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 홈페이지 인터넷 게시글까지 밀착 모니터링하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하며 조직적으로 비방 여론전을 펼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이런 심리전 대응을 직접 지시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비롯한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추가 혐의를 수사해 나갈 방침이다.
25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등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 토론글을 게시하자 곧바로 심리전단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3월 1일 홈페이지 '사람세상'에 '민주주의와 관용과 상대주의'라는 글을 올려 "민주주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용"이라며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다름을 상호수용하고 통합할 줄 아는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강정구 교수의 처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 정도의 발언은 용납돼야 할 자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후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에서 김 추기경의 행적을 둘러싼 평가를 놓고 네티즌 사이에 논쟁이 일자 그에 관한 견해를 밝힌 글이었다.
한동안 외부활동을 접고 봉하마을 사저에서 칩거 중이던 노 전 대통령이 글을 올리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가 인터넷 토론정치를 본격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일기도 했다.
국정원은 곧바로 사이버 여론전에 돌입했다.
국정원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 무렵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노 전 대통령이 김 추기경 뒤에 칼을 꽂았다'는 식의 비판 글이나 댓글이 게재됐다.
때마침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게시글을 거론하며 "'민주주의를 하려면 공산주의를 할 자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과 비슷한 소리"라고 정면으로 비판하자 인터넷 게시판에는 해당 인터뷰 내용을 공유하는 글이 늘기도 했다.
검찰은 이런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의 배후에 심리전단의 '온라인 대응작전'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글 게시 이틀 뒤인 2009년 3월 3일 원 전 원장이 내부 회의에서 해당 게시글을 언급하며 대응 심리전을 펼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국정원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리전단은 이후 민간인 외곽팀 등을 동원해 노 전 대통령 발언을 비방하는 취지의 인터넷 댓글 활동을 펼치고, 보수 논객의 기고를 유도한다는 대응 방침을 세운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이명박 정부 당시 전직 대통령을 향한 국정원의 사찰과 여론전 활동이 이후에도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국정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분석하는 한편, 이르면 이번 주 중 원 전 원장을 불러 국내 정치공작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