. 국정원 보고서라는 말은 안하고 확인이 불가한 문건을 갖고 다양한 부처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당시에 비서실장이 너무 '보고서'에 의존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확인을 해봐도 다 그런 얘기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도 실장님이 저런 정보 보고를 인용한 말씀에 대해서 경청은 했지만, 그게 대통령이 지시한 정책이나 정부 공식 정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병기 실장은 국정원 정보보고에 너무 의존했습니다. (국정원 보고서가)오류가 있기도 했는데, 수석들은 그런거에 대한 피로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병기 실장은 좌편향 등 표현을 썼습니다. (저희는)보수 정보 정보기관이 보고한 것은 '정보'이지 '정책'이라고 생각 안했습니다. 단순히 정보보고는 참고 사항으로 생각하고 이해했습니다.
검사>국정원 보고서가 대통령에게서 올라가는 것 알고 있다는 취지의 증언인가요?
김상률>네.그렇습니다.
검사>증인이 받은 보고서가 비서실장과 대통령이 받은 보고서와 정확히 동일한가요?
김상률> 다르다고 다른 수석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육체'는 현존했지만 심리적 구조는 1970년대 산업화 구조 논리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늘 '국가개조'를 부르짖었던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상률 전 수석 증언처럼 두 정권은 '국정원 통치'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이 보고한 문건을 '통치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조차 70년대 중정스타일의 '국정원 문건 통치'에 회의를 품었던 사실이 재판에서 뒤늦게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행'을 주장하기 앞서 본인이 저질렀던 진짜 '퇴행'을 돌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