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엔 더욱 그리워"… 사라진 가족 기다리는 사무친 가슴들

명절에도 아픈 기다림, 실종자 가족들의 추석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정을 나누는 추석이다. 그러나 금쪽같은 자식을, 애틋한 부모를 찾지도 잊지도 못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추석은 서글프기만 하다.


◇"엄마, 하루만 더 자고 가지, 응?"… 잊을 수 없는 딸의 목소리

유복순 씨가 잃어버린 딸 이효정 양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명지 기자)
유복순(66) 씨는 매년 돌아오는 명절이 고단하다. 지난 1986년 4월 10일 놀러 나갔다가 사라진 딸 이효정(실종 당시 11, 현 43) 양이 1년 중 가장 사무치게 생각나는 날 중 하나기 때문이다.

딸을 잃어버린 지 벌써 31년이 지났다. 친정의 6남매 중 큰언니와 유 씨 본인을 뺀 모두가 세상을 떠난 현재, 딸마저 없는 유 씨의 명절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명절에 도란도란 나누는 가족 간의 대화는 유 씨에게 다른 세상 얘기다.

딸과 아들이 집을 찾아오는 이웃들과 달리, 유 씨의 작은 집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기나긴 연휴에도 일을 해야 하는 타지의 아들을 찾아가 하루나 이틀을 지낸 뒤 돌아올 뿐이다. 유 씨는 "다른 집은 명절마다 딸이 오는데 저는 딸이 어디 살아있는지조차 모른다"며 슬픔을 토로했다.

남편과 이혼 후 아이들을 다른 가족들에게 맡긴 채 홀로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하던 유 씨는 서울 언니네 집에 맡겨둔 딸이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 유 씨는 "그때 한 달에 한 번 씩 서울에 가면 '엄마, 가지 말고 하루 저녁만 더 자고 가지, 응?'하던 가슴 아픈 소리가 들린다"며 한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상냥했던 딸 효정 양에 대해 유 씨는 "동네 어르신들한테 인사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묻지도 않은 집, 이웃들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해댔다"며 미소를 짓다가도 "떡볶이 장사를 할 때 설거지를 돕다가 손이 다 터버리기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유 씨는 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딸을 지켜달라고, 살아있게 해달라고, 배고프지 않게 해달라고, 헐벗지 않게 해달라고, 특별히 명절 때도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유 씨는 "명절에 신랑이랑 애들 서넛까지 데리고 오는 상상도 해본다"며 "어디에선가 살아있겠지, 절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날 사라진 다 큰 아들… "새벽에도 깨 생각해요"

손항배 씨네 집 부엌 한켠. 손 씨 내외가 아들 손인성 씨를 기다리면서 물과 음식을 올려놓는 자리다. (사진=김명지 기자)
손항배(71) 씨네 집은 추석날 집에 없는 한 사람 몫의 음식을 더 만든다. 아들 손인성(실종 당시 30세, 현재 45세) 씨를 위해서다. 다 큰 아들이 사라진 지 15년이 흐른 지금도 아버지 손 씨의 집 부엌 한켠엔 손 씨 내외가 아들을 생각하며 매일 물을 떠다놓고 간혹 음식도 올려놓는 선반이 마련돼 있다.

이번 추석도 예외가 아니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손이 큰 아내의 음식을 뭐든 가리지 않던 아들은 추석 음식도 좋아라했다.

조상들의 산소에 다녀오는 명절이 될 때마다 아들에 대한 손 씨의 그리움은 더욱 사무친다. 손 씨는 "아들은 다른 애들과 달랐다"며 "다른 사람들이 꺼리던 풀베기도 앞장서 도맡는 등 다 커서도 명절 일을 도우면서 아버지를 참 잘 따라다녔다"고 아들을 추억했다.

그러던 아들이 지난 2002년 4월 12일, 경기 안산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사라졌다. 타던 차도 그대로 둔 채였다. 카드빚 3천여만 원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손 씨는 지금도 새벽 두세시에 잠이 깬다. 손 씨는 "죽었다든지, 오해가 있다든지 알 수가 없다"며 "제 마음은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데 어디가 종착역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추석에도 손 씨는 "자나 깨나 아들 걱정"이라고 말했다. 친척들이 모인 추석날엔 또 다시 아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만 어차피 슬픔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란 게 손 씨의 생각이다. 밥상을 차려놔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손 씨의 추석을 서글프게 한다.

◇"대장부였던 우리 엄마, 생사라도 알고 싶어요"

딸 이임숙 씨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엄마 장상식 씨. 이 씨는 엄마를 '대장부'로 기억한다. (사진=김명지 기자)
'엄마를 잃어버린 지 8년 째다.' 어느 소설의 도입부와 같은 일이 지난 2009년 5월 28일 이임숙(45) 씨에게도 일어났다. 방송이며 전단지 돌리기며 안 해본 것이 없었지만 경북 성주군에서 사라진 엄마는 영 자취를 보여주지 않았다.

헌신적이었던 이 씨의 엄마 장상식(실종 당시 69, 현재 77) 씨는 명절 때면 뛰어난 음식솜씨를 발휘했다. 이 씨는 "친정이 종가집인데 일년에 몇 번씩, 평생 제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며 "음식을 말도 못하게 많이 했고, 평생 고생만 하셨다"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또 "체구는 작았지만 못 만드는 음식이 없었다"며 "엄마는 못 하는 일이 없는 대장부였다"고도 말했다.

엄마가 사라진 현재, 제사는 이제 모두 작은아버지 댁의 몫이 됐다.

명절에 형제들끼리 도통 만나기 어려워진 것도 이 씨의 집에 드리운 변화다. 자영업을 하며 1년에 쉬는 날이 손에 꼽히는 이 씨의 사정도 사정이지만, 엄마가 사라진 후부턴 4남매가 다 같이 모이기가 참 쉽지 않더란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 전엔 아버지가 경북 구미시에 있는 이 씨의 집을 잠시 다녀갔다. 아버지와는 엄마에 대한 얘기를 아꼈다. "서로 아프다"는 이유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이 씨는 "우리나라 땅덩어리도 이렇게 작은데 살아 계신지, 돌아가신 지도 알 수가 없다"며 "건강하게 살아계신 지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사무치는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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