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11박 12일 근무'…극한직업, 학교에 있다

(사진=자료사진)
하루 16시간을 일하지만 근무로 인정받는 시간은 4시간 30분. 주말에는 24시간 '직장'에 나와 있지만 근무로 인정받는 시간은 역시 4시간 30분.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한달을 꼬박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남짓.

휴일이 있기는 하다. 한달에 3번, 평일에 쉴 수 있다. 하지만 무급휴일이다. 무급휴일이라고 해서 쉬면 오히려 임금이 깎인다. 하루 쉴 때마다 3만원을 제하고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남들 다 쉬는 공휴일에 쉬려고 하면 이틀치 임금을 깎고 준다. 하지만 공휴일에 근무하면 평일과 똑같이 하루치 임금을 준다.

여름휴가? 그런 것 없다. 물론 근로계약서에는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한다'고 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할 경우 임금 중에서 해당 휴가에 임금은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내용 때문에 휴가를 가고 싶어도 가지를 못한다. 휴가를 가면 여지없이 하루에 3만원씩 임금이 깎이기 때문이다.

연차휴가를 안가는 대신 회사는 한달에 4만원 남짓한 연차수당을 월급에 포함시켜 준다. 휴가를 안가는 조건으로 연차수당을 월급에 포함시켜 주는만큼 실제로 휴가를 가면 그만큼의 임금을 '토해내야' 한다는 말이다. '유급'이 '유급'이 아닌 셈이다.

유급휴일이나 연차휴가도 없으니 연장근로나 휴일근로에 붙는 가산수당과 주휴수당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노동착취적' 직장이 어디 있느냐고? 바로 '학교 야간 당직기사'라는 직장이다.

12일이라는 사상 유례없이 긴 추석연휴를 앞두고 학교 야간당직 기사들의 고충이 다시 노동계와 교육계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추석연휴에는 대체 근무자가 없을 경우 11박 12일 동안 학교 안에서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야간당직 기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용역업체에 고용돼 학교에 파견근무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평일의 경우 교직원들이 퇴근하는 오후 4시 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8시 30분에 퇴근한다. 학교에서 16시간을 보내지만 실제 근무로 인정받는 시간은 대체로 4시간 30분 정도다. 회사가 나머지 시간을 휴식시간 또는 취침시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말과 공휴일 등 교직원들이 나오지 않는 날은 밤에는 물론 낮에도 근무한다. 오전 8시 반부터 다음날 오전 8시 반까지 일하지만 역시 4시간 30분밖에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나머지 시간을 모두 휴식, 취침시간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쉬는 주말은 이들에게는 노동강도가 가장 센 날이다. 금요일 오후에 출근해 토요일과 일요일 48시간을 학교에서 보낸 뒤 월요일 아침에 잠시 퇴근했다가 다시 오후에 출근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시 당직분과장인 오한성 씨는 "학교에 나와 있는 시간 대부분을 휴게 시간으로 해놨지만 사실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며 "학교에 불이 날 수도 있고 낯선 사람들이 학교에 들어올 수도 있어 사실상 대기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야간당직 기사 조모 씨도 "주말에는 오히려 신경쓸게 더 많다"며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주말에 공사나 소독작업 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 씨는 "휴게시간으로 돼 있더라도 학교 밖으로 나가지를 못한다"며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고 근로계약에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돼있다"고 밝혔다.

결국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고용주의 지휘, 명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이용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대기시간 중에도 사업장 밖으로 나갈 수는 없어도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벗어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면 휴게시간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오 분과장은 "휴식시간은 대폭 늘리고 근무인정시간은 실제보다 줄여 잡은 것은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한 편법"이라며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시중 노임단가에 맞추기 위해 임금을 올리는 대신 근로인정시간을 줄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 추석 연휴는 이들에게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대체 근무자가 없는 '1인 당직' 학교에서는 한 사람이 연휴기간 동안 11박 12일을 밤낮 없이 학교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1인 당직체제'인 조 씨는 "명절 연휴 때 한번도 쉬지를 못했다"며 "명절 때 누가 대신 근무를 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가족들이 음식을 싸와 학교에서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당직기사도 있고 아들이 대신 와서 학교를 지키면 잠깐 집에 와서 차례를 지내는 기사도 있다"고 전했다.

명절 연휴 때 다른 사람이 대신 근무를 서면 임금삭감의 폭탄을 맞게 된다. 조 씨는 "연휴나 공휴일 때는 낮에도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체 근무자에게는 이틀치의 임금이 지급된다. 반면 원래 근무자는 이틀치 임금이 깎이게 된다"며 "하지만 원래 근무자가 (연휴나 공휴일에) 정상 근무를 하면 이틀치가 아닌 하루치 임금만 준다"고 호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식권을 중요시해 '2인 당직체제'를 선호하는 당직 기사들이 있는가 하면 임금삭감을 우려해 '1인 당직체제'를 고수하려는 기사들도 있는 등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처럼 불합리한 임금과 근로조건이 가능한 것은 학교 야간당직 업무가 근로기준법 상 근로시간, 휴게시간, 주휴수당 등의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업종인 감시업무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문가람 조직부장은 "근로기준법상에는 일주일에 유급휴일과 무급휴일을 각각 하루씩 주도록 돼 있지만 감시업무는 해당 조항의 적용이 배제돼 휴일을 주지 않더라도 불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문 부장은 "노조에서는 최소한 유급휴일만이라도 인정해 달라는 입장"이라며 "더 나아가 별도 예산을 투입해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임금 손실 없이 2인 근무체제로 가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교육부나 각 시도 교육청은 일선학교와 용역업체에게 책임을 미루며 (대체 근무자에 대한) 예산 편성은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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