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루만 더 자고 가지, 응?"… 잊을 수 없는 딸의 목소리
딸을 잃어버린 지 벌써 31년이 지났다. 친정의 6남매 중 큰언니와 유 씨 본인을 뺀 모두가 세상을 떠난 현재, 딸마저 없는 유 씨의 명절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명절에 도란도란 나누는 가족 간의 대화는 유 씨에게 다른 세상 얘기다.
딸과 아들이 집을 찾아오는 이웃들과 달리, 유 씨의 작은 집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기나긴 연휴에도 일을 해야 하는 타지의 아들을 찾아가 하루나 이틀을 지낸 뒤 돌아올 뿐이다. 유 씨는 "다른 집은 명절마다 딸이 오는데 저는 딸이 어디 살아있는지조차 모른다"며 슬픔을 토로했다.
남편과 이혼 후 아이들을 다른 가족들에게 맡긴 채 홀로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하던 유 씨는 서울 언니네 집에 맡겨둔 딸이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 유 씨는 "그때 한 달에 한 번 씩 서울에 가면 '엄마, 가지 말고 하루 저녁만 더 자고 가지, 응?'하던 가슴 아픈 소리가 들린다"며 한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상냥했던 딸 효정 양에 대해 유 씨는 "동네 어르신들한테 인사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묻지도 않은 집, 이웃들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해댔다"며 미소를 짓다가도 "떡볶이 장사를 할 때 설거지를 돕다가 손이 다 터버리기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유 씨는 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기도한다. 딸을 지켜달라고, 살아있게 해달라고, 배고프지 않게 해달라고, 헐벗지 않게 해달라고, 특별히 명절 때도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유 씨는 "명절에 신랑이랑 애들 서넛까지 데리고 오는 상상도 해본다"며 "어디에선가 살아있겠지, 절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날 사라진 다 큰 아들… "새벽에도 깨 생각해요"
이번 추석도 예외가 아니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손이 큰 아내의 음식을 뭐든 가리지 않던 아들은 추석 음식도 좋아라했다.
조상들의 산소에 다녀오는 명절이 될 때마다 아들에 대한 손 씨의 그리움은 더욱 사무친다. 손 씨는 "아들은 다른 애들과 달랐다"며 "다른 사람들이 꺼리던 풀베기도 앞장서 도맡는 등 다 커서도 명절 일을 도우면서 아버지를 참 잘 따라다녔다"고 아들을 추억했다.
그러던 아들이 지난 2002년 4월 12일, 경기 안산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사라졌다. 타던 차도 그대로 둔 채였다. 카드빚 3천여만 원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손 씨는 지금도 새벽 두세시에 잠이 깬다. 손 씨는 "죽었다든지, 오해가 있다든지 알 수가 없다"며 "제 마음은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데 어디가 종착역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추석에도 손 씨는 "자나 깨나 아들 걱정"이라고 말했다. 친척들이 모인 추석날엔 또 다시 아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만 어차피 슬픔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란 게 손 씨의 생각이다. 밥상을 차려놔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손 씨의 추석을 서글프게 한다.
◇"대장부였던 우리 엄마, 생사라도 알고 싶어요"
헌신적이었던 이 씨의 엄마 장상식(실종 당시 69, 현재 77) 씨는 명절 때면 뛰어난 음식솜씨를 발휘했다. 이 씨는 "친정이 종가집인데 일년에 몇 번씩, 평생 제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며 "음식을 말도 못하게 많이 했고, 평생 고생만 하셨다"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또 "체구는 작았지만 못 만드는 음식이 없었다"며 "엄마는 못 하는 일이 없는 대장부였다"고도 말했다.
엄마가 사라진 현재, 제사는 이제 모두 작은아버지 댁의 몫이 됐다.
명절에 형제들끼리 도통 만나기 어려워진 것도 이 씨의 집에 드리운 변화다. 자영업을 하며 1년에 쉬는 날이 손에 꼽히는 이 씨의 사정도 사정이지만, 엄마가 사라진 후부턴 4남매가 다 같이 모이기가 참 쉽지 않더란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 전엔 아버지가 경북 구미시에 있는 이 씨의 집을 잠시 다녀갔다. 아버지와는 엄마에 대한 얘기를 아꼈다. "서로 아프다"는 이유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이 씨는 "우리나라 땅덩어리도 이렇게 작은데 살아 계신지, 돌아가신 지도 알 수가 없다"며 "건강하게 살아계신 지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사무치는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