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국민TV 카페 온에어에서 '광고 속 성차별 이대로 괜찮은가' 발표회를 열어 이같이 밝혔다.
민우회가 지난 6월 한 달 간 TV지상파·케이블·극장·유튜브 등에서 방송된 광고 684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899개 광고 내용(중복계산) 중 55%인 497개에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남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비교적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여성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주부로 주로 묘사됐다.
23%(205개)는 여성 신체 일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여성을 성적대상화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여성혐오적 내용이 포함된 광고는 2%(16개)로 집계됐다.
민우회는 지난 8월 10일부터 31일까지 총 693명(욕설 등으로 38건 답변 누락)이 참여한 '광고 속의 성차별'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어떤 광고가 불편했다면 그 이유를 묻는 질문(중복응답 가능)에 491명이 성 역할 고정관념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성차별적 내용(463명), 광고의 맥락과 무관한 과도한 신체노출 및 클로즈업 등장(448명), 여성혐오적 내용(425명), 성희롱·성폭력 정당화(172명) 등의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실제로 광고 속에서 그려지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응답자들의 답변(중복응답 가능)을 분석한 결과, 남성은 주로 적극적·능동적(564명)이거나 무언가를 설명하는 사람(432명)이었고 노동을 하거나(271명)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주는(235명) 존재였다.
반면 여성은 '굳이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신체노출이 과도하게 부각(519명)되거나, 요리·청소 등 가사를 하는 사람(487명)이었으며, 누군가·무언가를 돌보는 사람(383명)이거나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사람(382명)으로 기능했고, 누군가의 흥만을 돋구는 사람(336명), 인물이나 물건 주변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304명), 비현실적 신체를 가진 사람(303명)으로 자주 묘사됐다.
광고에서 보고 싶은 여성의 모습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주체적인, 당당한, 능동적인'(141명)이었다. '전문적인, 유능한'(111명), '평범하고 다양한 사람의 인간'(84명), '돌봄·가사·희생 등 성 역할에서 벗어난'(64명), '남성과 동등한, 성별 역할 전복'(50명), '운동하는, 육체적으로 강한'(20명)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고, 나쁜 여성, 퀴어 여성, 장애인 여성,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여성을 보고 싶다는 기타 응답도 있었다.
◇ 왜 이런 성차별적 광고가 되풀이될까
흔히 젊은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틴트 광고에서 할머니, 수염 난 남성 등 다양한 주체를 등장시킨 아임 미미 틱톡틴트와 깨끗함과 순수함을 강조하기보다 생리대 자체의 강점을 부각한 위스퍼 코스모 생리대 광고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광고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한 왕혜지 씨는 "40대 이후의 여성 출연자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광고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높았는데, '엄마가 식사 준비할 수도 있지' 이런 식으로 공기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 부분에 주목하고 문제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10년 넘게 광고대행사에서 광고를 만들어 온 김진아 카피라이터는 "광고 제작자들은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일 텐데 왜 이런 성차별적·여성혐오적 광고가 되풀이되느냐고들 하는데, 네티즌 유행어에는 민감할 수 있지만 시대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민감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고주의 최종 의사 결정권자가 거의 남성이고, 여성일 경우에도 젠더 감수성이 떨어질 확률이 높은 것 △광고회사 결정권자 역시 남성 비율이 높은 것 △여성들이 점점 광고 분야로 진출하지 못해 업계가 남초화되는 현상 △열악한 환경과 낮은 젠더 감수성 속에서 많은 광고가 나오는 환경 등을 '문제적 광고가 계속되는 이유'로 들었다.
정기현 한신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 역시 "광고계는 정말 보수적"이라며 "모험을 잘 안 하려고 하는 게 광고계의 특징이라서 (성차별적 광고가) 계속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성차별적이라고 지적받는 내용들이 한편으로 '마케팅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 정 교수는 "왜 꼭 여성을 카메라로 비출 때에는 둔부나 결정적인 부분을 비추느냐는 말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마케팅 포인트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광고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한 황소연 씨 역시 "냉장고 광고 모델이 늘 여성인 것을 지적하면 '여성이 주로 쓰는데 여성 모델이 나오는 게 뭐가 이상하냐'고 하는데, 그건 원래 있던 것의 재생산이지 않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과 마케팅 포인트를 삼는 것은 다르다"며 "광고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게, 스스로(광고 제작자)를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으로 칭할 수 있게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