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여야 4당 대표 회동…안보와 소통 키워드로 해빙기 맞나

'홍준표 패싱' 속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례적 공동발표문 성과도

문재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대표들간의 27일 만찬회동은 일단 '절반 이상'의 성과물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날 오후 7시부터 2시간 남짓 청와대에서 만찬 회동을 갖고 한반도 안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초당적 협력을 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 安,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교체 요구 언급 안 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과 각당 대변인들은 만찬회동 이후 춘추관에서 브피핑을 열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초당적 협력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조속한 구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5개항의 공동발표문을 내놨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 간 청와대 회동에 대한 공동발표문 채택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지난 2015년 3월17일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의 회동에 이어 2년 6개월여만에 처음이다.

특히 각당 대변인들이 청와대에서 공동 발표문을 낭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회동 시간 대부분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새 정부의 대응 능력과 더욱 강화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됐다.

안철수 대표는 북한의 잇단 도발 와중에 국방부와 외교부 등 정부부처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 대표는 "최근 한미간 공조 신뢰 관계가 상당히 손상돼 이를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양국간 공조 과정에 빈틈이 없고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 한국과의 동맹이 절실한 점도 있다"며 일각에서 제기된 한미간 '엇박자' 논란을 적극 부인했다.

안 대표는 "한미간 신뢰관계는 조금이라도 균열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꼼꼼하게 확인해보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안 대표는 또 "미국의 확장억제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문서화하는 방안을 정부와 문 대통령이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됐던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 교체 요구는 하지 않았다.

◇ 주호영 "안보에는 초당적 협력하겠다", 文 "인사문제 유감"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은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오도록 공세를 펼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관된 메시지 필요하다"며 "다중 방어 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이 핵공격을 못하게 하는 조치를 위해 야당으로서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주 권한대행은 또 "안보에 대해서는 여야가 단결해서 대처해야 하는데 이 시기에 적폐청산을 정부와 여당이 들고 나오는 것은 단합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원의 전방위 사찰과 블랙리스트 작성, 전 정권 청와대 내에서 발견된 문건들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정치보복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정치 보복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전(前) 정권 기획사정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금의 적폐청산은 보복이 아니고 실제 비리가 불거져 나오는데 그것을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다"고 주 권한대행을 달랬다.

또 "적폐청산은 개개인을 처벌하고 문책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구조적 불공정 바꾸는 것"이라며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 권한대행은 새 정부 내각 구성 과정에서 불거진 '5대 인사원칙' 훼손 논란을 지적했고, 문 대통령은 "정권인수위가 없어 일부 착오가 있었다. 일부 인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럽다"며 몸을 낮추기도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선거구제 개편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개혁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해달라고 주문했고, 문 대통령은 이에 동의하면서도 정부가 먼저 나서는 것보다는 국회가 먼저 드라이브를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야정상설협의체 구성도 '성과'

이날 여야 4당 대표 회동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병헌 청와대 정부수석은 회동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때로는 약간의 긴장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서로 역지사지하면서 회동이 이뤄졌다"며 "야당 대표들도 말씀하실 때 절제있게 하셨고 문 대통령께서도 솔직 담백하게 유감을 표명하실 것은 하셨다"고 회동 분위기를 전했다.

또 "부족한 것들은 부족하다고 하시면서 대화가 오고갔다"며 "그 결과로 공동발표문까지 나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회동 이후에도 이어졌다.

예정에도 없었지만 문 대통령은 여야 4당대표에게 청와대 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 방문을 제안했고, 여야 대표들은 문 대통령의 안내로 위기관리센터에서 권영호 센터장으로부터 북한 동향에 대한 브리핑을 받기도 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날 여야 4당 대표 회동에서 여야정 상설협의체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서로 공유했다는 점이다.

여야 대표들은 공동발표문 마지막에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집권여당인 민주당 의석이 121석에 불과한 현재의 입법 지형에서 향후 새 정부의 주요 인사와 법안의 실질적 최종심인 국회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상설협의체 구성에 속도가 붙은 것은 청와대 입장에서 적잖은 성과로 평가된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불참하기는 했지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다른 야당 역시 한국당과는 차별되는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일정정도 여야 협치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이날 회동 직후 논평을 내고 "막상 열린 회동은 그저 문 대통령의 협치쇼를 홍보하는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고 평가절하했지만, 5당 체제라는 바뀐 정치 지형을 감안하면 제1야당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북핵 문제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문 대통령과 4당 대표 회동을 기점으로 향후 여야정 상설협의체도 구체적 가동에 들어가면서 강경 일변도로 치달았던 국회-청와대간 긴장 관계가 완화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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