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집회 달라진 대응…그런데 '백남기 죽음' 진상은?

차벽 없는 집회 대응, 하지만 검경 진상조사 속도 더뎌

(사진=자료사진)
백남기 농민 사망 1주기를 앞두고 농민 집회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가 기존 진압 기조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는 등 현장의 변화가 눈에 띄지만 진상조사를 위한 발걸음은 여전히 더디다는 지적이다.

23일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집회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2015년 11월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이날 오후 선두에는 '쌀값 보장!'이라고 적힌 대령 트랙터를 앞섰고 수입 농산물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있었지만,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 '농민 집회'는 무조건 강경 대응하던 경찰, 이번엔 트랙터 주차자리 마련

특히 트랙터의 경우 지난 해만 하더라도 경찰이 서울에 들어오는 것부터 막았다면, 이번에는 경찰 측이 먼저 교통 흐름을 위해 주차할 자리를 알아봐 주기까지 했다. 집회 참가자 인근에는 교통 경찰들만 보였다. 그나마도 집회 쪽과는 등을 돌려 그들을 자극하지 않았고 교통 상황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광화문에 약속이 있어 집회에 들러봤다는 신모(27)씨는 "예전에는 차벽과 살수차가 보였고 경찰들도 삼엄해 보여서 신경쓰였는데, 지금은 경찰들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차분하고 평화로운 것 같고, 참여자 입장에서도 훨씬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석환 백남기투쟁본부 사무국장 역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 때도 그랬지만, 현장에서는 많은 변화를 느낀다"며 "농민집회에는 경찰들이 항상 대기했고 오늘은 경찰 측에서 '어떻게 하실 거냐' 묻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시위대 반대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경찰의 모습. 집회를 '진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 대응 방식에서 크게 변화한 모습이다. (사진=자료사진)
그러나 정작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는 답보상태다. 유가족들은 정권교체 이후인 지난 6월 경찰청장으로부터 언론을 통한 공개 사과를 받았을 뿐이다.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 씨는 "집에 찾아오겠다 얘기했으나 구체적인 사과, 직사살수 부검시도에 대해서 잘못한점을 적시하고 사과해라 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은 없었다"며 "그 것을 인정하고싶지 않나보다"라고 말했다.

◇ 검찰 늦장수사…출범 발표 한달째 모습 못 갖춘 경찰 진상조사위

공권력에 의한 가해를 분명히 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유족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고발장을 제출받은 검찰의 경우 "빠른 시일 내 수사를 마무리 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강신명 전 청장에 대한 조사는 아직 하지 않은 상태다. 본격 수사는 사건발생 10개월이 지나서야 진행되기도 했다.

야심차게 꾸린 경찰 진상조사위원회의 경우 한달째 사무실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백남기 사건 뿐 아니라 용산참사 등 시국사건에 가까운 경찰력 남용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최대 2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경찰 측은 조사관 역시 팀장급을 5급 정도로 임명한다는 방침이어서 진상위 관계자는 물론 진상위를 발족시킨 경찰개혁위 관계자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태다. 개혁위 관계자는 "당초 팀장급은 4급, 조사관들은 5급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과의 협조와 예산 문제로 경찰 측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찰이 생색내기가 아니라면, 당장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특수활동비 등에서 충분히 관련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의지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백남기투쟁본부 박석운 공동대표는 "물대포 살인을 한 살인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고 처벌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시늉에 불과한 건 아닌지 여러 걱정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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